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아란 Nov 12. 2021

작가 스무 명



아아. 우리 아파트에서 알립니다.

시인 분들께서는 지금 1층으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열 명이 모이더란다. 수필 작가분 모이라 하면 스무여 명 될 거란다.


며칠 전 출판사 미팅 갔다가 들은 우스갯소리다. 모모한 문예지 편집장이자 평론가가 꺼낸 얘기고, 수필의 문학성을 위해 변방으로 돌아온 교수님이 제일 크게 웃었고, 그 옆에 젊은 출판사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하였다. 오직 작가인 나만 궁금함을 못 이겨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무슨 일로 작가들을 내려오라고 했을까요?"


군대에서 미술 전공한 사람 뽑아다가 연병장 벽화를 그리게 한다지. 수학과 나온 놈 손들라고 해서는 족구시합 점수 매기게 한다고. 수필을 쓴다는 내가 아버지 문중 행사에 쓸 인삿말을 몇 번 대필한 적은 있다. 둘째 어린이집에서 시범 운영한 학습 프로그램에 대해 학부모 감상문을 기가 막히게 써내서 원장님 체면 세워 드린 적도 있다. 수필 작가가 모여 해야 할 일이, 수필 작가라는 사람들이 있어 이로운 일이 이런 일만은 아니어야겠지만.


수필을 쓰고, 수필을 생각하고, 수필을 읽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해야 옳은 일. 그들이 하면 좋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함께 모여 해내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 즐거운 일이 한 두 개는 더 되면 좋겠다. 하고 많은 글 중에, 누군가 향한 자그만 메모 한 줄까지 포함해서, 내가 굳이 수필을 쓰면서 하고자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일까. 종이로 쓰여질 나무를 이렇게 베어내면서, 이렇게 두 눈을 혹사시켜가며, 온종일 등이 아프도록 새 글을 쓰고 고치고 괴로워하다 다시 책상에 가 앉는 형벌을 자처하면서 나는 어디에 이르고자 하는가. 나를 어떤 쓰임에 쓰이고자 이 안달을 내고 있는가.


요 납작한 재주로 내 딸 하나 기쁘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꺼워라 하리라. 때론 어수룩한 내 속내에 누군가 안도하고 희망할 수 있다면, 어찌어찌 풀어 쓴 한 단어에 누군가 제 마음속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잉크값 정도는 한 셈 쳐야 하리라. 범박한 회한일지언정 나와 남의 기우뚱한 삶에 굄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내 등의 찢어지는 아픔에게 합당한 영광까지도 찾아준 것이리라. 아아. 그래서 아파트 한 단지에, 이 땅에, 이 역사에 수필 작가라는 자들이 있어 딱 하기 맞춤한 일을 했노라 말할 수 있다면, 시인 열 명과 함께 저 우스갯소리를 듣고도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말했다. “실제로 예술이라는 물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는 존재조차 나는 불분명하니 손에 잡히질 않아서, 스승님 가신 뒤 조급한 마음으로 첫 책 낼 원고를 모았다. 돌아가신 공부방 문우보다도 나이가 많은 우리 아버지 생각하면서 근사한 그림작가도 섭외했다. 퇴고 시간을 벌어보겠노라 막내에겐 방과 후 특강을 시키고, 저녁 식탁엔 배달된 밀키트를 끓여 낸다. 이 미안함을 그저 고마움 만으로 바꿔내고자 나는 우스갯소리에도 함께 웃지 않고 꼭꼭 곱씹어 글로 써낸다. 자조가 반성이 되고, 겸허가 패기가 되도록 또 쓰고 고치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씀직한 것을 쓰다. 내 집필실 이름은 ‘필이당’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없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