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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Jul 10. 2020

삶을 매개하는 옷

소비재가 아닌 매개체로서의 역할

사랑하는 김영수 시인



누구나 가슴속에 각자의 심상이 있다.



3년 전쯤, 아버지께서 초록빛 캐주얼한 재킷을 사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초록색을 좋아하셨지만, 실제 옷이나 패션 아이템들은 네이비, 블랙, 다크 브라운류만 가지고 계셨었는데요.


저는 그 당시 초록빛 재킷을 통해 아버지의 삶에 변화가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 그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10년 이상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셨고, 그동안 시를 취미로만 쓰시다가 특정 시인 협회 측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을 하셨죠. 이외에도 어머니나 친구들과 함께 활동적으로 국내외 여행을 다녀오시는 일이 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표현이 많으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가끔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국문과에 입학해 시를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런 아버지가 캐주얼한 초록빛 재킷을 샀다는 건, 사회에서 요구한 책임과 위치(누구의 아버지, 또는 직책)에 맞춰 입었던 색상들에서 벗어나, 중년이 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시도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들은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취직을 위해 도시로 상경해 정착해버린 베이비부머 세대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행동입니다. 이들은 도시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자녀의 결혼이나 취직, 자신의 정년퇴직 등을 기점으로 기존에 하지 못했던 것들(해외여행, 귀농과 같은)을 표출하면서 한때 액티브 시니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건 굳이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거나, 아버지와 같은 유년 시절을 겪어서가 아닙니다. 변화한 옷 스타일을 통해, 굉장히 오랜 시간 가슴속에 간직해온 아버지만의 심상이 있었음을 먼저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옷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타인의 삶에 대해서 말로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그 태도와 심상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되짚어본 옷의 본질과 역할



옷은 그 목적성부터 동•식물이 아닌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사회 구조가 변해도 공통으로 사람의 신체를 보호하고, 개인의 심상을 담아내며, 시대상을 담아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관점으로 옷이 주체성과 독립적인 세계관을 뿜어내는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여유 있게 비어 있는 공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옷은 제작 기초 단계에서 사람의 활동성을 생각해 여유분을 포함시키는데요. 이는 활동성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태도와도 유사합니다. 만약 만드는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의 취향과 세계관을 옷에 담는다면, 무언가 들어갈 공간이 부족해 아무도 그 옷을 입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옷을 만드는 과정에는 입는 사람의 신체와 이를 둘러싼 외부 환경(TPO_Time, Place, Occasion)과의 관계, 그리고 만드는 사람과의 대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존재 목적부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 현대 사회에서 소비재로써 존재해 온 이유를 살펴보면,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해온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자본주의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사회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현재 시점은 자본주의의 끝물이자, 협력적 공유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합니다.


이 책에 따라 자본주의와 협력적 공유사회를 간단히 비교해보면 자본주의는 소유권과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서, 네 것과 내 것(계층, 성별 민족성, 성적 기호 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지어온 “이념의 시대”입니다.


반면 공유사회에서는 이런 경계를 허물고 개개인이 가진 특수성을 인정하며,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서 타인을 경험하는 “공감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도기를 20, 30대에 겪고 있는 우리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가올 사회의 옷은 더 이상 소비재가 아닌,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담아내는 매개체로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식이 현 패션 산업의 트렌드로 흔히 볼 수 있듯, 지나치게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해 개개인의 삶을 일반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뭉뚱그리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조금 불편하고 복잡하더라도 개인이 가진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를 온전히 바라보고 담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 당신과 나누고픈 이야기



편안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에는 어떠한 조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특정 남성상과 여성상, 정상과 비정상이 뚜렷이 구분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회에 살아왔고, 아직 우리는 이에 많이 길들어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함께 나누고픈 주제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몸 감각”입니다. 이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거시적인 문제(패션 산업 구조,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등)의 접근 이전에 우리 삶에서 더 밀접한 부분을 되짚어 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동안 사회에서 강요한 시각에만 국한된 감각의 활용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격주 금요일에 다시 찾아뵐게요!



김고래 드림.


*이 이야기는 제가 운영 중인 PROJECT_ON_ZONE의 지난 이메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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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신 분들


원고 감수자:너굴, 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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