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난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것이 이미 재난 수준에 들어섰는데
굳이.. 그게 뭐 좋은 거라고... 이런 마음이다.
그래서 볼까 말까 하다가 봤는데
괜히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간 건들거리는 느낌이랄까?
6개월 후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전 지구가 망한다는
아주 대단하고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도처에서 김 빠지는 상황을 연출하는
그 속내가 재미있는 것이다.
속속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과 경제, 미디어의 현실을 넉살 좋게 까발리고
국민을 거침없이 우롱하는 대통령,
그래서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교훈적인 의도를 가지고 설득하려는 노력도 없고,
공감을 요구하지도 않으니
뭔가 관객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죽을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그렇게 죽을 것이니
너무 막아보려고,
혹은 지키려고 애쓰지 말라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저녁밥이나 함께 나눠먹으며 감사하며 살자는 말씀인데
뭐 그조차도 대놓고 작위적이라는 느낌에
유치하고 감동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뭘 해도 감동이 되지 않고
진지하지 않다.
그저 상황상황들이 억지스럽고 우스꽝스러울 뿐.
워낙 풀어놓은 장면들이
어수선하고 산만해서 정신이 없을 정도인데
묘하게 요즘 시점에 빗대어 낯설지가 않다.
그래 뭐 어쩔 것이냐
이미 일어난 일
막는다고 막아봐야 티도 안 나고
끝이 보이지도 않고.
그러니 각자 조심하면서
너무 심각하지도 말고
시시콜콜 따지지도 말고 좋게 좋게 웃으며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사이좋게
밥이나 잘 먹으며 살자고.... 실실 어르고 달래는 느낌.
어찌 보면
요즘 세태를 영리하게 잘 풀어낸 영화 같다.
위를 보지 말라고
그러니까 진실을, 사실을 보지 말라고
보면 또 네가 어쩔 거냐고... 하는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은 보려는 자나,
보지 못하게 하려는 자나
결국은 한 운명 공동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