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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Aug 08. 2021

악수

2020년 8월 31일의 기록

악수란 무얼까? (요즘은 코시국이라 주로 합장을 한다만.)


악수를 생각하자면 아버지가 첫 번째로 생각난다.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어 갖춘 아버지가 남성인 누군가를 만날 때, 늘 멋지게 웃으며 인사로 했던 제스쳐였다. 그래서 악수는 내게 정말 멋진 어른들의 제스쳐로 기억에 남아있다. 


또, 어릴 때, 아버지가 남동생과 화해시킬 때가 생각난다. 억지로 “남매는 단둘이다!!”을 외치게 하며 악수를 시켰는데,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씩씩거리며 잡은 동생의 손은 따뜻했고, 갑자기 화가 좀 누구러들었다. 


다 커서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포멀한 차림이 필요한 업무 협력자분들과 아주 드물게 악수를 해왔고, 진짜 친한 친구들과 신나서 눈을 반짝이며 손을 잡고 흔들었고, 많은 횟수로 애인과 헤어질 때, 악수를 청했다. 


애인이라는 한 사람이 있은지는 좀 되어서 그런지 근래의 악수는 미묘한 관계에 있던 이성과의 악수가 기억나는데, 나이가 들고 여러가지 관계를 경험해 온 어른 둘이 서로의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고, 기왕이면 아끼자는 심정으로 이런 저런 둘의 불분명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무언가 깨닫게되는 어느 명확한 지점에 들어서자 그에게 “음... 알겠어!”하며 악수를 청했다. 어떤 이는 악수를 청했을 때, 꼭 안아주었고, 최근의 어떤 이는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뺐다. 


웃음이 나버렸는데, “알겠으니까, 잘 지내자고~” 하니, 그제서야 손을 꽉 잡았다. 긴가 민가, 분명 애매해서 망설이거나 헷갈리는 제스쳐를 늘상 취하던 그에게 내가 내민 악수는 어떤 의미였기에 뒤로 뺐을까? 


어떤 사람은 적잖히 당황하며 분명하게, “불편해지는 거 싫은데에~.”라고 말했다. 왜 불편해지는 것인지, 그간의 애매한 태도에 불편했던 나는 그가 참 어리숙하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다. 그에겐 짧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어딘가에 쉽게 빠지고 마는 내겐 천년만년과 같은 시간이었으니 당황할 법도 하다 생각하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워 온 것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질 것 같은 관계의 경우, 한 번씩 생각을 묻는 타임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과는 주체할 수 없이 가까워지곤 했다. 


근래의 악수는 잡은 손 사이의 몸통과 몸통 간격 만큼의 거리를 두자는 의미나 다름없긴 하다. 사람처럼 관계란 것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인지라 대게 악하거나 지저분한 사람이 아닌 이상, 늘 친구로서 남아있었고, 그만큼의 거리를 존중하고자 했다. 몸통과 몸통 사이에 나고 드는 바람이 가끔 헛헛하기도 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간격없이 붙어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의 온도는 생각보다 참 따뜻했고, 말이 필요없이 편안해져 참... 


명확하게 떼었다 붙었다 할 수 있는 관계란 있을까? 이런 면에서 참 이기적인가 싶다가, 아니야, 맞다, 아니야, 이기적이다. 그러니 아직 별로 누군가를 곁에 둘 자격이 없다. 했더니 또 어떤 친구는 그런 건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란다. 하하하. 그래서 그것보다는 쉬운 일 문제를 풀고 내 몸을 움직여 교정하는 운동을 우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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