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래가 1인 창작자가 된 이유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학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해외에서 유명 브랜드들을 거친(루이비통..) 디자이너가 학과에 특강을 하러 왔었는데요. 저는 대학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했지만, 졸업 직전까지도 취업을 할지, 개인 창업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 디자이너 분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저의 신념과 방향성이 맞는 브랜드가 있는지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을 하는 것이 더 나은지, 개인 창업을 준비하는 게 맞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25살짜리가 신념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이 우습다. 그 나이대의 신념은 수도 없이 변하게 될 것이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개인의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패션 브랜드는 없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면박을 받았다고 느껴 한동안 짜증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동안, 패션 의류를 만드는 브랜드 소속으로 일을 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4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거쳐온 기업들은 재직 기간 동안 모두 한 번씩 큰 재정 위기를 겪었습니다. 물론 아무 문제가 없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거쳐온 곳들은 모두 오랜 경력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곳들이었는데요. 저는 이 과정에서 문제의 양상은 각자 달라도, 이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사용하는 이의 삶을 인정하지 않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기업 중심으로 생산을 지속했다는 점입니다.
이 기업들은 애초에 초기 기획 단계에서 타깃 분석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과거 기업의 영업자료에 의존하거나, 해오던 관성대로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생산되어 쌓인 재고를 어떻게든 소진해야 했기 때문에 마케팅적으로 그럴듯한 시각 이미지와 텍스트(모두를 위한, 진정성의, 본질만 담은, 착한 등등...)를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제품을 만들 때 사용자의 삶부터 관찰하는 저는 기업들이 반복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관찰해보니, 가장 큰 요인은 “이권개입”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업이 이권을 추구한다는 말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대상을 인정하기도 전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우선하면 사람을 하나의 "수단", 또는 언제든 사용하고 버리는 “소비재”로 취급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옷을 구매하는 사람은 어느새 “소비자”라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물건이 만들어진다는 건, 팔려야 하는 숙명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팔리기 위해 쓰는 방법으로는 소비자의 결핍을 자극하거나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가 패션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산업의 굴레 속에서 존재하는 소비재로서의 옷은 아무리 멋진 이미지와 카피가 붙은 신제품일지라도,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아귀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한 명의 소비자로서 현재의 결핍을 화려한 이미지의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면, 결핍이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마치 레벨이 낮은 캐릭터가 아이템 빨로 무장을 하면 레벨이 오르듯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옷장을 정리할 때가 되어야 정작 필요했던 제품은 드물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습니다.
또한 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인 저의 삶은,기업 소속으로 있을 땐 작업 과정과 의도가 어떠했는지 보다는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하나의 소비재로 머물 따름이었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가 자본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일반 상업 브랜드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처럼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영리이냐, 비영리냐의 문제가 아닌 특정 이권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포지션을 정해버리는 우리 사회 전반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한 예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기 때문인데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구조상 기업 소속으로 일을 할 때 생산 가능한 인구이냐, 아니냐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으로 갈리게 됩니다.
실제 그들의 기준에 의해 구분 짓자면, 정상인에 속하는 연령대는 20대~40대 초 중반 정도이며, 이들은 소비자이자, 소비재가 되고 맙니다.
나머지 아동, 노인, 장애인은 어떻게든 사회 구조상 이득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촉구된 소비를 강제 당하는 포지션이 됩니다. 특히 이런 사회적 규정은 의료 산업 측면에서 충분히 자립 가능한 노인들에게 과도한 약 처방과 요양원에 강제로 입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악용되곤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본주의 사회구조 안에서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갑니다. 소속감 또는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무언가를 보고 판단하면서 말이죠. 그래선지 나와 다른 삶을 온전히 바라보거나 관찰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그걸 위해 에너지를 쏟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이 지속되면서, 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을 인정하고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피드백은 피드백 그 자체가 아니라 공격이나 비난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여러 이야기들이 기업 소속으로 일을 하거나,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은 아닙니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지 못하며, 소비를 하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옷을 만드는 1인 창작자가 된 건, 더 이상 스스로의 주체성과 의사 결정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잣대로, 또는 특정 집단의 이권 아래에 소비됨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기업 소속으로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최소한 제가 만드는 옷 또한 타인의 목마름과 허기짐을 부추기는 포지션의 옷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그동안 저의 인생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불편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삶의 논제들을 온전히 관찰하고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운영 중인 PROJECT_ON_ZONE의 지난 이메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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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감수자:너굴, 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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