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래 Sep 30. 2023

무탈하고 평온한 연휴 보내고 계시는지요?

휴재가 길어져 드리는 글

간만의 꿀 같은 연휴, 무탈하고 건강하게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지난 메일에서는 9월 중순에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오겠다고 해놓곤, 실제론 10월이 다돼서야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되었네요..!


올해만 벌써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기고 있어 다소 쑥스럽고, 민망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고, 동시에 그간 있었던 제 이야기도 함께 꺼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올해 초부터 한가위를 엄청나게 기다렸습니다.



우선 표면적인 이유는, 작년에 동네 떡집에서 엄청나게 맛있는 송편과 약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 떡집은 제게는 조금 특별한데요.


일단 1년에 딱 한 번만 밀가루를 전혀 쓰지 않는 찹쌀 약과와, 옛날 시골 할머니댁에서 먹은 듯한 손맛이 느껴지는 송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송편이 색깔마다, 아주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는데요.


초록색이면, 아주 진한 쑥향을, 보라색이면, 시큼하고 새콤한 향을, 노란색이면, 은은한 호박향을 가진 떡에 굉장히 달고 깊은 향이 나는 깨를 듬뿍 넣어, 손으로 손수 빚은 송편입니다.



워낙 정성을 다해 빚으시다 보니, 1년에 한 번만 만드시는 것 같았어요.


또한 밀가루 알레르기가 심한 제가 먹을 수 있는 찹쌀로만 된 약과도 이때 함께 나옵니다.


한 지역에서 산지, 29년 가까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송편을 만드는 떡집이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작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1년 내내 이 떡과 약과가 나오길 기다렸어요.


역시나 올해도 너무나 훌륭한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이유를 떠나서, 제가 한가위를 기다린 이유는 연휴를 빌미로 한 해 동안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재점검하는 시기,


그러니까 잠시 멈춰서 똑바로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농부가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한 후, 어떤 것들이 손에 쥐어졌는지 보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랄까요.


올해 추석 연휴는 더욱이 길기 때문에, 정말 정신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느라, 멈추기 어려웠던 저에겐, 이 순간이 엄청나게 기다려졌지요.


저는 작년 10월부터 고잉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길고 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굉장히 길고 긴 장편의 이야기였는데요.


어떤 결말을 예상하고 썼다기보다는, 그냥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을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완벽하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데요.


"완벽하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가 생각하는 내부의 기준보다는, 외부의 기준에 더 큰 비중을 둔 용어입니다.


이와 반대로, 온전하다는 말에는 외부의 잣대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기준, 외부의 시선을 내제화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 단어에는 좋고, 나쁨이 없고, 호불호도 없습니다. 서로 정반대의 개념으로 보이는 것들이 결국엔 모두 하나였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담고 있지요.



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자신이 온전하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당신에게 잘 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무덥고 잠 못 드는 8월을 거쳐, 비로소 더위가 식어가는 9월에 접어들면서 알게 된 겁니다.


저 자신을 온전한 삶으로 이끌 거라고 믿고 호불호를 나누면서 했던 행동들,


예를 들면, 청소년 교육은 나에게 잘 맞지만, 성인 교육은 나와 맞지 않다,


또는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으니, 돼지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먹어서는 안 된다,


내가 심리적 갑갑함을 느끼는 이유는 부모님으로부터 공간을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수업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교안의 문제임으로 어서 빨리, 이 계약을 종료하고 싶다. 등등


끊임없이 이분법 화하며 분별하던 행동들이 사실은 제 자신을 다시 완벽주의의 길로 다시 빠지게 만드는 행동이었다는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정하게 되었어요.


나는 나 자신에게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고 있음을요.


제 스스로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상반기 내내,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행했던 일들 속에 숨은 진짜 의도를 용기 내어,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30살이 넘어가면서 생긴 돼지고기 알레르기는 사실, 돼지고기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전, 알레르기가 생기기기 전에 가장 좋아했던 소울 푸드가 순댓국이랑 돼지 국밥이었지요.


제가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생겼던 이유는, 과거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20대 내내, 불편한 상사,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 눈치를 보며, 나 자신에게 선택권 없이 강제로 먹어야 했던 음식 중에 돼지가 많아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돼지가 싫었던 게 아니라, 억지로 눈치를 보며 먹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였던 것이었지요.

이 음식을 먹는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30살이 넘어가면서 돼지고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순댓국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저는 제가 돼지고기를 못 먹게 되었을 때, 갑자기 생긴 이 알레르기의 원인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돼지고기를 못 먹게 되었을 당시 제 반응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거든요.



더 이상 불필요한 회식자리에 끼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소화가 안 되는 그 기름진 고기를 안 먹어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다만, 이 원인을 알면서도 마주하지 않았던 이유는 외부의 눈치를 많이 봤기 때문이니다.



사회에서, 돼지고기를 취향으로 못 먹는다고 말하면, 까다로운 사람이 되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다고 말하면 동정과 연민을 주변에서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동정과 연민을 받는 걸 즐겼습니다.


과거엔 이런 행동들이, 제 자신을 위한, 더 나은 선택을 한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원치 않는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때 당시엔 외부에 제 의사를 밝힐 용기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까다로운 사람 취급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불과 몇 주전에, 우연한 기회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 겁니다.


아직도 스스로가 과거처럼,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냐고.


먹기 싫은걸 외부에 눈치를 보며 억지로 먹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있냐고.  


그 질문에 대해서 저는 "아니오. 저는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던 상황 속에 놓여있지 않습니다."라고 답변을 합니다.


과거에 고통스러운 상황에 더 이상 놓여있지 않고, 설사 그런 상황이 와도 더 이상 눈치 보며 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하자,


갑자기 순댓국이 먹고 싶어 졌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으니 순댓국도 못 먹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진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장 벌떡 일어나서, 인근 시장에서 만든 순대를 사다가 입에 넣어봤습니다.


결론은 멀쩡했어요.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가 안 되는 건 있었지만, 저를 위협하던 알레르기 반응은 없었지요.


더 이상 스스로가, 과거에 있지도, 그렇게 나약하지도 않다는 걸 자각하게 되자,


그동안 스스로에게 더 나은 방향일 거라 믿으며 했던 그 호불호의 행동들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되게 사소한 에피소드지만, 먹는 것 이외에도 저는 제 삶에서 지금 저 자신에게 더 나은 방향일 거라 믿으며 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재점검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글도 마찬기 지고요.


나를 온전하게 만들 거라고 믿고 행하던 일들이 알고 보니, 나를 더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었음을,


스스로가 무지했음을 인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글을 제때 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당신이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좀 더 글을 쓰는 일을 신중하게 대하고 있어요.


아직은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을 못 하겠지만, 이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조금 더 거친 후 다시 찾아뵙도록 할게요.



과거가 아닌 항상 현재의 아름다움에 머무시길 바라며, 남은 연휴기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유튜브에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q1zX3oW5Y_c


* 브런치가 아니라, 이 이야기를 이메일로 받아보시길 희망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0808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