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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6. 2022

호주 이민 풍경

하이브리드 정체성에 대해

호주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었다. 내가 선택한 거주지는 아니지만, 난 호주가 좋다. 특히 내가 사는 작은 도시가 좋다. 어떻게 그 번잡한 서울에서 25년을 불평 없이 살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게다가 마지막 6년, 서울에서의 삶은 남과 북, 동과 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통학을 했으니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이렇게 달구지 타는 삶 같은 느린 곳에서 혼자 꽁무니에 불 붙은 사람처럼 바쁘게 잘 사나 보다. 


한국인의 이민생활을 들여다 보면 양 극단을 달린다. ‘단돈 100불’ (이 말을 신기할 정도로 많이 듣는다)을 들고 이민 와서 ‘거부’가 되었다는 사람. 이 이야기의 변종은 ‘힘들게 유학생활을 마치고’ (이 말도 단골 페파토리다) ‘주류사회에서’ (참 주류 사회 좋아한다. 거기 누가 사는지 궁금하다) 대단한 지위를 차지했다는 사람. 다른 극단에는 ‘가져온 돈 다 까먹고,’ 또는 ‘교민들한테 사기당해서’ (이 말도 얼마나 많이 듣는지 신기할 정도) 홀딱 망한 사람들 얘기다. 이민자에게는 흔히 두 가지의 정서적 정체성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호주 사람과 동일시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중에는 한국의 후진성에, 교민들의 교양 없음에, 학을 떼고 아예 교민 사회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한편에는 아예 교민 사회에서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를 배울 생각도 없고, 호주 사회의 규범과 문화에 관심이 없다. 이 사람들 중에는 흥미롭게도 호주를 문화 후진국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 가족은 여러 면에서 전형적인 이민 가정은 아니다. 사업을 일궈 부자가 되지도 않았고, 가져온 돈이 없어서 딱히 까먹을 돈도 없었다. 호주 교회도 나가고 한국교회도 나간다. 한국말 하는 친구, 영어하는 친구 반반 정도 된다. 한국 드라마도 열심히 보고 호주 뉴스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 버릇도 있다. 주류사회에 껴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지만, 이민자 커뮤니티만을 맴돌며 관계를 제한하지도 않는다. 우리 가족 중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 가족 네 명이 모두 공무원이다. 이민가정 중에서도 특이하지만 평균 호주 가정과도 좀 거리가 있다. 


나는 언제나 이방인 모드다. 한국사람이 있는 곳에서 일해 본 적도 없고, 동양인이 아예 없는 직장에서도 한동안 일했다. 요즘은 정책부처에서 일하는 동양인들이 많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 경우, 일을 할 때도 놀 때도 일단 일 대 다수의 구도가 되면 나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편이다. 적어도 캔버라는 이 다름에 대해 큰 관심이나 부가적 가치를 붙이지 않는다. 그냥 다른 채로 편안할 수 있다.      


난 한국을 가도 이방인이다. 나는 같은 동족과도 쉽게 동일시하기가 어렵다. 유행을 못따르는 패션에, 노메이크업, 청바지로 아무 데나 출몰해서 그런지 내가 해외에 사는 사람인지 담박에 알아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결국 나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호주 사람도 아니다. 호주에 성공을 향한 청운의 꿈을 안고 온 것도 아니고, 호주 사람이 되고자 애쓰지도 않는다. 반대로 고국의 유행과 새로운 가치들을 신기하게 바라는 보아도 내 것이 되게 해야겠다는 욕망이 없다. 


이방인으로 피곤할 것 같지만, 30년을 이렇게 살다보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어느 정도 타협이 만들어 낸 하이브리드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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