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이라도 해도 무방할 듯하다) 글을 쓰는 것보다 글을 읽는 데 더 익숙하다. 우리가 말하는 양보다 듣는 양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인데, 특히 쓰기의 경우 툭툭 던지면 그만인 말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데도 자기소개서나 일기, 감상문, 논작문 따위 다양한 글을 쓸 때면 언제나 '창작의 고통'을 느낀다.
사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고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굴까'하는 생각이 처음 든 건 최근의 일이다. 내가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서 그렇느냐? 당연히 아니다. 즐겨 쓰지만 잘 쓰진 못하는 내가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름 책을 꽤 읽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독서량이 부족해서일 수도, 문해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또는 내가 오만해서일 수도 있겠다.
한 소설책을 읽고 나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 책을 읽는 속도가 썩 빠르지 않아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도 적어도 2-3일은 잡아야 읽어내는 나지만, '그 책'만큼은 처음 편 자리에서 맨 끝 '작가의 말'까지 모두 읽고 나서야 책을 덮었다. 장난 아닌 흡인력이었다. 책을 읽고 난 여운에 젖어 5분 정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작가의 이력을 검색하고 있었다.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궁금해 이 작가의 산문집 하나를 사서 읽었다. 소설과는 또 다른 문체였지만 흡인력과 전달력은 여전했다. 게다가 누구나 겪을 만한 경험에서 누구나 생각해내지 못할 것들을 끌어내는 남다른 통찰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진 게.
글을 통해 이 작가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욕심이 마구 샘솟는다. 나도 이 사람만큼만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이 생긴 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굴뚝같아졌지만, 글을 쓰려 펜을 놀리고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일이 더 어려워진 듯하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고르고 쓰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지금 이 글(?)은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려고 애쓰며 쓰고 있다.)
많이 쓰면 더 잘 쓰게 될까?
내 짧은 경험상 위 질문에 대한 답은 "Yes or No"다. 물론 생전 글 한 번 안 써본 사람이야 처음 썼을 때보다 두 번 썼을 때, 다섯 번 썼을 때 글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글을 쓰는 걸 취미 또는 특기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작만으로 글 실력을 높이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 터. 글을 쓰면 쓸수록 많이 읽는 것,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글을 쓰는 건 집을 짓는 일과 같아서, 재료가 없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의 재료를 모으는 일을 거창하게 '취재'라고도 하지만 사실 글의 재료는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언제라도 모을 수 있다. 책이나 음악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도, 신문에서 읽은 기사도 심지어는 오늘 저녁에 먹은 음식도 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뭔가 새로운 재료가 있어야, 재료가 많아야 흥미를 끌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취재 여행을 떠나고, 기자들이 발품 팔며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재료만으로 글을 잘쓸 수 있느냐? 그 재료가 정말 '특별한' 재료라면 그 자체로 독자를 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일 뿐, 남들은 절대 하지 못할 특별할 경험을 할 기회를 얻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내 눈 앞에 운석이 떨어질 일도 없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글에 차별성을 더해주는 건 그 글감들로부터 끌어낸 작가만의 생각(통찰)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표현력이다.
내게 통찰과 표현력 중에 더 중요한 걸 굳이 고르라면 통찰을 고를 것 같다. 표현력이야 담백하게 전할 수도 있고, 남의 글을 읽고 필사하면서 기계적으로라도 키울 수 있는 반면, 통찰은 꾸준하게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뷔페식당에 가 식사를 하는데 어린아이가 울며 부모에게 떼를 쓰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가정하자. 많은 사람들이 아이 울음소리에 식사를 방해받아 불쾌해하거나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하며 식사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통찰하려는 사람은 그 상황을 '관찰'한다. 부모가 아이를 달래는 방식, 이에 대처하는 종업원의 태도 등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리고 생각한다.
'왜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달래지 않을까, 종업원은 왜 아이와 부모에게 퇴장을 요구했을까, 이 상황은 요즘 확산되고 있다는 노키즈존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노키즈존의 확산은 바람직한가, 노키즈존은 무엇을 배제하려는 것인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그걸 기록한다. 그럼 그 기록이 하나의 깊은 통찰을 담은 글감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록하며 통찰을 얻는 건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는다.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걸 인식해도 처음엔 생각의 꼬리가 금방 끊어져 버린다. 마지막으로 기록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통찰이라도 휘발돼버린다. 그래서 나는 경험과 통찰, 그리고 기록까지가 취재라 생각한다.
글을 쓸 재료를 착실히 모았다면 거의 다 된 셈이다. 어떻게 표현할지, 구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지만 이런 건 남의 글을 분석하며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혀진다. 그리고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자신만의 글 구성, 문체, 표현이 생기기도 한다.
'목적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앞서 이야기한 일련의 고생스러운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무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쓰는 글이라도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아무말대잔치라도 꾸준히 글을 써가는 건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싶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개요도 없이 무작정 쓰기 시작한 이 글. 이 글을 쓰다 보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돼버린 느낌이다. 부지런히 경험하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꾸준히 써야 한다는 건데, 결국은 '부지런해야 글도 잘 쓴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태생이 게으른 나 자신이 그동안 '글 좀 쓴다', '글 쓰는 게 취미이자 특기다'라며 떠벌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새삼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