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부끄러운 어른

내 안의 아이는 자라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은 어른

by ARKY

캐나다에 와서 큰아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아이스하키에 도전했다.

아이스하키는 커뮤니티에서 배울 수도 있지만, 여기선 각 지역의 House Hocky League에 들어가서 7개월의 훈련과 경기를 진행한다. 매년 10월까지 접수를 받고 10월에서 다음 해 4월까지 진행한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나는 정보를 입수하고 바로 리그 신청을 했다.

8월에 캐나다에 오고 9월에 리그를 신청하면서 비록 애가 하키도 안 해보고 스케이트도 타본 적은 없지만 리그가 10월에 시작이니 9월에 커뮤니티센터에서

한 달가량 배우면 하키도 금방 배울 거야.


그렇게 나름대로의 야무진 계획이 있었으나

But.... 하키 리그는 10월에 시작하지만 9월 중순 2주 동안 테스트를 위한 집합이 있었다....

테스트를 위한 집합은 2주 동안 4번 진행하며 내가 사는 지역에서 하우스 리그에 신청한 모든 아이들이 시간대, 나이대별로 참여해서 연습 및 경기를 진행하고 그 안에서 감독 코치진들이 팀을 어떻게 구성할지 보는 것이었다.


큰애는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에 서본 적도 없는데.....

커뮤니티 스케이트 수업 시작도 안 했는데.....

부랴부랴 하키장비는 준비했지만 스케이트를 신고 연습해 볼 시간도 없었다...

이대로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하키 리그 측에 메일을 우선 보냈다.


이번 시즌 리그 신청은 했지만 스케이트도 타본 적 없는지라 그냥 10월 시작 때 가면 안 되겠냐....

답변은...."일단 오세요"


하... 그때부터 긍정회로를 풀가동 모드

어떻게든 스케이트를 신기고 들여보내야 했다....

"너 인라인 잘 타지?

스키 잘 타지?

보드 타본 적 있지?

다 비슷해 그냥 서서 발 쭉쭉 밀면 탈 수 있어!

엄마도 배운 적 없어 그냥 링크장 가서 신고 타보다

보면 다 하게 되더라 너도 금방 할 거야~!!!"


그렇게 온몸에 하키 풀장비를 하고 얼굴 코높이까지 오는 긴 하키스틱을 들고 낯선 스케이트를 신고

아이스링크에 올려 보냈다.


그리고 그 앞의 관중석에서 아이를 지켜보면서 나는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큰애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정말 날아다니고 있고 그 와중에 큰애는 겨우겨우 서있기도 힘들어했다.


다른 아이들은 앞으로 뒤로 옆으로 스틱으로 퍽을 컨트롤하면서 정말 선수들같이 뛰고 있는 와중에 큰애만 스케이트조차 타지를 못하니 그 모습이 확연하게 이질감을 주고 있었다.


지켜보는 내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고 짠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편으로는 누군가 내 아이를 손가락질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생겼다. 왠지 모르게 나는 자꾸 다른 시선들이 있는건지 계속 눈을 굴리며 주변까지 탐색했다.


그리고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상황들을 자꾸 상상했다.


나에게 들리지 않지만 분명 저기서 코치들이 내 아이에게 몇 마디 했을 거야....

"너 하키는 한적 있어?, 언제부터 캐나다에 있었어?

스케이트 탈 줄 아는 거야?"

저기 있는 학부모들도 자기들끼리 수군거릴 거야...

"저 아이는 왜 신청한거야?

아이들 연습에 방해가 되고 있어"

같이 하는 친구들도 쟤 뭐냐고 무시하고 있을 거야.....


이런 상상들에 내 아이가 압살 당하는 상황이 자꾸 그려지며 서러워졌다.


그렇게 영원과 같던 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끝이 났다. 나는 얼른 큰애에게 가서 이 시간 동안의 불안감을 안심시켜 주고자


"너무 힘들었지, 이거 안 해도 되니깐 우리 스케이트 배우고 하자. 엄마가 신청 취소할게"


그러나 큰애는 정말 의아하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나 이거 계속하고 싶은데? 너무 재밌어! 스케이트도 재밌고, 선생님들도 좋아"


나는 너무나 의외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의 불안감에 만든 질문들을 마구 했다.

"코치들이 너한테 뭐라 안 해? 친구들이 너 무시하거나 그러지 않았어?


"아니 전혀, 코치들이 나 좀만 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할 수 있을 거라 하고 잘 알려주셨어,

그리고 몇몇 애들은 스케이트 타는 법을 알려줬어"


"내가 처음이니깐 못하는 거 당연하잖아! 근데 연습하면 저 친구들만큼은 안되어도 지금보단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재밌어"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 아이에게 내 안의 아이를 들킨 기분이었다. 주변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어리고 나약한 내 모습

아직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아이가 한창 자라나는 저 아이를 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잠시 묻어두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한번 해보기로 했다. 처음 한달여간은 사실 지켜보는게 힘들었다. 다른 아이들과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같이 훈련을 한다는것 자체가 서로에게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매주 연습과 경기를 지켜보며 놀라웠던건 큰아이는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연습 때 4바퀴를 돌아야 하면 남들 4 바퀴 돌 때 2바퀴밖에 못 돈다 해도 절대 남은 2바퀴를 스킵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아 준다 해도 큰애는 그걸 꼭 다 채우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아이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남들 눈치 보느라 내 가능성의 시간들을 무시한 적이 있진 않았나, 시작하기도 전에 내 노력이 결국 헛될 것이라는 회의적인 결론만 도출하지 않았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어른이 될수록 쌓이는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는 나를 노련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론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가 되어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아이는 이제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오늘도 남들과 견주지 않고 자신의 노력만큼의 결과에 만족하며 자신의 역량을 발견하는 중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 또한 내가 가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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