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감촉

움직이고 쌓이고 피할 수 없는

by 이런아란

스케치북 몇 장에 엄마가 글을 쓰고 아이가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었다. <해님은 어디에서 잘까>. 강이나 숲, 두더지 땅굴이나 고래 집으로 잠잘 곳을 골라가는 해님 이야기다. 세상에 한 권 밖에 없는 거라 얼마나 아껴가며 읽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유치원을 다녀와 따지듯 말하기를, 해님은 그냥 가만히 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거란다. 시계 긴 바늘이 돌아가는 게 증거라면서 꼭 그만큼씩 지구가 도는 거란다. 아이가 시간을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직접 새기는 시간도 있다. 놀이방 입구 벽에 등 붙이고 서서 커가는 키를 스스로 기록하는 것이다. 흰 벽지에 선을 긋고 날짜를 적어 둔 게 열 줄쯤 된다. 선들이 올라가는 만큼 숫자 쓴 꼴도 그럴 듯해진다. 우리는 양손으로 숫자들을 더듬으며 시간을 만져보곤 한다.


요즘은 뜨개질을 한답시고 엉덩이를 붙이곤 움쭉달싹 않는 딸. 원래부터 두 손으로 꼬물꼬물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한 알, 한 칸, 한 땀씩 꿰고 맞추고 붙이는 일에 여간 집중하는 게 아니다. 그 조그만 손으로 스무 코를 떠서는 한 줄씩 짜나가는 모습이 저나 나나 신기할 따름. 아이는 대바늘에 시간들을 차곡차곡 걸어나가다 어느 날 넓적하게 펼쳐진 새 계절과 마주할 것이다.


마산에 있는 <문신미술관>에 다녀왔다. 호사가들이 말하듯 부동산 재산도 많고 작품가도 비싼 예술가이자, 유럽에선 세계 3대 조각가로 꼽히며 그를 찬미한 교향곡이 있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의 작업실은 흡사 노예의 일터 같았다.


작품을 만들기 전 구상한 데생만 보자면 세 살배기 실력도 그보단 나을 듯 하지만 완성작의 정교함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쇠, 나무, 돌과 같이 무겁고 거친 소재를 얼마나 들볶고 다그치고 얼러 두었는지 야수 같던 무쇠 덩어리가 이제 갓 땅에서 돋아난 떡잎처럼 순하고 자연스럽다. 정결한 꽃을 보고 조화 같다거나 예쁜 사람을 두고 인형 같다고 말하는 이상한 세상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것이 얼마나 단아하고 정교한지는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다.


눈의 결정, 나뭇잎의 맥, 거미줄의 구성, 꽃잎의 배열 등은 최첨단 하이 테크놀로지로 쉽게 제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해석조차 해내지 못하는 신비들로 가득하다. 패턴 아닌 듯한 패턴이 자유로운 질서 안에 펼쳐진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롭다. 똑 닮은 쌍떡잎이 올라와 주위 환경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해가되 상하좌우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의 조각들 또한 땅과 바람, 물이 길러낸 생명체 같다.


창조주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문신은 백정처럼 일해야 했으리라. 작업실에 놓인 연장에는 손때 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살점이 묻어있을 듯 하다. 한때 섬뜩했을 칼날은 땀이 아니라 눈물과 피고름으로 녹이 슬었을 것만 같다. 창작의 고통이란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데생 속에 있을 리 없다. 온몸을 깎아 이룬 결과에 감탄과 경외를 느끼면서도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작가는 마치 노예처럼, 오늘만 사는 화전민처럼, 고행을 자처한 수도승처럼 시간을 파고 벼리고 들어올렸을 것이다. 수천 번, 수만 번 다듬었을 결 안에는 불가능과 마주한 시간, 타협과 다투던 시간과 자존감으로 앙버티고 절망을 토막 내던 시간이 나이테처럼 품어져 있을 것이다. 지구가 회전하는 그 거대한 힘을 뿌리로 버티며 속으로 견디고 새긴 나무들의 목리처럼 말이다.


시간이란 언제나 움직이고, 쌓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과정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시간의 흔적은 제각기 다르다. 매끈하게 적고 칠한 그림책이 애정 어린 손때로 거칠어지기도 하고, 차갑고 의미 없던 털실 외줄들이 엮여 복슬복슬한 포근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야성을 조련한 시간 뒤에는 곱고 순한 감촉을 맛볼 것이고, 희로애락에 스러지지 않고 버틴 시간 뒤에는 잔잔하고 단정한 결을 만져볼 수 있으리라.


잠든 아이의 뺨에 얼굴을 대본다. 고소한 잣죽 냄새가 난다. 비 온 뒤 죽순 밭에서처럼 숨 붙은 것이 부지런히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달고 가지런한 생명이 고요 속에서 더욱 촉촉하고 매끄럽게 느껴진다. 아이의 시간이 언제까지고 곱게 쌓일 수 만은 없을 것이다. 훌쩍 자란 키는 부모가 막아주지 못하는 바람 앞에 놓일 것이고, 늘어난 제 무게만큼 넘어져 일어서는 일이 고단해질 것이다. 속으로만 우는 날이 올 것이고, 남보다 나를 용서하느라 힘든 날을 마주할 것이다. 속상해서 벌개진 뺨을 아무도 만져주지 않는 날. 외로워서 슬픈지 슬퍼서 외로운지 알 수 없는 그런 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코 앞까지 밀어닥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깊숙한 심장 속에 이 고운 시간들이 틀림없이 새겨진다면. 추억으로, 자신감으로, 가치관으로 응축돼 아이가 살아갈 단단한 원동력이 되어준다면. 메마른 사막에서 견디는 선인장의 보드라운 속살처럼 어린 시절을 보듬고 살아간다면 엄마는 걱정이 없겠다. 날아보아라, 떨어져보아라, 다시 일어나 야금야금 걸어가 보아라, 너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말해줄 수 있겠다.


아기엄마로만 살았던 내 부들부들한 시간 속에 이제 오돌토돌 질감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오감을 열어 세상을 읽고 쓰는 용기가 옹이처럼 박혀서다. 필요하고 알맞은 글을 쓰고자 문장을 다듬는다. 생각부터 단단히 세련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시간들이 또 한참 쌓인 것이 훗날 꼬들꼬들 재미있게 여겨지기를. 사람을 위로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LP판의 매끄럽고 정돈된 감촉을 갖게 되면 좋겠다.


빚 갚듯 일단은 열심히 써봐야 될 일이다. 작은 재주나마 누리는 체면을 차리려면 우직하게 시간을 깎고 다듬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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