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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Nov 08. 2020

읽그 43.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병모 지음 / 아르떼



세 가지의 죽음과 세 개의 문신.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은 사람들과, 망자의 영혼과 함께 썰물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사라진 문신. 문신과 죽음의 관계는 무엇일까.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근사한 미스터리 판타지다. 책을 여는 첫 장면에서는 장편소설 <유원>이 생각났다.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라는 사건의 출발점 때문이다. <유원>의 주인공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아파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는데, 그때 자신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산다.  <심장...>에도 세상을 떠난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아버지의 폭행으로 정신을 거의 놓았던 딸은 살아남았고, 아버지는 깨진 창문으로 떨어져 죽었다. 어떤 증거도, 성인인 생존자의 기억도 사건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한다.


폭죽이 터지기 전에는 심지에 먼저 불이 붙어야 하고, 바짝 타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설명할 수 없는 사건도, 죽음도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과관계의 논리에서 잠깐 비껴 서면 이야기가 달려온 길이 보인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은 결과일 뿐이다. 이야기는 사실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살을 뚫고 흔적을 남기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익숙한 자극에 둔감해진다. 폭력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은 신체와 정신이 피폐해지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기 어렵다. 생명의 임계점에 다다라서야 반격에 나선다.


작품에서 타투샵을 운영하는 아티스트는 말한다.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거라고.  


이 세계에서 받는 고통은 결코 몸과 정신을 떠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지워지지 않은 발자국을 남긴다. 이왕 지우지 못할 거라면, 내가 지닌 상처가 힘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대한 재난으로부터 나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부적이 되어준다면. 값싼 양산형 위로는 발가락 하나 간질이지 못한다. 힘들 때 오롯이 혼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나를 보호해줄 방패가 필요하다. 그게 어쩌면 타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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