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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6. 2022

쓸쓸한, 여름


친구,


여름인데도 가을처럼 쓸쓸한 날이었어, 

녹음 짙은 길을 걸어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던 그날은.

공동묘지라면 전설의 고향스러운 으스스한 분위기와 풀이 덮인 봉분을 떠올리던 내게 그곳은 새로운 경험이었지. 조각공원 같은 느낌이랄까. 


음악가 셍상의 묘, 여배우 진 세버그의 묘도 보았어. 영화 ‘물랑루즈’에 나오는 거리에 살며 19세기 파리의 환락과 그만큼의 고통을 몸으로 살아냈을 것 같은 시인 보들레르의 자리도 거기 있더라. 물랑루즈를 배회하던 찐하고 걸쭉한 인생들이 지나가고, 명민하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으로 도발하던 ‘네 멋대로 살아라’의 진 세버그가 숨 가쁘게 스쳤지. 


한 구석에는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묘가 나란히 있었어. 

그들은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자신들의 지성과 열정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무엇보다 시대와 역사의 공간이 그들의 편이었던 거야. 허름하지만 전통 있는 파리의 카페에 앉아 담배 연기 너머로 열띤 토론을 벌였을 그들의 열정과 아우라가 느껴졌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제목만으로 21세기 수많은 젊음을 위로한 것처럼 사르트르나 보봐르의 책들도 이십 대의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 80년에 되찾은 서울의 봄이 다시 결빙 모드로 진입했다지, 여자는 억압된 이류 시민이라며 막 불붙기 시작한 여성학이 우리를 향해 냅다 소리 지르지, 이래저래 민주화의 길목에서 사르트르와 보봐르는 한 번쯤은 아는 척을 해주어야 할 시대의 인사들이었잖아. 그들이 거기에 나란히 누워 있었던 거야.


묘지를 돌며 유명한 사람들의 누운 자리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꽤 괜찮았어. 

그런데 말이야, 그 유명한 사람들의 묘 주변이 의외로 한적 하단 걸 안거야. 그래도 한 시대의 방점을 찍은 사람들인데, 추모의 흔적이 없다니. 그래서 일부러 추모의 흔적을 찾아 무덤 순례를 했어.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단다. 꽃은 비교적 최근에 죽은 사람, 특히 젋거나 어려서 죽은 사람들의 묘지에 놓여 있었어.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흔적이거나 일찍 놓쳐버린 인생을 애달파할 만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겠지.


지금 추모해 주고 있는 사람들마저 죽고 나면 그곳도 고적해질 거야. 무덤 아래 몸은 흙이 될 테고, 묘석 주위도 인적이 끊길 테니. 이름을 남겨도 아름다운 비문을 남겨도, 아무도 거기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멈칫했지. 한여름 유명인사 찾기 놀이는 이렇게 문득 끝난 거 같아.


돌아오는 길, 길가 식당에 들렀어. 낡은 비닐이 덮인 식탁에 구운 닭과 시금치 파이가 놓였어. 막내는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작은 손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여 닭을 맛있게 뜯어먹었지. 산딸기 같은 입술을 오므려 기름 묻은 손가락을 야무지게 빨면서 말이야. 아이는 눈물 나게 예뻤어.


무덤 속으로 스러져간 인생과 이제 겨우 세상을 향해 몇 걸음을 디디고 있는 딸을 보며 갑자기 나의 과거와 미래가 가지런해졌단다. 이렇게 와서 그렇게 가는 거라는.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모든 생명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생명의 법칙.


묘했어. 정말 묘한 기분이었어.

유한한 시간이니 열심히 살아보자는 결심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호랑이 가죽 같은 이름이나 짧은 인생을 보상해 줄 만한 긴 예술을 남겨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던 것도 아니야. 이것이 뭘까가 궁금해했을 뿐이야. 


평생 팽팽하고 긴장감 있는 인생도 있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대충 배 밑으로 뭉개며 사는 인생도 있지.

태어나서 엄마 품에 안기기도 전에 숨을 거두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백수를 누리는 노인도 있잖아.     

미래를 계획하고, 그 계획이 성취되었는지 체크하며 사는 삶이 있는 반면, 10억에 가까운 인구는 오늘 하루 한 끼는 먹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상황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 시작을 안 했으면, 끝이 없었을 테고, 끝이 있었다면, 언젠가 시작을 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 법칙을 만든 하나님의 지혜에 매 번 감탄해. 여러 변주가 있어도 누구에게도 100% 똑같이 주어진 시작과 끝. 그 어떤 것도, 이 것 외에는 삶을 공평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지 못했을 거야. 


가을날처럼 쓸쓸한 여름이었어, 그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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