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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Nov 16. 2021

노래가 되지 못한 노래



아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요맘때 장난꾸러기들이 마구 엉터리로 지어 부르는, 특히 똥이나 방귀 가사가 들어가는 그런 개사곡 얘기가 아니다. 또박또박 옳은 문장의 가사일 텐데 부르기를 괴상하게 부르는 것이다. 다시 해보라 하면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부른다. 완전히 같지 않은 것, 그러나 비슷한 것. 나는 둘 다 너무나 우려스러워 온몸이 떨린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발성구조 때문이 아니다. 가령 ㄱ과 ㄷ의 발음 구분이 어려운 시기가 있다. 같은 구개음 과의 발음은 아이들 입장에서 하기 편한 쪽으로 택해진다. 거북이를 또북이로, 껌을 똠으로 발음하는 식이다. ㅅ 발음이 어렵기도 할 때고, 혀가 덜 발달되어서도 그렇지만 지금은 과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재앙 때문이다. 다양한 어휘를 습득하고 그 용례를 일상에서 직접 써보면서 자신의 지식으로 체득할 시기, 아이들은 이 년째 마스크를 끼고 있다.


외국어 배우던 우리의 경험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듯 언어는 감정을 실어 억양이나 음색, 표정이나 제스처까지 총동원해 소통하는 도구다. 언어 뿐 아니라 정서발달에도 30% 이상의 비언어적 신호가 영향을 미친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동공이 작아지거나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고, 분명 칭찬의 말이더라도 뉘앙스를 통해 그것이 비아냥인지 아닌지를 알아챌 수 있다. 더군다나 아직 활자를 깨치지 못한 아이들은 들리는 대로 인지할 따름인데, 이때 발음하는 사람의 입 모양이나 눈짓, 표정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집에서 가족과 나누는 대화만으로는 학습에 한계가 있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생활 안에서 쓰이는 어휘는 그다지 다채롭지 못하다. 다양한 간접 경험을 위해 동화책을 필사적으로 읽어주곤 있지만 그렇게 알게 된 단어라도 실생활에서 자꾸 써먹어야 체득이 되지 않던가.


어린이집 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709명 중 74.9%가 “아이들의 언어 발달 기회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또래들과 노는 중에도 간단한 의사표현을 문장으로 이어내지 못해 놀잇감을 뺏거나 친구를 미는 식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단다. 그렇다고 개당 만 원쯤 하는 투명마스크로 완전히 바꾸기엔 재정적 부담이 클 것이다.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글자 교육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놀이를 지어내고, 웃기는 개사곡이나 따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힌 큰애처럼은 둘 수 없었다. 책상에 거울을 올려놓고 아이 손에 연필을 쥐어 내 앞에 앉힌다. 옆이 아니라 맞은편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누군가 사용하는 어휘 그의 언어세계를 말해준다고 한다. 이는 곧 사유의 세계, 시각의 넓이와 깊이와도 연결될 것이다. 그런 언어 습득의 과정을 어렵게 만든 이 일상을, 아이들에게 진 크나큰 빚을 우리는 어떻게 갚아가야 할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는 5세 미만의 어린이가 안전을 목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성인 남성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이맘때 아이들 폐활량을 우려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고 방침을 준수하느라 편의를 포기하는 쪽은 어린아이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어른들이 모든 것을 꼼꼼하게 지키고 만전을 다해 아이들만큼은 자유롭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2020년에 태어나 심각한 낯가림 증세를 보이는 아기들, 사회성 부족으로 갈등을 겪는 유아들, 언어 습득의 골든 타임을 망치고 있는 내 딸과 또래들의 비극을 부디 심각하게 여겨주십사, 애끓는 부모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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