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과 '몸만 자란 아이'
코로나19가 테니스계를 덮쳤다. 얼마 전 테니스 남자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가 주도해 열린 아드리아 투어(Adria Tour). 지난 14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아드리아 투어 1차 대회가 끝난 후 그리고르 디미트로프와 보르나 초리치, 빅토르 트로이츠키 선수가 연달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내달 출산을 앞두고 있던 트로이츠키 선수의 아내와 선수들의 스태프들까지 확진 판정을 받으며 비판의 화살이 조코비치를 향했다.
조코비치가 비판을 받은 건 비단 대회 운영 중 방역에 소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과 스태프의 확진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는 상황에도 책임자로서 신속히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의 불씨를 댕겼다. 조코비치가 입장을 밝힌 건 그와 아내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후였다. 그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시기에 대회를 개최하고 방역에 더 신경 쓰지 못한 건 자신의 잘못이며 자신의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일부 조코비치 팬들의 태도에 눈이 갔다. 테니스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한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아드리아 투어와 주최자인 노바크 조코비치를 비판하자 조코비치 팬들이 조코비치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태도에 눈이 간 이유는 그들이 대는 근거 때문이었다. “현재 열리고 있는 다른 대회도 있는데 왜 아드리아 투어와 조코비치만 비판하느냐”는 식의 근거. 나는 조코비치의 팬들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현재 열리고 있는 다른 대회가 있다고 해서 아드리아 투어와 조코비치의 잘못이 없어지는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유독 아드리아 오픈과 조코비치에게 언론과 테니스 팬들의 관심이 몰리는 건 ‘노바크 조코비치’라는 인물이 공인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테니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명인이다. 조코비치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대중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또한 그 자신이 인지도로 벌어들이는 수익 역시 어마어마하다. 그렇다면 조코비치 본인 역시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팬데믹 선언이 된 상황에 아드리아 투어를 개최하면서도 4천 명이 넘는 관객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지 않은 것, 선수들끼리 거리낌 없이 포옹하고 악수하는 모습을 그대로 팬들에게 보여준 것. 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선수의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런 조코비치를 감싸기만 하려는 일부 조코비치 팬들의 태도는 되레 조코비치를 더 욕되게 할 뿐이다.
“왜 나한테만 그래?”, “당신도(쟤도) 과거에 그러지 않았나”
어린아이들이 친구나 형제, 자매와 싸우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잘못은 다른 사람도 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나 처벌을 회피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주 간과하는 건, 친구나 형제, 자매도 잘못했다고 해서 그들 자신의 잘못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어른들이 회피 전략을 쓴다고 해서 아이들을 크게 꾸짖지 않는다. 아이들에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아이들의 회피 논리를 어른이 돼서도 답습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정치인들도 아이들의 회피 전략을 편다. 정치인이 아이들의 회피 전략을 사용하는 걸 그냥 웃고 넘기기 힘든 이유는 정치인에겐 그들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공인으로서, 시민의 대표로서 그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사회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 정치인이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다른 정치인의 행적을 들이대는 게 곱게 보이지 않는다. 앞서 여러 번 말했듯이 다른 사람이 본인과 같은 잘못을 했다고 하여 자신의 잘못이 없어지지 않는다.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조코비치의 극성팬들이 조코비치를 감싼다고 해서,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의 과오를 들이댄다고 해서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 가벼워지진 않는다. 오히려 책임 회피 태도로 사람들이 눈살만 더 찌푸릴 뿐이다. 조코비치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질 수 있는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도 조코비치의 극성팬들의 태도 때문에 되레 조코비치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처럼 말이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토 달지 않고 책임을 지는 것.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결국 한 사람이 '진짜 어른'이 됐는지, '몸만 자란 아이'로 남았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
(p.s. 아드리아 투어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모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