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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Jan 04. 2022

예술가와 요리하기(1)

2021.12.19 작성

안녕하세요.

홈그라운드의 안아라입니다.

추운 겨울이 왔어요. 모두 무탈하고 건강히 지내시고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연말이라 곶감말이 주문량이 늘어나 매일 예약 주문된 양을 확인하며, 제작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겠을 상황은 여전하고, 그 사이 소중한 친구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 함께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운영하는 내 인생', '내가 만드는 세상'같이 인생은 자기 주도적으로 운전 해갈 수 있고, 나이가 들수록 운전 실력이 좋아져 한결 수월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재해와 함께, 살수록 생과 사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들이 겹겹이 쌓일수록 어찌할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상황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이유와 연결고리들이 있겠지만, 원인을 일일이 찾기보다 사는 가운데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슬픔에 무너지지 않고, 희망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때보다 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주어진 일을 하며, 조심히 조용조용 지내는 연말입니다. (12월 19일 시작한 글이라 2021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에 이야기할 주제는 어쩌면 2015년에 시작한 홈그라운드 활동의 근간이 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홈그라운드는 어떤 큰 주제를 놓고 활동하기보다 점점이 뿌려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조금 지나 들여다보며 그동안의 활동에 태그를 달고 문화예술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발견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예술가와 요리하기" 혹은 "예술과 요리하기"는 홈그라운드의 많은 활동들이 요리, 요식업, 음식이라고만 지칭하기에는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대다수 레스토랑이 음식과 테이블 디스플레이를 포함하는 식 경험을 세팅하는 일을 문화적인 경험으로서 설계하곤 합니다. 코로나 발생 후, 델리숍을 운영할 때는 이러한 설계나 정돈된 디자인을 가급적 거둬내고, 편안한 매일의 음식을 하고 싶었습니다만, 코로나 이전, 행사를 위한 음식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할 때는 행사의 주제와 주인공을 살피고, 거침없이 혹은 세밀하게, 보이는 것과 만지고, 맡을 수 있는 것을 고려하여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그 중심에 예술의 주제들이 끼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저희의 많은 의뢰처가 미술관과 문화기관이었기 때문이죠. 초창기의 단순한 식사 의뢰를 전시나 행사 성격을 반영한 메뉴로 제안하면서부터 홈그라운드의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짧게나마 문화 예술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일하며 겪은 경험들이 홈그라운드를 꾸리는 데에 좋은 자양분이 된 샘이었고, 신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익숙하고 즐거워하는 주제이기에 코로나의 등장으로 잠시 쉬고 있던 이 주제와 활동을 새해에는 놓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예정입니다.


경험 기획 측면에서 접근하는 요리와 음식은 계획한 요리를 매일 준비하고 내는 실행의 단계보다 앞서 이뤄지는데, 이때 주제와 테마를 홈그라운드에서 직접 지정해 진행하기도 하고, 주어지는 것에 맞춰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술가와 요리하기'에서 예술가는 외부에서 초대될 수도 있고, 홈그라운드가 직접 예술가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2020년 서울시립미술관 북 서울관에서 개최된 김영나 <물체주머니>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김정현 학예사와 함께 <식탁 위의 물체주머니>를 기획하고, 전시 종료 전 아티스트 토크로서 <식탁 위의 물체주머니-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홈그라운드가 그간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이나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던, 작가의 개별 작품이나 전체적인 전시의 흐름을 푸드 디자이너로서 해석해 메뉴화한 음식을 가지고 실질적인 테이블 세팅이나 화면 안에 구성하는 일을 이 프로그램에서도 진행하였습니다. <식탁 위의 물체주머니> 프로그램과 토크쇼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이를 토대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일이 즐거워서, 꼭 시리즈로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식탁+위의+물체주머니


때마침, 이제 막 시작하는 문화 예술 콘텐츠 플랫폼 ARTS ACTS DAYS

(이하 AAD https://www.instagram.com/artsactsdays/)에서 VOD 기획 및 제작 의뢰가 들어와 이번 주제를 좀 더 고민해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술가와 요리하기> 프로그램입니다. 시리즈물로 만들고자하는 야심이 있으나, 예산을 만들어야합니다. �


처음으로 초대한 아티스트는 오래 알고 지내온 최태윤 작가입니다. http://taeyoonchoi.com

주로 뉴욕에서 활동해왔고, 2020년 한국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최태윤스튜디오"로 컴퓨터와 연산 언어, 네트워크 사회의 다양성과 삶에 대한 태도, 방향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분야의 협업자들과 함께 자유롭게 펼치고 있는 작가입니다. 최태윤 작가는 일찍이 요리를 통한 자연스러운 교류에 관심이 있었고, 같은 계기로 2013년 경에 일로서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요리 외에 음악, 퍼포먼스 등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그가 보고, 바라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친구라 <예술가와 요리하기 ep.1: 시적 연산의 정원 요리>라는 타이틀로 함께 버섯 정원을 닮은 버섯 정원 덮밥과 오렌지 샐러드를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작가 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요리하고 먹는 쿠킹 토크쇼지요. 작가가 제게 지정한 색이 그린과 오렌지였는데, 이는 최태윤의 작품에도 드러납니다. 지의류, 버섯과 정원, 다양한 미생물의 표면과 지구의 단층면은 실재의 세상이자 땅 밑의 수많은 균사 타래들을 분산된 네트워크 세상에 비유해 실재와 가상이 혼재된 현재의 상태를 재밌는 장치들로 연결한 전시 <가든, 로컬>을 보고 와서 만든 메뉴로, 작가의 식습관처럼 모두 순식물성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작품과 식생활을 반영해 만든 메뉴라 맛에 대해서는 어쩐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만, 만들고 나서 먹는데, 감칠맛에 눈이 띠용~!

오랜만의 촬영이라 긴장이 안 풀려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시작했는데, 얼굴이 점점 상기됩니다...


사진은 모두 AAD에서 기록해주셨습니다. 베부장이 아주 잘 했습니다.



이 버섯 정원 덮밥의 킥은 아무래도 들기름과 해초 우린 물을 적절하게 쓴 점인 것 같습니다. 그 외 채소와 버섯에서만 나온 감칠맛으로 아주 깔끔하고 고소한 볶음 덮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는 제법 근사한 비건 요리로 강력 추천하고 싶습니다. 목이버섯과 중식 간장을 조금 첨가하면, 중식 덮밥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버섯 정원 덮밥]


준비물

다양한 버섯: 담을 그릇이 가득 찰만큼 준비

(종류는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으며, 그릇에 가득 차는 양도 볶으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해초 모음: 판매하는 염장 해초 어떤 것이든 가능

양파: 1/2개

들기름: 3 큰술

소금 적당량 (간 보는 용도)

감자전분 1 작은술

밥: 어떤 것이든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

구운 감태 곱게 부순 것 2 큰술

참기름 1 작은술

참깨 한 꼬집


1) 버섯 밑동의 거친 부분을 다듬어 먹기 좋은 크기나 좋아하는 모양으로 썹니다. 식감을 위해 콜리플라워도 조금 다듬어 섞었습니다.


2) 해초는 소금기를 빼기 위해 찬물에 30분 정도 담갔다, 헹구고 다시 해초가 잠길만큼 물을 부어둡니다.


3) 밥을 짓습니다.


4) 양파 1/2개를 2mm 간격 정도로 채 썹니다.


5)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넉넉히(프라이팬의 바닥이 골고루 코팅될 정도) 두르고, 중불로 불을 올리고, 채 썬 양파를 넣어 투명해질 때까지 볶습니다.


6) 양파가 투명해지면, 버섯(과 콜리플라워)을 넣고, 소금을 조금 뿌리고, 버섯의 숨이 죽고 꼬들꼬들해질 때까지 중 약불로 볶습니다.


7) 꼬들꼬들해지면, 해초 우린 물을 해초 조금(먹고 싶은 만큼) 함께 숨이 죽은 버섯, 양파가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붓습니다. (해초 우린 물은 다시마 우린 물처럼 감칠맛이 돕니다. 너무 짜면, 염장 해초의 소금기 제거가   것이니, 물을 버리고, 다시 채워 우린 물을 사용합니다)  

+

매생이가 맛있을 때는 물을 붓고 매생이를 한수저 넣어 함께 풀어주었어요. 부드럽고 고소한 매생이 덕분에 감칠맛이 배가 됩니다.


8) 볶은 버섯 양파에 부은 해초 물이 볶은 재료와 함께 끓으며 맛이 베고 절반 정도 줄어들면, 약불로 줄이고, 감자 전분을 찬물에 전분 1: 찬물 2 비율로 잘 개어 프라이팬 위의 재료에 골고루 부어 섞어 줍니다. 버섯 양파 해초 볶음이 탕수육 소스처럼 점도가 생깁니다. 잘 섞어 소금이나 소량의 조선간장(혹은 중국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물기가 있고 윤기가 도는 상태로 불에서 내립니다.


9) 고슬고슬한 밥을 접시에 담고, 감태 부순 것을 밥에 뿌립니다. 준비한 버섯 해초 소스를 밥 옆에 올리고, 참기름을 살짝, 참깨도 뿌려 완성합니다.   



최태윤 작가와 작업 생활 제가 나눈 상세한 이야기, 요리하는 과정이 궁금하시죠?

1월 11일 오픈하는 ARTS ACTS DAYS 플랫폼 소개로 다시 다음 이야기 이어나가겠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와중에도 조심스레 한 걸음씩 딛는 2022년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1월에는 셋째 주와 넷째 주 주말에 식사 오픈 소식으로 스튜디오 문 열겠습니다. 공지할게요!

보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홈그라운드에서 아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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