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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Aug 08. 2021

겨울의 시작

2018년 12월 22일 작성

조금 무기력한 하루라 일의 진척없이 꼭 해야 할 일만 겨우 마무리하고 일찍 작업장을 나섰다. 같이 있던 동료가 갑자기 예전에 내가 잠깐 이야기했던 분께 가서 말씀을 듣자고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좀 멋쩍었지만 갑자기 가야 가지는 곳이라 흔쾌히 발길을 향했는데, 알아보시곤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부터 왠지 좋았다. 


결국은 둘 다 좋은 이야기를 귀에 가득 찰 정도로 듣고 나왔는데 동료가 그는 심리 상담사 같다고 했다. 20대 후반부터 34살 정도의 나에게 그는 정말로 그랬었다. 어느 순간 일과 사건들로 가득한 인생을 감당하고 즐기느라 앞 날이 모르겠지도, 궁금하지도, 아주 불안하지도 않을 무렵부터 발이 끊겼다. 


우리 뒤로 줄줄이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긴장해 앉아있는 과거의 어린 나를 보기도 하고 항상 목이 쉬어있는 아주머니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는 내 사주를 보며 자신의 사주와 글자가 오는 순서가 너무나 똑같다고 했다. 다만 자신은 내 나이보다 20년 후에 지금의 너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며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다 해야한다고 어깨를 두들였다. 때를 잘 만난 우리가 부럽다며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심정으로 응원의 말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에게 우리는 가을의 태양이고, 가을의 나무였다. 동지야말로 진정한 겨울의 시작인데, 그 시절의 나무처럼 떠나 보낼 것은 다 보내고 이전의 것은 떨어져 땅 속으로 가라앉은 후 맞이하는, 배 꽃 같이 작고 소박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좋은 새해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떠나 보낸 것에서 떠올린 아몬 생각에 잠시 울컥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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