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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봄

일요일의 병

by 관지

가슴이 아릿해지면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스페인 영화다.

없는 게 많은 영화이기도 하고.


대사도 별로 없고

군더더기도 없고

감정의 겉치레도 없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고 몰입 시키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영화의 처음 장면은

두 여인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어둡고 음산한 숲 속을 걸어 커다란 나무 앞에 서서

그 깊은 동굴을 들여다 보다 돌아서 가는 젊은 여인과


궁전처럼 화려한 집에서 우아한 옷차림으로 걸어나오다가

잠시 발을 삐끗하는 나이든 여인.


그리고 영화는

이 두 여인의 관계와 그 관계가 마땅히 누리고 나눠야 할 인연의 부재

그로인한 애증과 화해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모성애가 없는 여자에 대한 사회면 기사였다니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는 모성애의 부재와

그로인한 자녀의 상처받은 인생이 될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화장을 하고

집을 떠난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이는

40이 넘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엄마의 부재.

그 상실에 상심과 비통으로

진물이 질질 흐르는 세월을 지내는 동안

그 엄마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어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누리며 산다.


8살 된 딸을 버린 엄마는

자신의 행위를 역마살이라 하고

그 남편은 호기심이라 하고

딸은 허영심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애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평생을 창가에 앉아

날마다 오기를 기다리던 사랑하는 엄마

그러나 끝내 오지 않았기에 그 대상을

증오하고 멸시하며 그 상처를 병으로 품어버린 딸


주인공을 보며 참 연기 잘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 겪는 경험 같아서

함께 아픔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통증유발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살아가는 엄마를 찾아가

열흘만 함께 있어달라고 청하는 딸과

마지 못해

아니 자신의 모든 것을

탈없이 잘 지켜내기 위해 그 청에 응하는 여인.


영화는 그 열흘간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상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아이들 곁에 있지 못했던

부재의 기억들이다.

그냥 함께 있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시간들.


붙잡을 힘도 없고

목소리도 크지 못해서

그저 원하고 바라보고 기다리기만 했을 아이들의 심정이

오롯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후벼파이는 영화.


아직은 기회가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부디

지금 네 곁에 있는 아이에게 등을 보이지 말라고.

함께 있어주고,

그 표정을 바라보고,

그 말을 들어주라고.


언제까지??

아이가 엄마를 원할 때까지.


그래도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있으니

부디 같이 있을 때

같이 있어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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