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이 방 깊숙이 들어온 나른한 오후, 햇살로 달구어진 방바닥에 길게 누워 책을 읽어야 마땅한 시간이다. 책꽂이를 손가락 여행하다 멈춘 곳은 1977년에 출판된 이상문학상 1회 수상작품집. 우수상은 김승옥이 받았지만 최인호의 작품을 먼저 편다.
나는 딱히 최인호 세대라고는 할 수 없다. 미니스커트와 판타롱이 바닥을 쓸고 간 이후, 말표 조다쉬 청바지와 악어표 라코스테 티가 유행하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한국영화를 유난히 좋아해서 신촌의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섭렵하고 다니던 나에게 최인호는 ‘겨울나그네 (1986 개봉)’나 ‘깊고 푸른 밤 (1984 개봉)’으로는 가까왔으나 그를 그로 알아보게 한 ‘별들의 고향 (1974 개봉)’은 3류 동시 상영 극장에서도 물러간 지 한참은 지나있을 때였다.
대학 축제기간에 단과대 교양 강의실에서 최인호 원작의 ‘별들의 고향’을 상영한 적이 있었다. 별들의 고향은 최루성 멜로의 새 지평을 연 영화였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슬픔보다는 웃음코드를 더 자극하는 영화였던 듯하다. 남자 배우가 ‘경아, 오랜만에 누워 보는군’이라며 목소리만큼 느끼한 시선으로 여자를 쳐다보면, 이십 대 초반이라기엔 너무나 아줌마 목소리로 더빙된 여배우가 ‘아저씨 추워요, 안아주세요’ 하는 식이다. 애틋한 러브신을 보면서 우리가 한 일은 그 대사를 따라 하며 깔깔거리는 일이었다. 80년대 우리에게도 웃겼으니, 십여 년이 더 지난 후에 이 대사가 개그의 소재가 된 건 이해하고도 남는다.
최인호는 선한 외모에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고등학교 재학 중, 신춘문예에 이름을 올리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그의 적지 않은 작품이 영화화되면서 그는 문학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아우른 몇 안 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시절 술집에서 일하는 많은 여자들의 이름을 경아로 바꾸어 버린 ‘별들의 고향’은, 찡그리며 웃는 듯, 예민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70년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가 평범한 아저씨가 되는 과정은 샘터에 연재하던 ‘가족’이라는 연재물에 잘 기록되어있다. 천재도, 청춘의 아이콘도, 천재의 청춘이 생산해내는 도발마저도 촌철살인의 위트로 숙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이 움츠린 중년의 또는 노년 초입의 작가가 필생의 역작을 내어놓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을 때, 우리는 그가 암이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단의 선배인 박완서는 (우연하게 박완서도 1회 이상문학상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아직은 한창인 그이 대신 나를 거두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같이 늙어가는, 어쩌면 젊은 세대에게는 둘 다 문단의 원로라 할 수 있지만, 박완서에게 최인호는 아직도 청년이었던 것이다.
최인호 스스로 암과의 동거를 인정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김유정의 그것에 비견하여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에게는 '봄봄' 같은 경쾌한 소설로 익숙한 김유정이 폐결핵을 이겨내기 위해 돈을 세고 그 돈으로 보양식을 챙기는 것도 생경했지만, 좌절하는 얼굴조차도 쿨한 각도를 보여줄 것만 같은 청춘의 아이콘인 최인호가, 김유정의 삶에 대한 집착을 여실히 보여주는 편지를 읽으며 통곡했다는 것도 참으로 의아했다.
그가 떠난지도 10년이 되어간다.
그를 위해 기도하던 박완서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인호도 총총 그 뒤를 따랐다.
삶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모두가 떠난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삶이 시대의 아이콘이 될 때는,
그 삶을 기억하는 아릿한 마음이 오래오래 간직되어 많은 사람들의 삶의 한 모퉁이에 박제가 될 때,
그리고 필수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신화적 존재의 살들은 희미해지고 뼈들은 더 단단해질 때.
그런 최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