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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Aug 22. 2024

고양이의 장례식

애도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을 위한 동화


안녕. 잘 지내?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먼저 연락했었어야 했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먼저 연락 한 번 못 한 나를 용서해.



네가 먼저 연락 줬을 때, 난 정말 너무 기뻤다?



하지만, 우리가 얼굴 본 지 너무 오래됐고,

그간 내 삶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스쳐 지나가다 보니,

내 근황에 대해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답신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연락한 점 정말 미안해.



음…

최근에 나에겐 좀 특별한 일이 있었어.



내 딸 효은이가 기르던 고양이가 얼마 전에 죽었거든.

그래서 이 고양이의 장례를 치러줬지.


너도 알다시피, 난 동물은 보는 건 좋은데,

기르는 건 정말 싫어.


왜냐하면 나는 또 내가 기르던 동물이

나보다 먼저 가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거든...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인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

아빠가 허름한 종이박스를

하나 안고 집에 들어오셨어.


그 더럽고 허름한 박스 안에는,

누렁색 새끼 진돗개가 있었거든?


첫인상은, 개가 아니라 곰인 줄 알았어.


일단 태어난 지 한 달이 좀 지난 강아지라고 보기엔

너무 크고 통통했고, 털이 마치 정전기 일어난 듯이

 부스스하게 올라와 있었지.



그게 내 첫 강아지. 해리와의 만남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도 참 대책이 없었던 거 같아.

가족하고 상의도 안 하고 해리를 데려왔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해리를 만나서 너무 기뻤어.


내 인생엔 평생 강아지가 없을 줄 알았거든.


동물을 데려오면 갖다 버리겠다고,

엄마가 엄포를 여러 번 놓으셨었는데,


이렇게 덜컥 강아지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엄마는 동물을 싫어하셨던 게 아니었어.


동물이 사람보다 일찍 죽으니까,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버거워서

아예 동물 자체를 책임지는 일을 꺼려 하셨던 거였지.


하지만 막상 해리를 만나자

엄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셨어.



아무런 준비 없이 해리가 집에 오다 보니,

 우린 모든 게 다 어설펐어.


우리 부모님은 모두 어렸을 때

시골의 너른 마당에서 강아지들을

기르셨던 분들이셨지.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고작 19평짜리 빌라였고,

실내에서 이 어린 강아지를

기르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난 처음에 해리가 새끼라고 하기엔

너무 덩치가 크니까,

당연히 사료를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냥 집 근처 마트에 가서,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아무 사료나 하나 집어왔어.


근데, 아무리 사료 밥그릇을 앞에 가져다줘도

 한입도 안 먹는 거야.


알고 보니, 젖을 뗀 지 얼마 안 된 너무 어린 새끼라,

사료를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거였지.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었고,

며칠 동안 해리가 밥을 안 먹으니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그래서 물에 사료를 불려서, 한 알씩 입에 넣어줬거든?

그랬더니 그제야 먹기 시작하더라고,



나는 해리가 사료에 익숙해질 때까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사료를 입안에 넣어줬어.


처음엔 물에 불린 사료만 먹던 해리는,

나중엔 물에 불리지 않아도 알아서

사료를 까득 까득 씹어 먹을 수 있게 되었지.



우리 집에서 해리의 응가를 치우고,

밥을 주는 담당은 항상 내 역할이었어.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은

둘 다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항상 늦은 저녁에 들어오셨거든.



그래서 나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쏜살같이 뛰어왔었어.


친구들과 노는 즐거움보다,

하루 종일 혼자 있을 해리가 너무 걱정되었거든.


하지만, 나는.밖으로는 해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질 않았어.


왜냐하면, 아직 해리가

너무 어린 강아지였던 것에 반해

내가 살던 빌라 단지는

차가 너무 많이 돌아다녀 위험했거든.



사실, 솔직히,

내가 해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것 자체를

좀 겁냈던 거 같아.


나에겐 초등학교 일 학년 때까지,

정말 애지중지 기르던 병아리가 있었어.


그런데, 엄마가 병아리를 밖에서

풀 뜯어 먹게 몇 번 데리고 나가셨다가,

도둑고양이에게

내가 기르던 병아리가 물려가 버렸거든?


나는 그때 진짜 세상 떠나가라 울었다?


그게 좀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서,

나 혼자서는 절대 이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



그러다 해리가 조금 더 커서, 다리가 튼튼해질 무렵.

이제는 혼자서 창가 근처에 있는 침대도

막 혼자 오르내리기 시작했어.



한 번은, 해리가 뭐 저렇게 짧은 다리로

힘겹게 침대를 오르내리나 하고 지켜보니

창밖을 보고 있더라고.


밖의 세상을 궁금해하는 거 같았어.



그도 그럴게, 해리는 진돗개였어.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19평 밖에 안 되는 이 집은 너무 좁았던 거겠지.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주말마다 해리를 인근 산에 데리고나가기 시작하셨어.



첫 산책을 나가던 날,

아스팔트에 첫 발을 내디딘 해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거야.


누가 보면, 개를 잡는 줄 알았을 거야.


알고 보니, 맨들 맨들 한 실내보다

 훨씬 거친 바닥을 처음으로 디디다 보니,

발바닥이 아팠던 거였어.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말랑말랑하던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하자, 울음은 곧 멈췄지.



내 기억에 해리는 엄청난 엄살쟁이였어.

왜냐하면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자주 엄살을 피웠거든.



한 번은 집안에서 마치 개잡는 듯한

비명을 듣게 된 거야.


너무 놀라서 가족들이 막 뛰어갔거든?

 처음엔 문틈에 발이 껴있는 것처럼 보여서,

 아파서 우는 줄 알았어.



근데 자세히 보니까 발이 낀 게 아니더라고,

 발이 끼지도 않았는데, 아픈 척을 한 거야.


우리가 놀라서 막 쫓아오는 걸 본 해리는

그 뒤로도 여러 번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같은 수법을 썼어.


부모님도 나도 이젠 더 이상 안 속았지만,

나는 그냥 속는 척하고 맨날 해리가

비명을 지르면 달려갔어.


그리곤 끼지도 않은 발을 꼭 잡고 호호해 주면서,

"아이고 아팠어~" 이러면

해리는 아픈 척을 하면서 내 사랑을 마음껏 받았지.



해리가 우리 집에 오고 난 다음

참 우리 집은 웃는 일이 많아졌어.


해리가 하는 행동을 사람이 했으면 아마 혼났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이항상 삶에 지쳐서

신경질 적이던 엄마를 자주 웃게 했거든.


덕분에 항상 사는 문제로

부부 싸움이 잦았던 우리 집은

 해리가 있는 동안은 화목했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가을.


부모님이 해리를
시골 외삼촌 댁에 보내시겠다고 하셨어.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이라,

도대체 왜 갑자기 해리를

그 먼 시골로 보내냐고 되물었어.



오랫동안 마당이 있는 넓은 집에서 개를 길러오셨던

 부모님 입장에선,

고작 19평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빌라보다는


넓은 마당이 있고,

해리와 같은 진돗개들을 오랫동안 기르고 계신

시골 외삼촌 댁에서 자라는 게

해리에게 더 나은 선택일 거 같다고 말씀하셨어.



처음엔 해리와 헤어지는 게 납득이 안 갔지만,

결국 나도 인정하게 되었어.



내가 생각해도, 나날이 쑥쑥 덩치가 자라는 해리에게

이 좁은 집에서 살게 하는 게 정말 미안했거든.



결국 해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그해 겨울.
시골 외삼촌 댁으로 가게 되어.



아빠와 함께 집에서 거의 4시간

가까이 떨어진 외삼촌 댁을 가는 길.


해리는 난생처음 차멀미를 하게 되어.

떠나기 전 해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먹였었는데, 전부 토해내더라고.


우리는 해리의 멀미가 안정될 때까지 쉬었다 가고,

 또 쉬었다고를 반복했어.



날도 추운데 모든 걸 게워낸 해리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나는 그런 해리를 내 코트 안쪽에 쏙 숨기고

외삼촌댁으로 가게 되어..




내 기억에, 우리 외삼촌은 굉장히 무뚝뚝한 분이셨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외삼촌 입장에서는 소처럼, 개도 일종의 가축이었지.


그래서 예전에 이모가 기르던 요크셔테리어가,

외삼촌 댁 실내에 발을 디디니

어디 감히 개가 사람 사는 집안에 발을 디디냐며,

기겁을 하셨던 게 기억나.



외삼촌은 개를 기르시는 분이었지만,

개고기도 즐겨 드시는 분이었고,


마을에서 복날만 되면 항상 개고기를

이웃들과 나눠드셨어.


나도 내 인생의 첫 개고기를 외삼촌 댁에서 먹었었지.


또.. 사촌 언니 사촌 오빠에게도

엄청 다정한 분은 아니셨던 거 같았어.


항상 꼭두새벽에 일어나,

해가 지기 전에 농사일을 마무리하셔야 했기에,

몸과 마음이 고돼 보이셨지.


그런데, 이런 무뚝뚝한 외삼촌이

다정함을 보이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나였어.


나는 여름방학만 되면 항상 외삼촌 댁에 놀러 가

 물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옥수수도 먹었는데,


외삼촌은 고된 농사일로

잔뜩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가도,

나에게는 항상 활짝 웃어주셨거든


심지어, 여름만 되면

시골에 만발하는 물봉숭아를 직접 따서,

내 손에 올려 물들여 주시곤 했었어.


나에겐 참 다정하고 감사한 분이셨지.



온 세상이 시릴 정도로,
하얀 눈으로 둘러싸인
외삼촌 댁에 도착하자,


나는 추운 입김을 내뿜으며,

내 품에 있던 해리를 외삼촌에게 안겨드렸어.



그렇게 나는 해리를 두고, 떠나려고 했어.

외삼촌이 해리를 잘 보살펴 줄 거라 믿었거든.


그런데, 해리가 내 손목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물고 늘어지더라고.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지만,

코트 자락을 물던 해리의 입을 떼놓고,

매정하게 길을 떠나.


그 당시엔 그게 해리한테 더 나은 일인 줄 알았거든.



그 뒤로 외삼촌 댁에 잘 찾아가지 않았어.


내가 가면 해리가 새로운 환경에

더 적응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거 같아.


그래서 더 자제했어



그러다 1년 후,

6학년 겨울 방학을 맞이할 무렵.

나는 다시 아빠와 함께 외삼촌 댁에

 해리를 보러 가게 되어.  



해리는 그 사이에 아주 늠름하고

등치가 큰 성견이 되어 있더라고.



1년 만에 온 거라,

해리가 나를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 거든?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해리가

내 손목을 또 아프지 않게 물고 늘어지는 거야.

그리고, 나를 알아보더라고.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진돗개는 처음 만난 주인을 절대 잊지 않는다고 했어.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해리가 나를 잊고, 환경에 잘 적응하길 바랐던 거지.



그날, 나는

나를 알아보는 해리를

앞에 두고, 한참을 펑펑 울었어.



오랜만에 만난 해리와 나는

집 앞 눈밭을 함께 산책했어.

그때 해리는 아주 굵은 쇠사슬 형태의

목줄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외삼촌에게 왜 이렇게

굵은 쇠사슬을 찼냐고 물어보니,


해리가 힘이 엄청나게 세져서, 여러 번 줄을 끊고 뛰어나간 적이 많았다고 해.

그래서 목줄을 두꺼운 걸로 바꾸셨다고 하셨어.



나는 그 목줄을 잡고 1년 만에 해리와 산책을 했는데,

외삼촌 말대로 1년 전과 달리 엄청나게 힘이 세져서

내가 그 힘을 감당 못 해 바닥에 끌려가기까지 했어.



내가 본인 힘을 감당 못 하고 끌려가는 걸 알게 되자,

해리는 내 속도에 맞춰서 함께 천천히 걸어줬지.


한참을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밤이 되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해리에게 다가가자

 해리는 이번에는 더 덜 아프게 내 손목을 물고 늘어졌어.


그 행동에 굉장히 많은 의미가 느껴져,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이번엔 자주 오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대로 또다시 해리를 만나러

외삼촌 댁에 가기로 한 전날 밤.


나는 정말 이상한 꿈을 꾸게 되어.



꿈속에서 한 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해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거야.

나는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해리를 막 쫓아가.


근데, 거의 해리 앞에 다다르면,

해리는 나를 한번 흘끗 보더니 막 도망쳤어.


그럼 나는 또 막 쫓아가고를

무한 반복했던 거 같아.



그러다, 해리가 겨우겨우 멈춰서

야! 그만 도망가!

이러면서 딱 해리를 잡았는데


그 누렇던 털이 갑자기 얼룩덜룩한

바둑무늬로 변하더니, 처음 보는 개로 변하는 거야.


잠에서 깨고 나서  너무 어이가 없고,

이 꿈이 뭘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이 찝찝하고 아리송한 기분을 안고, 나는 시골 외삼촌 댁에 가게 되어.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어.


해리가 그 전날 죽었다는 거야.


사유는 외삼촌이 기르던 백구 패밀리들에게 물려 죽은 거였어.



사실, 처음 해리를 외삼촌 댁에 데려갔던 날부터,

해리는 백구 패밀리들과 갈등을 겪었다고 해.


어미로부터 같은 개들 간에 사회화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너무 일찍 인간들 속에서 길러졌던 해리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외삼촌 댁 백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해.



그래서 항상 외삼촌 댁에 가보면,

해리는 백구 패밀리들과 멀리 떨어진

별도의 집에 있었던 거였어.


그런데, 내가 도착하기 전날,

다시 백구 패밀리들과의 서열 다툼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해리가 죽었다고 했어.



나는 그 사실을 알자,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

해리는 전날 밤 꿈에서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거였던 거야.



받아들일 수 없는 해리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나는 아빠 차를 타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나에게 해리의 죽음은,

몇 년이 지나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었어.



그래서 내 주변에서는

해리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금기어였지.

왜냐하면 해리의 해자만 나와도

나는 몇 년이고 펑펑 울었거든.



나는 해리가 떠나고 나서야

나의 무지함을 알아차렸어.

그리고 나는 결심해.


스스로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아예 두 번 다시 우리 집엔 동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그 뒤로 몇십 년간,

내가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살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엔 어떠한 동물도 들이지 않았지.




그런데 웬걸.


우리 집 마당에 어느 순간부터 새끼 고양이들이 자꾸 찾아오기 시작했어.


처음엔 그냥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잠시 머물다가는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내 딸 효은이가,

이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었던 거야.



우리 집에 오는 새끼 고양이들은

동네에서 몸이 약해 어미에게 버려졌거나,

어미를 잃어버려 길에서 떠도는 걸

효은이가 구조한 거였어.



나는 효은이에게 굉장히 단호하게 말했어.


네가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

애초에 정도 줘서는 안 된다고.

특히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얼마나 짧은 줄 아냐고.


어쩌면 이미 병이 들었기 때문에,

어미 고양이들이 새끼를 포기한 걸 수도 있다고.

그런데 이런 고양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면 어쩌냐고.



하지만, 이 똥고집.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효은이는 울며불며 나에게 집안으로는 들이지 않을 테니,

밥만 주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고. 자기가 다 챙기겠다고.

나에게 일절 도움을 청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비록 우리 집이 도시는 아니지만,

길고양이들의 밥을 길에서 챙겨주다

효은이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어른들과

트러블이 있을까 봐 걱정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효은이에게 딱 이 고양이들이

어른 고양이가 될 때까지만 마당에서 밥을 주는 걸 허락했지.



처음엔 두 마리 정도던 새끼 고양이들이

나중엔 다섯 마리까지 늘었어.

약속대로 집안까지는 들이지 않았지만

마당엔 점점 고양이들을 위한 용품들이 하나씩 늘기 시작했지.



그러던 어느 날.
우려하던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어.


긴긴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어느 늦은 저녁.

마당에 있던 효은이가 갑자기 울먹이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어.


마당에서 밥을 챙겨주던 고양이 “백설”이가 이상하다고,

얼른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어.



백설이는 효은이가 챙겨주던 고양이 중에

가장 작고 연약한 아이였어.


나는 백설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를 기억해.

스스로 우리 집 앞마당으로 걸어 들어왔거든.



눈처럼 고운 흰색 털에

한쪽은 노란색 한쪽은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진 오드 아이였지.


처음엔 품종묘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꼬리 쪽이 노랗더라고.


심지어 눈곱이 잔뜩 껴있었어.

이미 병이 들어 있는 거 같았지.



추측하건대 백설이는

어미를 잃어버린 고양이가 아니었어.


왜냐하면 이 작은 동네에서 백설이랑

똑 닮은 어미 고양이가 있는 집을 나는 알고 있거든.


아마 백설이가 태어나자, 품종묘가

아니라는 걸 어미 주인이 알게 되자

특별히 관심 가지지 않았을 거 같아.


심지어 백설이 자체가 워낙 작고, 병들어 있으니까,

어미에게조차 내쳐진 거 같더라고.


그래서 백설이는 항상 털이 떡져 있었어.

너무 어릴 때 버려져서

스스로 그루밍을 할 줄도 모르는 거 같더라고.


난 처음 봤을 때부터 얼마 못 살 걸 예상했어.


그래서 효은이가 백설이가 이상하다고 했을 때도

크게 놀라진 않았던 거 같아.



하지만 효은이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티가 나는 고양이가

흰 눈이 내린 것처럼 너무 예쁘다며,

 “백설”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지.



백설이가 죽기 며칠 전,

한동안 우리 집 마당에서 백설이를 보질 못했어.


난 워낙 길고양이들이야 언제든

자기들 가고 싶은데 있다가 돌아오곤 해서

 눈앞에 안 보여도 배고프면 또 돌아오겠거니 했지.



그런데 며칠 만에

다시 돌아온 백설이는 상태가 이상했어.



평소 자신이 자주 앉아 있던 자리에서

힘없이 축 늘어져 그 작은 몸으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더라고.



나는 효은이에게 말했어.

백설이는 지금 병원에 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죽음이 이미 임박한 거 같다고,

그리고 지금 연휴 저녁이라

이 시골에 동물 병원이 열려있는 곳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하지만 효은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어.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그래도 병원에 데려가게 해달라고 했지.


어쩔 수 없이 차를 운전해서

그 늦은 밤 겨우 연 동물 병원에 도착해.



병원에 도착하자, 수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이미 체온이 20도 밑으로 떨어져서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설이는

 효은이 품에서 몇 번 발을 버둥거리더니

끝내 숨을 거뒀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백설이의 몸은 금방 차게 식더라.


영혼이 없다는 게,

정말 몸만 남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고.



치료도 제대로 못 해보고 고양이가 너무 빨리 떠나자.

효은이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해.


나는 선생님께 길고양이들이 죽으면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어.



한동안 말이 없으시던 수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원래는 길고양이는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묻으면 불법이라,

종량제 봉투에 담아 사채를 처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효은이가 너무너무 슬퍼하는 거 같으니,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산에 잘 묻어주라고...



난 솔직히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일단 이런 경우가 하루 이틀이 아닐 거고,

엄연히 야생동물 사체를 산에 묻는 건 불법이잖아?

그런데 불법인 걸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게 의아했어.



하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고 알겠다고만 하고,

효은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대성통곡을 하던 효은이가

더 이상 울 기력이 없어질 때쯤,

우리 가족은 거실에 모여

백설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의논했어.



난 효은이에게 다시 한번 말해.

백설이는 우리가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라고. 야생 길고양이라고.

그러니 종량제 봉투에 처리해야 한다고.


그래야 적법하다고.


아침에 해가 뜨면 너 학교 갔을 때 내가 처리하겠다고.

그리고 앞으론 더 이상 길고양이에게 마음 주지 말라고.



그랬더니, 이제 더 이상 울 기력이

없는 줄 알았던 효은이가

울며불며 그건 절대로 안 된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어.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성통곡하던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어.

새벽에 사람들 안 볼 때 뒤 야산에

잘 묻어주고 오겠다고.

그러니 그만 울라고.


나는 그런 행위는 불법이라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효은이 귀에는 내 설득이 들릴 리가 없었어.


그렇게 밤새 울던 효은이는

결국 병이 나서 그다음 날 학교에 가지 못했지.



난 효은이가 더 이상 마음 아프지 않길 바랐어.

그래서 효은이에게 말해.


뒷산에 묻어주는 건 불법이니까,

우리 집 앞마당에 같이 잘 묻어 주자고.

그제야, 효은이는 눈빛에 생기가 좀 도는 거 같았어.



난 처음엔 땅을 깊게 파서,

백설이를 박스에 담아 묻어 주려고 했거든?


근데 효은이가 이렇게 백설이를 보낼 수는 없다는 거야.

그렇게 차가운 땅속에 백설이가

들어가면 너무 추울 거라고 했어.



그러더니 집으로 들어가,

평소 고양이들이 서로 앉겠다며 다투던,

인기가 많은 복슬복슬하고

푹신한 방석을 가져와, 박스 아래 깔아주었어.



난 이제 됐는가 보다 하고, 묻으려고 하는데

효은이가 또 기다려 달라는 거야.


그래서 왜 또 그러냐고 물으니

백설이가 너무 털이 떡져있다고

우리가 마지막 가는 길

예쁘게 좀 빗겨주자는 거야.



이미 온기가 없어져 딱딱해진 백설이의 몸을

 효은이는 고양이 빗으로 정말 열심히 빗겨줬어.

그리곤 평소 지저분했던

귓속이랑 발바닥도 정성껏 닦아줬지...



그리곤 자기가 가장 아끼는 담요를 가져와

몸을 잘 감싸주고,

땅속에서도 백설이가 추우면 안 되니까

 박스 빈 곳에 핫팩을 잔뜩 넣어주더라고.



난 그 모습을 말없이 한참을 지켜봤지.

그러곤 효은이에게 물어봐.


또 백설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었던 게 있냐고.



그랬더니 다른 고양이들은

먹어본 사료를 백설이만 아직 맛보지 못했다고.

그래서 이걸 다 종류별로 맛보게 해주고 싶다 했어.



효은이는 집에 있던 고양이 사료를

모두 가져와 밥그릇에 종류별로 담더니

평소 백설이가 좋아하던 게맛살과

함께 섞기 시작했어.


그리곤 죽은 백설이 앞에 놓아줬지.


효은이는 백설이 영혼이 와서

이걸 먹고 갈 거라고 생각한 걸까?

한참을 말없이 기다려 주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남은 친구들에게도 백설이가 작별 인사를

하게 해줘야 한다며차갑게 식은

백설이 앞에 마당 어딘가에 숨어있던

나머지 새끼 고양이들을 모두 집합시켜.



새끼 고양이들도 백설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던 걸까?

한참을 지켜보다 냄새를 맡더라고.



난 다시 한번 효은이에게 물어봤어.


백설이에게 해주고 싶은 게 또 있냐고.

효은이는 한참을 생각하다 그제야,

고개를 절레절레 짓더라고.

이제는 백설이를 묻어줘도 될 것 같았어.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가장 햇살이 좋은 나무 아래 백설이를 묻어줬어.



그리곤 끝날 줄 알았는데,

효은이가 이 자리가 다른 고양이들이 자주 앉아 있는 자리라고.


다른 고양이들이 백설이 무덤을 자꾸 밟으면

백설이가 아래서 갑갑해할 수 있으니

 다른 고양이들이 밟지 않게 뭔갈 해주자고 했어.



나는 그럼 사람들 무덤처럼,

백설이 무덤 위에 두꺼비 집을 만들어 주자고 했어.


동그랗게 두꺼비 집을 만들면 고양이들이

설사 그 위에 올라가도

백설이가 답답해하지 않을 거라고.



우린 마당에 흙을 끌어다

두꺼비 집을 동그랗게 짓고 그 위에

작은 꽃도 한 포기 심어줬어.


백설이의 무덤이 완성되자,

효은이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더라고.


나는 효은이가 또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할 거 같아서

 한동안 그 옆에 있어 줬어.



그리곤 효은이에게 말해.


네가 백설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백설이를 볼 수 있다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우리 집 앞마당에 있으니
언제든 백설이에게 말해도 된다고.



정말 마지막인 걸 효은이는 받아들인 걸까?

한참을 또 펑펑 울더라고.


나는 엉엉 우는 효은이를 껴안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이별은 항상 슬픈 거라고.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줬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해리를 땅에 묻어주던 외삼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는 효은이처럼 해리의 차가워진

몸을 보지 못했어.


숨이 넘어가는 것도 내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


그래서 외삼촌이 해리를 묻어줬다고 했을 때

집에 돌아와서 혼자 상상했어.



혹시 외삼촌이 죽은 해리를

동네 사람들과 먹었으면 어떻게 하지?



평소 외삼촌은 개고기를 즐겨 드시고

외삼촌이 기르던 개들에게도 엄격하게

선을 긋던 분이셨단 말이야.


나는 엄마에게 내 불안한 이 망상을 토로했어.



그랬더니 엄마가 그러시는 거야.

외삼촌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셔서

네가 사랑하던 해리를 그렇게 보내셨을 분이 아니라고.



그때 당시엔 엄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가슴 한편엔 평소엔 절대 그럴 분이 아닌 외삼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끊임없는 의심이 올라왔었거든?



그런데 이제야 나는 외삼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사랑하는 효은이가 충분히

백설이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나 또한 이러고 있으니까.


그 뒤로도 한동안 효은이는

종종 말이 없이 백설이의 무덤을

쳐다보곤 했어.


그러다 갑자기 훌쩍이곤 했지.



얼마 전엔 그러더라고

백설이가 그루밍을 할 줄 몰랐는데

다른 새끼 고양이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따라 하려고 했다고


근데 너무 어설퍼서 항상 머리 위가 떡져져서
마치 잔디처럼 삐쭉 나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고 했어.



효은이가 백설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저 묵묵히 들어줬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



그러다 어느 날

평소처럼 효은이가 백설이를

애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그러곤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오더라고.


“우리 해리는 마지막에 어떻게 떠났을까?”

“많이 아프진 않았을까?”

“혼자 춥고 외로웠으면 어떻게 하지?”



해리가 떠난 지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스스로 좀 놀랐던 거 같아.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았어.



그날 밤 꿈에서 나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밤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속에
 혼자 서있었어.



그 낯선 곳엔 아주 작은 무덤 하나가 있었어.

사람 무덤은 아닌 거 같더라고.

하지만, 곧 누구의 무덤인지 알아차렸지.


“아, 내가 해리 무덤 앞에 와있구나”


난 한 번도 해리가 죽은 이후로 어디에 묻혔는지

 외삼촌에게 묻지 않았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어.



해리의 무덤 위로는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작은 들꽃들이 피어있는데,

나는 그 작은 무덤을 손으로 쓰담, 쓰담하며 말했어.



“해리야, 그동안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정말 미안해”



“진작 왔었어야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왔어.

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정말 튼튼하게도 무덤을 만들어 주셨네.

멧돼지가 와도 끄떡없겠다.”



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 밤나무 숲에서

한참을 해리의 무덤 위에 피어난 풀들을 쓰다듬으며,

해리한테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도 눈물이 줄줄 나더라.


사실 나는 얼마든지 외삼촌에게

해리의 무덤에 데려가 달라고 할 수 있었어.



그런데, 해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나는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왔어.


그리고 두 번 다시 해리에 대해

외삼촌에게 묻지 않았지.

왜냐하면 해리의 무덤을 보면,

 정말로 해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것 같았거든.



내가 두 눈으로 보지 않고,

두 번 다시 해리의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지 않으면,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그 슬픔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하지만, 이제야,
나는 내가 어리석었음을 인정해.



난 그동안 누군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산소에 가는 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갔거든

이미 존재하지 않는 그 빈 무덤에 가서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정말 미련하다...


근데 이제는 좀 알 거 같아…

잊힐 수 있는 죽음은 없다는걸.



그 뒤로, 해리의 무덤이 있는

밤나무 숲에 가는 꿈은 꾸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종종 내 마음속에서,

평소 해리가 좋아했던 간식이나,

살아생전 사주지 못했던 장난감들을 잔뜩 들고,

해리를 만나러 가.


눈을 감고, 꿈에서 한번 찾아가 본 그 길을 따라

 해리에 무덤에 가는 상상을 하면 되거든.



그리곤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리의 무덤 앞에서 마음껏 하고 있어.


언제쯤 이 슬픔이 옅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충분히

내 안에 해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옅어 질때까지

언제든 찾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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