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를 이긴 개인 가게들
마카롱(macaron)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디저트다. 쫀득한 꼬끄에 부드럽고 맛있는 필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마카롱. 한국에 마카롱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던 초등학생 시절, 헨리크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에서 마카롱이라는 과자를 처음 접했다. 여자 주인공 노라가 매일 달콤한 마카롱을 먹다가 남편에게 꾸지람 듣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도대체 마카롱이 어떤 과자이기에 저리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먹을까 궁금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읽었던 책에는 마카롱이 '아몬드 가루 반죽으로 만든 프랑스의 디저트'라고만 설명돼있었다. 빵이나 과자 같은 디저트류는 다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다고만 알고 있던 내 배경지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마카롱이라는 디저트는 내 선망의 대상이 됐다.
내가 마카롱을 처음으로 먹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한껏 부풀어 있던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맛이었다. 한국에서 마카롱이 지금 같이 인기를 얻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르꼬르동 블루와 같은 해외 유명 제과학교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파티시에들이 연 과자점에서 '프랑스 정통'이라며 판매하는 마카롱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한국에서 마카롱의 인지도는 점점 높아졌다. 꼬끄와 필링이 1:1:1 비율에 맞춰 정갈하게 만들어진 정통 마카롱부터 필링이 왕창 들어 한입에 베어 먹기도 힘든 뚱카롱까지 그 형태와 맛도 참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서울 번화한 동네에 주로 생기던 마카롱 가게들이 이제는 전국 방방곡곡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대만 카스텔라, 버블티, 흑당 버블티, 마라탕 등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와 단시간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음식이 많았지만 마카롱만큼은 여타 음식들과는 인기를 얻는 방식이 다른 듯하다.
카스텔라나 버블티, 마라탕과 같은 음식들은 소수의 프랜차이즈 업체가 수많은 가맹점을 양산하면서 한국에 자리 잡았다. 가게를 낼 자본금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한국에서 맛 좋기로 유명한 마카롱 가게들을 찾아보면 하나 같이 모두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업장이다. 버블티 하면 공차, 아마스빈, 마라탕 하면 라화쿵푸, 라공방 이렇게 프랜차이즈의 이름부터 떠오르기 십상. 하지만 마카롱은 지역마다 맛 좋기로 소문난 고유의 마카롱 집 이름이 있을 뿐이다. (물론 마리웨일 등 마카롱 전문 프랜차이즈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 프랜차이즈가 특별히 맛 좋기로 소문이 나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장사를 해야 가맹비도 내고 월세도 내고 재료비도 충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의 사업 모델과는 영 맞지 않는 음식이 바로 마카롱이다. 마카롱은 다른 인기 음식에 비해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난도도 높은 음식이다. 게다가 만든 후 하루 정도 숙성 시간이 필요해 만들자마자 팔 수도 없다. 많은 개인 마카롱 집이 격일 장사를 하거나 일주일에 3-4일 정도밖에 오픈하지 못하는 이유다. 때문에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마카롱 가게들 대부분이 일부 제품은 매장에서, 나머지 제품은 본사 공장에서 만들어 판매하거나 전량 본사로부터 공급받아 판매한다. 그러나 마카롱은 음식 특성상 오래 두고 판매하지 못해 재고 관리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이틀 이상 쇼케이스에 두면 꼬끄가 습기를 금방 흡수해 눅눅해지거나 질겨져 상품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 납품받는 업체들의 경우 재고 관리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마카롱 장사에 있어서만큼은 프랜차이즈보다 개인 장사가 경쟁력 있는 이유다.
개인 마카롱 가게가 프랜차이즈보다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개인 마카롱 가게의 마카롱은 영업일마다 다른 종류의 마카롱 라인업으로 자연스레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예를 들어 오늘 먹은 민트초코칩 마카롱이 맛있었다고 해서 내일 마음대로 또 사 먹을 수 없다. 마카롱 집 사장이 민트초코칩 마카롱을 라인업에 또 포함시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날그날 달라지는 라인업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고, 이에 따라 기호가 서로 다른 다양한 소비자들이 가게를 찾는다. 소비자는 모처럼 자신의 기호에 맞는 마카롱이 라인업에 있다면 예약을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사 먹는다. 그 맛이 또 언제 판매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때로는 단골의 요청에 따라 라인업을 살짝살짝 조정해주는 정도 보여주는 마카롱 가게에 어찌 발길을 끊겠나?
소셜미디어나 블로그 등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개인 마카롱 집 사장들은 손님들과 소통한다. 이들 소통 채널을 통해 신제품 피드백을 받고, 라인업 건의도 받는다. 유해 색소, 재고 판매와 같은 이슈가 터지면 즉각 해명하거나 시정해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운다. 이는 몸집 큰 프랜차이즈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인 동시에 개인 마카롱 가게들이 프랜차이즈보다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업종이 프랜차이즈에 잠식당하고 프랜차이즈에 의해 지역 상권이 단일화하는 요즘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건너온 마카롱이라는 디저트를 파는 가게들이 흥하는 현상이 참으로 반갑다. 마카롱이 앞으로도 흥하기를, 마카롱 개인 사업 모델이 앞으로 다른 업종들의 개인사업자들이 프랜차이즈에 맞서기 위한 힌트가 돼주길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