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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봄

루르드

by 관지


참, 관객의 반응 따위 조바심 내지 않고 이렇게 느릿느릿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지루한 듯하면서도 촘촘하게

종교의 울타리에 머무는 사람들의

모양새를 능청스럽게 잘 표현한 영화.


그래...

무심히 지나가는 듯 짚어내는 이런 영화가 나는 좋다

큰소리 지르고 심각하게 몰아가는 것보다는.


내용은 심오했다

내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원하지만

휠체어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그녀에게

인생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고,

누구나 똑같은 삶은 없다고 말한다.

왜냐면 생명은 다양하니까.


건강해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아니, 그냥 지금 이대로.... 그 자체로

행복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건강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행복은 이미 주어져 있다고.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 속에

날마다 마주하는 우리의 일상,

밥을 먹고 전화를 받고

서랍에 편지를 넣고... 등등의

그 사소한 일들 속에 복은 숨어있고.


빌려온 사진입니다. 출처모름

살아있음 자체가 이미 행복이고

또 곁에 함께 있는 이웃이

행복의 전령들이라고.


그럼에도 그녀는 걷고

마음에 둔 사내와 함께 춤을 추어야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지만,

그 걸음은 다시 넘어질 수 있고

달콤한 순간을 주던 그 사내는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나 자체로 인해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신의 기적과 은총을 찾아 나선

그녀의 성지순례길에 신의 친절한 응답이었다.


얼마 전 성경을 읽는데 이런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세기 1;27-28)


누구든 생명을 부여받고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이미 그에게 필요한 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얼굴이 다르듯, 삶의 모습도, 복의 형태도 다르겠지만.


그러니 비교하지 말자

조건을 내걸지도 말자.

그냥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찾아 누리면 된다

공기를 들이마시듯 받아들이면 된다.


좋은 영화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그리고 정갈한.


마치 지금 이대로 행복하면 안 될 것처럼

스스로에게 온갖 주문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슬며시 건네주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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