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아라 Feb 05. 2022

마지막과 직전

할머니와 아몬 그리고 이안

앙상한 가지처럼 마르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정신이 또렷하고 이야기를 잘하는 이야기꾼, 울 할매에게
“할머니는 하루 종일 머 해? 티비 봐?”

라고 물었다.
“아니, 테레비는 할무이 눈이 아파서 못 보고, 눈 감고 가만히 라디오 들어.”

“안 지루해?”

“응 그냥 눈 감고 있다 자다가...”

“누가 오면 반갑지? 현우는 자주 와?”

- 새끼들 오믄 반갑지.”

할매처럼 또렷한 정신만 남고 몸이 망가져 아프고 홀로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생각해본다. 누워서  세상 책을 실컷 읽었으면 좋겠다. 눈이 아프고 팔이 아파  읽으면 귀로 들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귀와   하나는 기능이 남아 읽거나 들을  있다면  외로움 달랠  있을  같다. 그리고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은 아마도 괴로울 것이다. 아몬의 고통스러운 마지막 길을 보며  죄책감과 연민을 느꼈다.   하는 반려 동물의 병원 치료는 전적으로  결정에 의해서고, 아몬이 병원 가기를 거부해도 그는 나와 의사의 뜻에 따라야 했다. 내가 아몬의 뜻을 들어준 때는 안락사 권유를 받고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옆에 누워있을 때였다. 혼자가 아니고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고통과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덜할까 싶어 고통을 견디는 아몬의 몸에 손이나   신체의 일부를 기대었다. 복수와 폐수가  몹시 괴로워하는 녀석을 보다 못해 고통을 줄여줄  있을까 싶어 병원에 데려가려 캐리어에 담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완강히 거부하는 눈빛을 보고 꺼내서 다시 품에 안았다. 나도 아몬이 거쳐   고통을  느끼면서 가야 아몬의 마지막을 이해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안에 있던 아몬의 숨소리가 갑자기 가늘어지더니 , , 내뱉듯이 숨이 나왔고, 심장 박동과 호흡이 맞지 않았다. 순간 정신이 빠져나가고, 뛰는 심장만 아몬 몸에 남아 있는  같았다. 그는 죽은 몸이 되었다.


이안의 마지막도 비슷했다. 다만, 아몬을 보낸 경험으로 이안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어서, 느려진 장기 기능에 맞게 몸이 앙상해졌다. 그래서 마지막 이틀은 고요히 누워만 있으며, 자고 깨고 싸고 했다. 마지막에는 고통에 작게 떨다 끝이 났다. 여전하다, 사랑한다고 잘가라고 수없이 통곡했고, 숨이 끊겨 고요해졌을 때는 "고생했다" 말이 절로 나온다. 조용히 죽기는 모든 장기들의 괴사와 정지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만 맞이할  있는 행운인  같다. 어쩌면 평온하게 떠난다는 말은 죽음 앞에서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 보고 싶은 존재들이 나이를 들면서 늘어간다. 머리가 기억하는 가버린 존재들이 많아지면 이내 희미해질까. 죽을 때까지 희미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온기를 나눠  존재들의 이름을 신체에 새겨놓을까 싶다.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알이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