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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Dec 05. 2021

기억 속의 카레와 커리(2)

송수의 커리, 아라의 커리

안녕하세요.

홈그라운드의 안아라입니다.

11월 초에 발신하고, 이번 편지를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12월엔 조금 더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11월은 몇 가지 해프닝들이 있었는데, 모두 몸을 살피는 일들이었어요. 가급적 당분간 몸의 말을 들으며 무리하지 않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몰두해서 무리를 거듭해 만들 수 있는 값진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지난 6년여 동안 그리 살아온 것 같아서, 오랜만에 맞이한, 꿀 같은 고요한 연말은 무리하지 않는 쉼과 쓰기, 꾸준한 만들기 활동을 하며 보내려고 합니다. 2022년에는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지난 #홈그라운드_반짝식당 에서 지금은 영국에 있는 송수가 스파이스 워크숍에서 아낌없이 알려준 스파이스들을 생각하며, 커리 메뉴 하나를 준비했어요. 레시피를 적지 않았고, 동영상 기록과 기억에 의존해 만들었습니다. 구운 파프리카와 콜리플라워, 양파를 잔뜩 넣은 스파이스 커리였습니다. 향신료를 마른 팬에 굽고 굵게 빻아 사용하기도, 야채 볶을 기름에 다글다글 튀겨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송수를 만나기 전에는 커리 스파이스인 터머릭(강황)이 노란빛을 낸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정도로 커리 파우더, 가람마살라를 구성하는 성분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후추도, 파프리카 파우더도 모두 커리의 매력적인 향과 맛을 더하는 스파이스 중 하나란 것을 안 것은 송수를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당시 송수는 마르쉐@에서 "탈리탈리"로 활동하고, "몬순잇츠"라는 케이터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쯤? 수카라에서 이뤄진 송수의 "스파이스 워크숍"을 신청하게 된 것은 그의 이력이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2017년 갤러리 팩토리 부엉학교에서 진행했던 "스파이스 잇 업"의 소개글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남인도 산속에서 7 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께 다양한 음식을 배우고 매주 등산 다니면서 스파이스 농장을 드나들었다. 학부에서 농장 공동체에 살면서 매일 소셜 다이닝을 생활화하면서 다양한 음식문화와 채식 비건 등을 위한 요리를 했으며 추후 뉴욕에서 케이터링 및 예술가의 스튜디오 요리사로 일했다. ..."


스파이스 워크숍은 수업 시작 전부터 개성을 주장하는 스파이스 향이 뜨뜻하게 손님을 환대합니다. 낮게 깔리는 묵직하고 편안한 나무 계열의 스파이스부터 화하고 상쾌하지만 마른 잎의 가벼운 향, 고소하며 향긋한 씨앗의 향,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씨앗과 잎, 나무들이 줄지어 유리병에 잘 담겨있습니다. 그 사이에 까무잡잡한 피부와 동글동글한 얼굴, 선명한 눈빛의 송수가 있고, 스파이스만큼 넘치는 그의 생기는 한번 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게끔 했습니다. 동그랗고 또렷한 발음의 어조로 많은 스파이스를 하나씩 설명해주는데, 각각의 기운과 향, 맛과 성질을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수업 후에 아주 강렬한 맛일 거라 예상하며 받아 든 탈리 플레이트는 너무나 온화한 맛이어서 되려 기억에 깊이 남았습니다. 탈리가 "인도 백반"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한 식사였죠. 후에 몇 가지 프로젝트와 일로 만나게 되면서 재밌고 맛있는 이야기를 가득 담은 송수와, 먹으면 늘 몽롱한 정신이 깨이고 몸이 따뜻해지는 커리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친구 사이가 된 아뿐또쎄오의 장서령 요리사와 송수


2020년,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초봄 궁정동의 그로서리 카페, 큔에서 작게 진행했던 스파이스 워크숍의 영상을 보며, 스파이스를 다룰 용기를 얻어 11월의 메뉴로 나름의 커리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하단에 싣는 레시피에서 자세히 소개할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 퍼지기 시작한 2020년 3월 초였고, 사람을 살리는 균과 면역력에 관한 이야기도 한참 나눴던 것 같습니다. 뜨뜻한 스파이스 향과 음식, 음악과 와인을 곁들이며 여럿이 둘러 모였던 자리가 지금은 마치 꿈결 같습니다. 다시금 여러 사람이 맘 편히 따뜻한 스파이스 냄새에 감싸여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먹고 마시는 자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추운 겨울, 집과 작업장만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때가 참으로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그럴 때마다 술을 데우고, 커리를 끓일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주 #홈그라운드_반짝식당 오픈은 잠시 코로나 상황을 보고, 어떤 식으로 오픈할지 12월 13일 공지하겠습니다.


모두 모두 무탈하고 건강히, 따뜻한 음식과 대화로 상기된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싶습니다.

곧 뵈어요.

고맙습니다.


홈그라운드에서 안아라 드림

스파이스를 템퍼링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드라이 템퍼링, 오일 템퍼링 모두 했고, 이 단계를 거친 스파이스와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컸습니다.
2020년 3월 그로서리 카페 큔에서 이뤄진 스파이스 워크숍
이 날의 스파이스 워크숍에서 선보인 스파이스 조합은 아주 화끈했습니다. 붉은 건고추를 따뜻한 물에 불려서 간 것을 커리에 넣은 것이 매운 맛의 킥이었던 것 같습니다.



1, 2. 큔에서의 스파이스 워크숍을 끝내고 둘러 모여 마시던 모습 | 3. 2017년 갤러리팩토리 부엉학교33 스파이스잇업에서 선보인 탈리 (출처:factory483.org)



아라의 커리 

송수의 워크숍을 기억하며 가지고 있는 스파이스 중 커리에 쓸 스파이스를 전적으로 기분과 선호에 따라 골랐습니다. 남아시아의 스파이스를 다루는 법이 아직 어색하고 서투르다고 생각해 좋아하는 고수씨, 펜넬씨, 큐민씨, 강황, 파프리카와 고추, 후추, 시나몬, 넛맥과 같이 비교적 익숙한 스파이스를 사용하였고, 많은 스파이스의 총체인 가람 마살라로 커리 맛을 보완했습니다.

대략 10인분의 커리를 만들 수 있는 커리쳐트니

(커리스파이스와 야채를 볶아 잼과 퓌레 중간 정도의 질감으로 만들어두는데, 이를 커리쳐트니로 이름 지어 봅니다)


[준비물]

흑후추 1T

고수씨 2T

겨자씨 1T

강황가루 1/2T

가람마살라 2T (브랜드 별로 맛과 커리 파우더 함유율이 다르니, 맛을 보고 원하는 만큼 양을 조절하세요)

커리리프 3~4장 (구하기 어려운 경우, 월계수잎 1장 정도 사용해도 됩니다)

큐민씨드 2t

펜넬씨 1t

계피가루 1t

파프리카 가루 1t

넛맥 가루 1/2t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을 경우 생략하세요)


큰 양파 2알

콜리플라워 1송이

완숙 토마토 2알

빨간 파프리카 1알

말린 홍고추 4~5개

구운 아몬드 20알

깐 마늘 5알

현미식초 1T

올리브오일 30mL

아가베시럽 1T

꽃소금 1T

+

여타 해치우고 싶은 채소나 곡물

저는 브로콜리, 렌틸콩, 당근, 아스파라거스가 있어 더 넣었습니다.

렌틸콩은 커리의 맛을 두텁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추천합니다.

렌틸콩 1/2컵

+

플레인 요거트 500g

커리 쳐트니에 섞어서 요거트 커리를 만들어먹었습니다. 전채식은 두유 요거트나 캐슈밀크를 가미해 드셔도 되어요.


1) 바닥이 두꺼운 마른 팬을 준비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립니다. 준비한 향신료 중, 가장 굵거나 크기가 큰 스파이스부터 작은 순으로 스파이스를 더해가며 향이 올라오는 정도로만 볶아줍니다.

흑후추 > 고수씨 > 겨자씨 > 펜넬씨 > 큐민씨 순서로 각 향신료의 향이 올라오면 다음 향신료를 더하고 더하는 식으로 넣어 향신료를 볶습니다. 냄비를 들어 살살 굴려가며, 온도가 균일하게 향신료에 퍼지도록 합니다. 씨앗에 있는 수분을 날리고 고소한 맛을 올려줍니다. 냄새가 풍부해지면, 불을 끄고 접시에 둔 후 잠시 식힙니다.


2) 고수씨와 흑후추 펜넬 알갱이가 조금 살아있는 것이 좋아 원두 글라인더나 절구에 로스팅한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성글게 갈았습니다.


3) 오븐을 230도로 예열하고 오븐 팬에 토마토, 콜리플라워, 파프리카, 쪽마늘을 올리고 올리브오일, 소금 조금을 뿌려 굽습니다.

-마늘이 가장 먼저 노릇하게 익으니, 15~20분 정도 지났을 때 색을 보고 마늘만 꺼내세요. 아니면 탑니다. 토마토와 콜리플라워, 파프리카는 겉면이 좀 타도 괜찮습니다. 구수한 맛을 얻기 위해 일부러 태우는 편입니다.


4) 마른 홍고추에 잠길 정도로 뜨거운 물을 붓고 고추를 불립니다.


5) 오븐에서 야채가 익는 동안 양파 2개를 반으로 가르고, 모두 얇게 슬라이스 합니다.


6)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기버터나 비건 버터 혹은 현미유를 넉넉히 두르고(바닥에서 2mm 정도), 굵게 빻은 향신료, 커리리프를 넣고 불을 켭니다. 약불에서 향신료 향이 올라오면, 채 썬 양파를 넣고 숨이 푹 죽을 정도이되 갈색이 나지 않은 정도로 볶습니다.


7) 오븐에서 익고 있는 야채를 봅니다. (바쁘죠?)

토마토가 쭈글쭈글해지고, 콜리플라워가 부드럽게 익고, 통 채 넣은 파프리카가 푹 꺼져 잘 익어 있으면, 오븐에서 팬 채 야채를 꺼냅니다. 야채에서 맛있는 물이 나와있는데, 버리지 말고 모두 쓸 겁니다. 파프리카 껍질은 조금 질겨서 꼭지와 껍질, 안의 씨앗을 조심히 벗겨 제거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좀 식힌 후에 하세요. 팬에 고인 야채 물과 부드럽게 익은 토마토, 콜리플라워, 파프리카 과육, 그리고 불려서 물기를 턴 홍고추를 모두 한 그릇 혹은 믹서기 통에 넣고, 구운 아몬드와 소금 1t, 현미식초 1T, 구운 마늘, 아가베시럽 1T, 올리브오일 30mL도 넣고 모두 곱게 갑니다. 맵고, 구수하고 새콤 달콤한 채소 퓌레가 만들어집니다. 야채 질감을 살리고 싶으면 성글게 갈아도 되어요.


8) 향신료와 함께 볶은 양파에 7)의 채소 퓌레를 넣어 섞고, 가루 류의 향신료를 넣습니다.

강황가루 1/2T, 가람마살라 2T (브랜드 별로 맛과 커리 파우더 함유율이 다르니, 맛을 보고 원하는 만큼 양을 조절하세요), 계피가루 1t, 파프리카 가루 1t, 넛맥 가루 1/2t를 넣고 모두 골고루 섞고, 약불로 뭉근하게 졸입니다. 토마토소스를 만들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되직한 소스가 팍! 하고 튀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히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주며 졸입니다. 되직한 쳐트니 정도의 원하는 농도가 나오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더 맵게 하고 싶어 크러쉬드 레드페퍼를 가미했습니다. 조금 더 새콤한 것이 좋으면 식초를 조금 넣습니다. 나중에 요거트를 넣으면 새콤한 커리가 되기도 하니 쳐트니의 산도는 요거트를 가미하기 전에는 조절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불린 렌틸콩은 금세 익어서 커리 쳐트니를 만들고 팬에 렌틸콩을 넣고,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물이나 채수를 부어 가볍게 익힌 다음, 커리에 넣었습니다. 쳐트니의 보관 기한을 늘리려면, 렌틸콩은 먹을 때마다 가미하는 것이 좋습니다.

커리 쳐트니 완성, 후추 등의 스파이스를 굵게 빻아서 제법 맵고 독했습니다. ^^; 시간이 지나며 부드러워졌어요.


9) 요거트는 먹기 전에 커리쳐트니 1컵당 1/3 수준으로 섞었습니다. 새콤 매콤한 것을 원해서요.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신다면 생크림을 섞어도 됩니다. 깔끔한 맛을 원하면 요거트를 섞지 않고, 부드럽게 익힌 감자나, 렌틸콩을 넣고 볶아주면 됩니다.

요거트를 더한 커리입니다.
완성한 아라커리 입니다.

완성한 커리는 제법 맵습니다. 그런데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이 만든 매운 커리라 잘 드시는 분들은 딱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석류와 카이엔페퍼를 곁들여보았는데, 새콤하게 커리와 함께 씹히는 석류가 아주 잘 어울립니다. 반짝 식당 첫날에 커리 플레이팅을 할 때, 피타, 호밀빵, 가래떡을 놓아보았어요. 다양한 문화를 흡수한 송수를 생각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밥 같은 빵을 올리고 싶었거든요.


만드는 과정이 꽤 길었지만, 스파이스를 고르고, 팬에 볶고, 기름에 볶을 때 부엌을 가득 채우는 향신료향이 너무나 마음을 안정되게 하여, 머리가 복잡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꼭 커리를 만들게 됩니다.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아로마테라피를 받는 듯합니다. 여러분도 꼭 한 번 시도해보세요. 제가 선택한 향신료는 아주 쉬운 정도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남아시아의 향신료 아니 더 넓은 범위의 향신료들을 조합하여 집집마다 다른 가람마살라를 만들듯이 커리 믹스를 만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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