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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Apr 22. 2021

멀미


환절기. 기온이며 습도, 체온까지 제멋대로 출렁이는. 멀미, 같다. 속까지 뒤집힌 하늘이 잿빛 토사물을 게워내고 다음 날이면 대청소를 끝낸 듯 해사하게 군다. 뭣 모르고 자란 잡초들이 엉겨 다투고, 포악한 바람이 아무 멱살이나 잡고 흔든다. 속절없는 것들이 뜯겨 나가고 그러면서 기웃기웃 새로 돋아난다. 좀체 정신을 차릴 수 없고 항생제를 끊을 수 없다.


다가올 계절의 옷 위에 지난 계절 옷을 껴입었다가 벗었다가 다시 입는다. 컨디션이 조금 좋아진 날에도 멀끔한 창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쫓기듯 흘깃거리며 짧은 문장을 읽는다. 매 맞는 자에게 시험하듯 주어진 불온한 안녕을 의심하느라 그날의 기력을 다 쓴다. 그러면 금세 또 다음 날이 된다. 예측할 수 없고 못 돼먹은.


버티느라 커피를 마시면 종일 목이 마르다. 말간 오줌만 자꾸 눈다. 검고 탁하고 끈적한 여과물은 몸 안 어딘가에 눌러 붙어버린 걸까. 그것이 날숨과 같이 빠져나가야 할 내 안의 검고 탁하고 끈적한 것들을 막고 있는 모양이다. 날숨, 한숨, 헛웃음, 콧물, 땀, 하나마나한 이야기, 뜻 없는 송구스러움, 몸에 밴 인사 따위와 함께 쓸려나가야 할 무언가를. 그렇게 빠져나가야 또 다음 날 살아낼 새 숨이 들어찰 공간에 갇혀.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 채 화만 난다. 불안하고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출렁이는 계절의 뒤채임 한가운데 갇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진도 앞바다에 끼어, 생과 죽음 사이에 끼어 출렁거리던 그 날처럼.


악의 얼굴은 몹시도 태연자약하여 나는 혹시 나만 모르는 세상의 일리라도 있는 건가 자문할 뻔 했다. 조롱하듯 침몰선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그 선연한 잔혹함에 무슨 저의가 있을 거라고. 긴 세월 길들여진 방정함을 저주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 앞에서 내 탓부터 헤아려 버릇한 겁 많은 조심성, 그 온순한 열등감. 위대한 자들이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나 같은 범인들은 그저 가만히 있어온 음전함도 저주했다. 한편으로 그 공포가 너무도 정연하고 담대해서 그것을 맞닥뜨린 이들의 얼이 쑥 빠져나가 미처 무섭고 슬플 겨를조차 없는 편이 나았겠다고 생각한다. 낫다, 라는 단어를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한 줄 한 단어 이어가기가 무참하다. 그러나 못 본채 일어나지 않은 일인 양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이야기.


그때 나는 내 바다에 앉은 내 생명 지키기가 바빴다. 태아의 강낭콩만한 심장이 조난 신호를 보내왔다. 끔뻑끔뻑. 원래는 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어야 한다는데. 뭐라도 해야겠다고 입원을 자처한 날, 그 배가 가라앉았다. 끔뻑끔뻑. 검은 바다에 고깃배 집어등이 간간히 흐릿했고 아마도 생은 그보다 더 빠르고 밝은 빛 안에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때는 짐작하지 못했다. 식판을 싹싹 비우며 일주일을 버티면서 의심조차 안 했다. 그런 빛이라도 간절하면 붙잡아지는 줄 알았고,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설마하니 그렇게 끝날 줄은 몰랐으니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낙관이 얼마나 정신 나간 짓이었는지 새삼 끔찍하다. 죽음 코 앞에서, 부조리의 목전에서 내가 또 그런 맹렬한 믿음을 휘둘러 댈까 두렵다. 상실만이 아니라 자책 때문에도 갑절로 괴로운 시간은 반드시 온다. 애써 순진한 척 굴었던 죄값이 주인을 찾아올 테니.


모든 점멸이 멸해버린 순간부터 바깥은 부산스럽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때, 나는 그때조차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직 슬프지도 못한 채였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달까. 슬픔의 순서나 방법도 몰랐고, 내가 감당할만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함성과 오열 속에서 나는 울지도 내색도 못했다. 당사자에도 방관자에도 끼이지 못했고, 가해의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위로를 하지도 받을 수도 없었다. 초상집, 또는 전쟁터의 폭음이 너무 커서 되레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다. 아기집을 긁어내고 오던 날, 끝내 떨어지고 말 마지막 잎새가 보기 싫어서 모든 커튼을 치고 스스로 갇힌 사람처럼 굴었다.


그때 울지 못한 울음이 이토록 해마다 일렁이는가. 메슥메슥. 지평선마저 흔들리며 바른 것 그른 것 적당한 것의 경계가 요동쳐 온종일 열이 끓었다 식고 욕지기가 나는가. 언제쯤 뭍에 우뚝 서서 온전히 앓고 온전히 낫고 온전히 희망할 수 있을까. 나는, 그리고 어떤 나들 또한 아직 제대로 슬프지도 못했는데.


416 기억교실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복원, 이라는 말을 써도 되는 건지, 글 밖에 없는 종이 위에서 메스껍도록 무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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