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일을 처리하는 극명히 다른 방법
현재 나의 팀 팀장은 조직내에서 일을 잘 추진하고 해결하고 밀고 나가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가까이서 관찰한 그의 가장 큰 능력은 ‘비전 제시’다.
정보가 부족하고,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모호한 상태에서
현재 가진 정보에 기반한 최적의 전략을 설정하여
팀원이나 담당 임원 그 누구도 아직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확신에 찬 얼굴로
선명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명하며
자신을 믿고 따라와달라고 말하는 능력.
그 이후 목표를 수정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과감히 목표를 수정하고
그 수정된 목표를 외부나 유관부서에 ‘우린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이미 진행하고 있다’ 라고 선포하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능력.
어떤 일이 ‘사과를 조사해봐’ 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떨어졌을 때도
몇시간 만에 결과보고서 목차 및 아웃라인을 그려서 팀에게 배포하고
이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조사를 시작하자고 말하는 능력.
그와 반대로 나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이라서
어떤 성향의 팀장이나 팀원을 만나도 다 맞춰줄 수 있고
어디에 던져놔도 잘 어울리고
당장 내일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고 하면
기존 일을 버리고 그 새 일을 흥미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 ‘유연성’이 단점이 되는 부분인 ‘확신성‘이 스스로는 있어도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만큼 가지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팀장의 일처리를 볼때마다
어떻게 스스로 저렇게 빛나고 단단한 확신을 빚어낼 수 있었을까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모두 저마다의 욕구가 있고 기대하는 바가 있고 하고싶은 바가 있는데
어떻게 도대체 ‘나를 믿고 너를 희생해줘‘와 다르지 않은 말을 할 수 있지 생각했다.
스스로 ‘나는 좋은 팀장이 될 수는 없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최근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무실에서 TF를 구성하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기존과 정반대의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팀은 ‘목표’가 아닌 ‘과정’을 믿고 있었다
다같이 찾아야하고 내어놓아야 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일을 진행하는 특정 세분화된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이라는 그릇 안에 주제를 담아
한 단계가 끝날때마다 팀원들끼리 회고를 통해 다음 액션플랜을 설정하고
또 다음 단계가 끝나면 또다시 회고를 통해 필요한 액션플랜을 설정하여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이런 방식으로 처음 일하는 사람은
큰 가설만 있을 뿐 예상되는 결과물도 명확한 최종 보고서의 아웃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프로세스를 밟아나간다는 것에 방향성을 잃은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팀장은 불안해 하는 팀원들에게 ‘우리의 목표는 이것이고, 나를 믿고 따라와줘’ 라고 말하고,
나는 목표와 전략이 결국 현실과 통해 맞아떨어지면서 쌓인 그의 자기확신을 믿어야 한다.
이 새로운 팀은 불안해 하는 팀원들에게 ‘나도 처음엔 불안했으나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 공감하는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얼마든지 불안해도 괜찮다. 결국 우리는 과정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나는 명확한 결과 보고서 제목이 없더라도 그들이 무수히 반복하여 개선하고 공고히 해 놓은 과정을 믿어야 한다.
‘불안해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다같이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 말하는 그 포용성은
구성원 모두가 시계 톱니처럼 돌아가야 작동하는 기계 같고
‘나를 믿고 따르라’고 말하는 그 대담성은
표류중인 바다에서 선장이 어느 방향을 확신에 차서 가리킬 때 반짝 빛나는 선원의 눈동자 같다.
시계는 팀장 혼자의 동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표류 중인 바다에서는 방향성 없이는 선원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일을 하는 이처럼 다른 방식은 어느 것 하나가 우월하지 않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정답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과
‘나만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진정한 나 자신이 되도록 힘써야하고 그 방식으로 타인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팀장의 능력으로 잠시 위축되고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팀장과 이 팀의 장점을 분석하고 취할 것은 취하여
나에게 어울리고 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