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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Aug 07. 2020

땅을 디디는 감각

두 발로 걷는 것의 의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이야기는 인도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책 『마음이 헤멜 때 몸이 하는 말들』 PART 1. '몸이 사라졌다. '를 발췌했습니다.  (전자책 기준 20P)


시바에게 어느 날 악마가 찾아온다.

신이시여, 여신 파르바티를 제게 주세요.


저런, 파르바티는 시바 신의 아내다. 시바는 화가 나서 이마 한가운데 있는 제3의 눈을 떴고 번개를 내리친다. 그곳에 커다란 아귀가 펑, 하고 나타난다. 사자 갈기 머리를 한 아귀는 바짝 굶주려 있다. 악마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고는 너무 놀라 시바 앞에 납작 엎드린다.


신이시여, 제가 잘못했나이다. 살려주옵서서.살려주옵소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말하기를 '신은 자비를 구하는 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이란다. 시바는 악마를 아귀에게서 보호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귀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멘탈의 소유자다. 그래서 눈이 뒤집어진다. 그는 시바를 향해 먹을 것을 내놓으라며 날뛴다. 아귀의 소란에 시바는 실언을 하고 만다.


그럼 네 자신을 먹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귀는 자기 몸을 발부터 뜯어먹어나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지가 사라졌다.

덩그렁! 시바는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매우 만족스러워서,

내 너를 키르티무카(영광의 얼굴)라 부르리. 이제 너는 내 모든 사원의 문 위를 비추어라. 너를 숭배하지 않는 자는 나를 알지 못하리라. 끝없는 허기로 자신의 몸을 먹어 치우고 얼굴만 남은 이자를 보라. 욕망을 이룬 즐거움과 그 대가로 남은 슬픔이 보이느냐? 이 삶의 역설을 이해한다면, 나(신)를 만나게 될 것이다.



사무실에서 전철에서, 카페에서 집에서, 길에서 수많은 키르티무카를 만난다. 폰을 드는 순간 다리가 사라지고, 몸통이, 팔과 어깨가 사라지면서, 웃는 얼굴만 남는다. 이제야 신을 만날 자격을 갖추었나 보다. 영광의 얼굴 뒤로 사라진 몸은 무얼 하고 있는가.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것은


저의 20대는 깊은 우울과 불안감,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 지속적으로 함께 했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유지했던 원인은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 어딘가에 반드시 소속되어야 한다고 착각했기 때문인데요.


20대 초반에는 큰 기대를 안고 들어간 대학교와 방향성이 맞지 않아서 학교 밖에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집단을 찾아다니며, 소속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0대 중후반에는 여러 차례 직장을 이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제 가치가 누군가의 쓸모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 착각했기에 이를 어필하고 입증하는 데 집중했지요.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이 시기에 크게 반복된 루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울감이 찾아오려 하면 스마트폰이나 영상 매체를 장시간 시청한다는 것, 두 번째는 새로운 집단을 만날 때마다 새 신발을 사는 습관이 있었는데요.


20대 내내 다양한 집단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전전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텀이 생기면 어딘가 속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몰려왔습니다.


이를 떨치고자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SNS나 유튜브, 영상 매체를 통해 인터넷 세상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요. 현실에서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했어도, 시각 매체를 통해 느껴지는 왠지 모를 연결감이 좋아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심하면 하루 10시간 이상 눈을 인터넷 세상에 고정했고, 이 시간이 늘어날수록 제 발은 땅을 디딜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복잡했던 머리를 대신해 스마트폰이 생각을 해주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굳이 움직임을 많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 시기에 구매했던 신발들을 보면, 새로운 집단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착용감보다는 외관이 화려하거나 세련된 제품 위주로 구매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매한 신발들은 하나같이 밑창이 약해 거의 한 해를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불편한 신발로 인한 상처와 피가 나는 것에도 상당히 무감각했지요. 애초에 남에게 내 맨발을 보일 일이 거의 없고, 겉보기에 멋지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해 어느 순간 발이 느끼는 감각을 무시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간혹 친하게 지내던 주변인들이 제 발을 볼 때면 밭에서 맨발로 농사를 짓거나, 고된 길을 걸어온 사람 같아 “농부의 발, 예수님 발”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불안감 때문에 반복했던 행위들을 20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몸이 버티지 못하게 되었지요.


오랜 시간을 누운 채 눈을 스마트폰에 고정하자, 목과 어깨의 통증이 심해져 두통과 어지럼증, 불면증에 장시간 시달렸고, 심하면 구토 증상을 동반했습니다. 또한 발에 맞지 않는 신발로 인하여 나중엔 다리와 허리의 피로가 심해 원하는 만큼 오래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


“무뎌졌다”와 “예민하게 느낀다”는 서로 상반된 감각 같지만 사실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감각들은 하나의 주기처럼 함께 움직이며, 개인의 삶에 변화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데요. 이 신호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한 것 같습니다.


한 예로 “노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20, 30대에는 느끼지 못한 신체 감각의 변화를 더 예민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변화한 자신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신체의 변화로 인한 감각의 무뎌짐을 계기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는데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들을 채워나기도 합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기존과 다른 신체 변화를 극복하고자 혼자 동네 뒷산을 등산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는 연습을 했습니다.


등산을 선택했던 이유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제가 무기력하게 누워있으면 부모님은 어떻게든 저를 일으켜 세워 종종 등산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등산길은 잘 닦인 아스팔트 길과 달리, 발 한 걸음 한 걸음에 신경 써서 디뎌야 했었는데요.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무서우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한 걸음씩 집중해서 내딛는 그 과정이 저에게는 큰 안정감을 주었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혼자서는 부모님과 함께 오른 산만큼 큰 산을 등산해보지 않았지만, 흙 길을 내딛는 감각을 느낄 때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과, 혼자서도 걸을 수 있었다는 자신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스팔트 길을 걷게 될 때도 저는 산 위의 흙 길을 걸었을 때의 감각을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알아챈 제 발이 더는 불안감에 휘둘리지 않도록 땅을 디디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게 돕는 안정적인 운동화를 찾아 신기 시작했습니다.


신발이 바뀌니 제 옷차림도 이러한 태도에 맞춰 편안하지만 흐트러짐이 적은 세미 캐주얼 스타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아주 튼튼하면서 발에 잘 맞으며, 당당한 자신감을 담을 신발을 찾아가는 중이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당신에게 궁금한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삶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게 도와주는 당신만의 루틴이 있나요?


<예를 들면 저는 2주에 한 번씩 미용실을 다니는데요. 제 머리 가투 블록 쇼트커트이라, 머리를 다듬을 때마다 마치 묶은 때를 벗겨내는 듯해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2. 이 루틴을 형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 창 또는 제 개인 이메일 arallabiz@gmail.com으로 연락 주세요! 그럼 우린 격주 주 금요일에 또 뵙겠습니다!


김고래 드림.



*이 이야기는 제가 운영 중인 PROJECT_ON_ZONE의 지난 이메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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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신 분들


원고 감수자:너굴, 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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