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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6. 2022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 살다

나는 산 중턱에 산다. 산과 가까워서인지 야생동물들이 많다. 원하지 않아도 그들과의 동거는 불가피하다. 우리 동네는 각 집마다 포썸 (호주에만 사는 너구리 같은 야행동물) 한 마리 씩을 데리고 산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낮을 살지만 포썸은 우리 집의 밤을 지배한다. 그의 밤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나의 생활 철칙이다. 재작년에 어렵게 뾰족감을 구해, 꾸덕꾸덕 완성되어 가는 곶감을 보며 행복해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귀한 곶감을 먹다가 포썸이 나한테 딱 걸린 거다. 200개 중 한 100개는 먹은 듯했다. 나한테 걸리기는 했지만,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도망도 못 가고 헥헥 거리고 있는 걸 보고 오히려 내가 자지러지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꼬꾸라지듯 집안으로 도망했다.


얼마 전 사나운 개를 키우는 15번지 아저씨가 어젯밤에 자신의 개와 우리 집 포썸이 한판 붙었는데 너희 집 포썸이 많이 다친 것 같다고, 혹 죽었을 수도 있다고 잔뜩 걱정하는 목소리로 위로를 전했다. 상심한 표정으로 위로를 받아들였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도 한동안 포썸이 돌아다녀서 저게 살아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옆집, 11번지 포썸이 변을 당해 죽었다. 이제 그와의 동거는 운명이려니 받아들이려 한다.


새도 많다. 앵무새가 아침저녁으로 방문한다. 먹이를 주어서인지 빨강과 초록색에 깃털 안쪽은 짙은 파란 색인 앵무새의 왕, 킹 페롯의 방문이 잦다. 아기가 아닌 이상 꼭 쌍으로 다녀서 흥부네, 놀부네라 부르는데, 새들 저녁 챙기느라 내 밥 준비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킹 페롯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해바라기씨를 얹어 손바닥을 내밀어도팔 뚝에 앉아 콕콕 잘도 찍어 먹는다. 혹시 우리가 자신들의 출현을 눈치채지 못하면, 부엌 창문으로 날아들어 창문을 부리로 두드리거나 안쪽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이렇게 이쁜 짓을 하니 안 나갈 재주가 없다. 킹 페롯뿐만 아니라 갱갱, 코카투, 로젤라, 무지개 로리킷 등 가지각색의 예쁜 새들이 아침저녁으로 방문한다.

(왼쪽부터 빨래줄 앉은 킹페롯, 앞뜰에 놀러온 얜 뭘까, 바베큐대에 쌍으로 앉은 크림슨 로젤라)


나와 남편은 킨포크나 힙스터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먹을 걸 길러 먹는 도시농부가 되었다. 열 그루의 과일나무와 산딸기 복분자 등 베리 류의 나무들이 있고, 여름 한 3, 4 개월은 시장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채소들이 넉넉하게 자라고 있다. 상추가 많이 자라는 때는 교회에도 가져가고,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레몬이 달린 때에는 동네 사람들 가져가라고 바구니에 담아 집 앞에 내어 놓기도 한다. 이웃들도 무엇을 기르기는 마찬가지. 우리는 서로의 농산물을 바꾸어 먹기도 하고 무심하게 이웃의 집 앞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어제도 남편이 퇴근하면서 현관에 놓인 한 무더기의 마늘을 발견했다. 적게 날 때는 아껴 먹고 많이 날 때는 나누어 먹는다. 많이 날 때, 동네 커피숍에 가져다주면 커피 쿠폰을 준다.

(앞마당 무화과, 뒷마당 무화과, 말려서 먹기)


수세미를 길러 그릇 닦는 수세미로 쓰고 표주박을 길러 이것저것 생활용품까지 만들어 쓰기도 한다. 바가지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아이들을 동원해도 며칠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우리 집 딸들이 나가서 집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아미쉬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미국의 청교도들)인 줄 안다고 농담을 한다. 고추장, 된장, 떡도 만들어 먹는다. 집에는 늘 동치미와 서너 가지의 김치가 쟁여있다. 집에서 만들어 먹다 보니  우리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외식을 즐기지 않는다. 지금은 둘 다 어른이 되어 드물지만, 두 아이들이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애들 친구들이 와서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음식을 잘한다. 친구들을 불러 밭에서 이것저것 거두어 간단한 저녁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밭에서 길러먹기 시작하고는 그나마 잘 가지 않던 쇼핑을 더 가지 않게 되었다. 고르고 돈을 주고 거스름을 받는 과정이 점점 번거로워졌다. 지갑 꺼내는 것도 귀찮다. 호주에 오기 전까지 시골 구경도 못한 서울 촌놈이라, 콩나물과 숙주도 구별 못한 채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밭일은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요즘은 색색깔 호박이 나와서 호박나물과 호박전을 많이 먹고 있다. 오이냉국도 심심찮게 해 먹고 있다. 아이들은 아침에 토마토, 베즐, 파슬리, 피망, 파 등을 거두어 오믈렛을 해 먹고 출근한다. 내일은 거의 끝물인 복분자를 따서 주스를 내어 냉동해 놓아야 할 것 같다. 붉은 무화과와 푸른 무화과가 앞 뒤뜰에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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