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나누는 사람(1)

첫 번째 이야기. 전혈 헌혈 TMI

by RanA

얼마 전 촬영감독을 준비하는 한 지인과 헌혈 관련 짧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연일 혈액 수급이 비상인 상황에, 헌혈에 대한 오해를 풀고 헌혈에 동참해줄 것을 독려하는 취지의 내용. 시간이 허락하는 한 헌혈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이 작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헌혈이 유일하게 오래 하고 있는 봉사활동이기도 하고 최근 혈액 수급 전쟁 상황이 길어지고 있어 헌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태어나 처음으로 헌혈의 집을 찾았다. 여성의 경우 혈액비중 검사에서 헌혈 부적격 판정이 나는 일이 많다고 들었던 터라 적잖이 긴장을 했던 기억이 난다. 헌혈 전 문진을 할 때 손가락 끝을 란셋으로 찔러 얻은 혈액 방울로 진행하는 혈액비중 검사. 지금은 거의 기계로 하지만 당시엔 파란 황산구리 용액에 혈액 한 방울을 떨어뜨려 뜨는지, 가라앉는지 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다행히도 나는 첫 번째 방문에서 이 검사를 통과해 헌혈을 할 수 있었다.


헌혈 전 혈액비중 검사를 하는 이유는 헌혈 시 320ml~400ml의 혈액이 몸에서 빠져나가는데, 이 정도의 혈액 손실에도 헌혈자가 버틸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가 바로 혈액비중이기 때문이다. 혈액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건 혈액 속 적혈구의 헤모글로빈도 빠져나간다는 의미.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이 부족해지면 빈혈이 올 수 있어 헌혈 시 헌혈자의 몸에 충분한 헤모글로빈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 때문에 전혈(온전한 혈액 전부) 헌혈을 희망하는 경우 12.5g/dL이상, 성분 헌혈(혈장 헌혈, 혈소판 헌혈, 혈장+혈소판 헌혈)을 희망하는 경우 12.0g/dL이상의 혈액비중이 충족돼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두어 번 빼고는 전혈 헌혈 기준 혈액비중이 충족돼 대부분 전혈 헌혈을 했고, 두 번은 전혈이 안 돼 혈장 헌혈을 했다. 전혈 헌혈을 할 땐 바늘-호스-혈액팩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 내 몸을 빠져나간 혈액이 바로 혈액팩에 받히는 게 보인다. 10분 정도면 320mL 팩이 가득 찬다. 바늘을 제거하고 5분 정도 그 자리에서 안정을 취하다가 휴게공간으로 자리를 옮긴다. 휴게공간에서 주스와 초코파이 같은 간식을 먹으며 10분 정도 더 대기하다가 몸에 이상이 없으면 귀가. 그렇게 전혈 헌혈이 끝난다. 전혈 헌혈 후에는 2달 경과 이후부터 다시 헌혈을 할 수 있게 된다.


전혈 헌혈을 통해 얻어지는 붉은 혈액은 수술이나 사고 등 출혈이 일어나는 상황에 처한 환자에게 수혈된다. 의학 드라마에서 가끔씩 나오는 혈액 팩에 들어있는 붉은 혈액이 바로 이 전혈 헌혈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헌혈 중에 가장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지만 2달이라는 휴식기가 발생해 봉사활동 시간이나 헌혈 횟수를 채우는 걸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피하는 종류의 헌혈이 바로 전혈 헌혈이다.


내가 그동안 전혈 헌혈을 주로 해왔던 이유는 온전한 혈액이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디선가 “여자는 혈소판 헌혈 안 된대”라는 말을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은 혈소판 헌혈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였다. 전혈 헌혈을 할 때마다 기념품을 고르며 항상 훨씬 좋은 기념품을 선택할 수 있는 혈소판 헌혈자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는데 나도 혈소판 헌혈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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