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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3. 2022

나태해지기

우리 집 앞마당은 갖가지 꽃이 철 따라 핀다. 바닥엔 잔잔한 꽃들이 튀밥처럼 흩어져 있고 그늘에 야윈 페루 백합이 키를 키우고 있는 미니 오솔길도 있다. 오래된 철제 욕통을 개조해서 분수를 뿜게 했고, 이파리가 빽빽한 커다란 나무 아래 누마루도 놓았다. 빨간 현관문 앞에는 내가 농담으로 노숙자 되면 등에라도 지고 다녀야 한다고 칭찬해 마지않는 푹신한 가든 체어가 있는데 교회 바자회에서 2불 주고 산 것이다. 쿠션을 두둑이 깔고 가든 체어에 누워있으면 바람이 동서로 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현관 포치 비껴 무화과 나뭇잎 사이로 말할 수 없이 시원한, 마셔버리고 싶을 만큼 청량한 하늘이 있다. 간혹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데, 파란 하늘은 더 파랗고 하얀 구름은 솜사탕만큼 하얗다. 하늘이 묻는다, “미세먼지가 뭐야?” 가든 체어에 책 본다고 누워서는 멍 때리고 하늘을 보고 무화과 나뭇가지 사이로 무화과가 잘 익고 있나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는 게 일이다. 등이 편안하니 눈도 스르르 감기고 이래저래 포치 아래 누우면 한나절이 훅 가버리는데 시간이 아까워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다. 


일생을 경찰 출동 하 듯 살아왔다. 공부할 때는 아침에 소몰 듯 애들 차에 태워 문 닫는 동시에 출발해서 학교에 부려놓고 하루 종일 공부하고 정신없이 미팅 준비하다가 하교 시간 놓쳐 주차장까지 단거리 육상을 한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일을 할 때도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호주 공무원 생활은 한국 직장생활보다 여유가 있겠지만, 일하며 책 쓰고 논문 쓰는 일들이 만만치 않았다. 늘 시간이 모자라서 쫓기다 보니 시간이 가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오래간만에 시간이 났을 때, 쉬는 것조차 쫓기며 하는 버릇이 생겼다. 쉬는 건지 쉼이란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 그 때문인지 가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은퇴하고 논문도 접고 텃밭에나 왔다 갔다 하며 밥만 먹고살게 되면, 나의 생활 패턴이 단순화되어 좀 더 느긋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면 한가해졌을지라도 나이에 쫓기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놀아본 놈이 노는 것이다. 젊어서 노세 노세 좀 해보아야 시간에 대한 강박이 덜할 것이다. 


친정 엄마가 추레하게 서울을 오가는 딸이 속상했는지, ‘여기 강남에 점심때 나가면 다 네 나이 또래 여자들 곱게 차려입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데, 너는 회사일에 집안일도 모자라서 밭일까지…’ 그 뒤에 생략된 말은 ‘몬산다 내가’ 일거다. 엄마가 모르는 게, 밭일은 내게 쉼이라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방울토마토를 따는 일, 파를 심는 일, 고구마 줄기를 자르며 저녁에 볶아 먹을 일 등을 생각하는 일 들이 정말 행복하다. 문제는 쉼 조차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그런 취미를 만든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나태하게 살자 결심하고 나태하게 사는 것도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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