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사람,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너무 고결하진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알아주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절대’라는 부사를 써가며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꾸만

이해할 수 있는 쪽이 늘어간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이다.



기회를 양보하는 사람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성남

중학교 시절, 나는 학교 성적을 내 인생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던 학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성적을 최상위로 올려보려고 바짝 관리했다. 준비물을 빠트리고 등교한 날에는 가족을 동원하거나 직접 집에 뛰어가 가져오기도 했다. 지각을 해서라도, 점심을 안 먹고서라도 반드시 가져왔다. 그런데 정신이라는 친구가 내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 수행평가에서 중요한 평가 기준인 준비물을 다른 친구에게 양보한 것이다. 당시 정신이는 아주 상위권 학생은 아니어서, “얘는 성적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추측하기도 했다. 그 양보가 얼마나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다. 하필 정신이는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어 더욱 그래 보였다.


인생의 많은 테스트를 지나 보내고 중학교 수행평가의 중요성이 미미해진 지금, 다시 정신이를 떠올린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싶었던 나보다 그 애가 훨씬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학교 성적에 대한 나의 열심은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되게 했지만, 어떨 때는 강박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작은 실패를 못 견디는 인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실패 다음에도 기회가 있음은 대학교에서 공모전을 하면서 알게 됐고, 양보를 하고 도움을 주고 심지어는 다 퍼줘도 손해가 아님은,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다.




부서진 가정: 바퀴벌레가 수백 마리 나오던 집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안산

대학생 시절,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다. 그날은 안산의 한 가정에 집수리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L기업의 CSR 활동을 취재 후 인터넷에 포스팅하는 역할을 맡았다. 봉사자들이 도착 후 집안 가구를 먼저 빼내기 시작했고, 다 빼내자 바퀴벌레 약을 치기 위해 한참 대기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옷장을 열었더니 바퀴벌레 수백 마리가 나왔다”며 펄쩍 뛰었다. 그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몸서리치게 놀랐다. 몸으로는 봉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수혜 가정의 대책 없음을 멋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조금 더 어른이 된 지금 ‘삶이 부서지기란 얼마나 쉬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나은 환경에 살고 있다면 감사할 일이지, 다른 이들을 한심해할 자격은 단언컨대 없다. 실제로 그 수혜 가정은 내가 대학 시절 함부로 생각한 만큼 막살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살다가 가장인 아버지가 아프면서 가세가 기울었을 것이다. 스스로 지탱하는 가정은 책임감 있지만 도움이 닿아야 재기할 수 있는 가정도 있음을, 이해한다. 나 또한 삶의 취약성에 바들바들 떨며 사느라 한 발자국도 못 내민 적이 얼마나 많던가.




흡연자: 한숨을 피우는 사람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서울

너무 싫어하는 사람과 없이는 못 사는 사람. 담배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나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담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에 속했다. 혐오에 가까웠다. 아빠나 작은 아빠들이 담배를 피우던 어린 시절에는, 담배 공장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다. 흡연자의 자식들, 금연 단속을 하던 친가 사촌들은 어렸을 때 기억 때문인지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할 리 없지만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불호를 드러내진 않는다. 타인의 기호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담배 피우는 사람을 이해해 볼 계기도 생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 단편영화 연출부 스태프를 한 적이 있다. 어린 학생들의 단편영화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 타이트한 일정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4일간 촬영 시간이 계속 오버되다 보니, 촬영장을 오가는 지하철에서는 졸음이 쏟아졌다. 과장 포함해 살짝 기절했다. 그 당시 또래 K-POP 아이돌 가수들이 왜 졸면서 메이크업을 받는지 몸으로 이해했다. 영화를 전공한 학생들은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영화판을 빨리 떠나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기 시간만 있으면 담배를 피웠다, 그것도 엄청나게.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집약적으로 많이 피우는 집단이었다. 나도 너무나 고단했던지라 그들을 이렇게 이해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한숨을 정성스럽게 쉬고 싶은 사람’


한숨에서 나오는 공기의 성분은 모르지만 ‘한숨은 뱉지 않으면 몸 안에 독하게 쌓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한숨을 크게 여러 번, 정성스럽게 쉬고 싶은 게 흡연자들 본인도 모르는 담배 피우는 마음이 아닐까! 담배 연기는 농도 깊은 한숨인 것이다. 영화 촬영장, 조명을 설치하고 작은 것도 연출하는 광경에 신났지만 동시에 얼마나 피로했던지 담배 피우는 마음을 다 이해했다. 영화는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들의 한숨을 모아 탄생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하는 사람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서울

아직도 계실까? 몇 해 전 강남역 1번 출구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아침마다 외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분을 월화수목금요일마다 봤다. 신촌역 주변에도 고약한 인상을 쓰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전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이분은 가끔 봤다. 나는 늘 의뭉스러웠다. ‘저런 방식으로 전도해도 예수님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기상 예보로 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날씨가 예고된 어느 겨울날, 그 할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외쳤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내 걸음걸이론 늘 10초 만에 이분의 영향권을 벗어났는데, 이 레퍼토리만은 늘 들었던 것 같다.


‘이 분의 성실함에 감탄했다’ 거나 ‘마음이 움직였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방식으론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그 자리에 나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했을 때의 그분이 보였다. ‘아, 이 어르신이 이 리듬으로 삶을 지탱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노인의 외침이 더 이상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이분만의 경쾌한 리듬으로 받아드려 졌다.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질문이 길을 찾듯, 어르신들의 과격한 방법이 젊은이들에게는 옳게 전달되길 바라본다.




욕설하는 사람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서울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화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직장 동료가 점심시간에 “화를 참기 힘들다”라고 토로할 때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날까?’ 시큰둥하게 반응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난 화가 없는 게 아니라 화난 내 감정에 둔감한 사람이었단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로 제지했을 상대의 선 넘은 행동도 유야무야 넘겼다. 내가 불만을 표시하는 건 또 다른 의미로 힘들어했다. 상대에게 뾰족한 말을 던졌을 때의, 정적인 스트레스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화는 넘겨졌다.

그러다 화를 자각한 건 ‘화병’이 났을 때였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혼자 있을 때 화가 나서 실제로 몸이 아팠다. 가슴이 두근거려 커피를 멀리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도 찾아 마셔보고, 산책도 오래 해봤지만 낫지 않았다. 평소에 가는 병원이 이비인후과 정도였다면, 화병이 나니 배가 아파 내과도 가보고, 밤마다 생각이 쉬지 않아 심리상담소도 찾게 됐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에 얼굴이 비칠 때마다 나를 향해 욕을 해댔다. ‘네가 고작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그렇게 노력했어?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었다니! 그때 이런 말은 했어야지’ 하면서 지나간 일에 분을 냈다. 다른 사람한텐 못하는 욕을, 가슴 아프게도 나에게만은 곧잘 했다. 가래를 퉤- 뱉듯이 계속 게워냈다. 그럼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더러운 감정은 더러운 것으로 빼내야 한다는 것을. 쌍욕은 생겨날 때부터 크나큰 임무를 맡은 것이다.


그간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대신 얼마나 많은 욕을 해주었던가. 그걸 속 시원해했으면서 내 입에는 못생긴 말은 하나도 안 묻히려 했다. 내가 직접 했어야 했는데… 내 입술엔 무조건 예쁜 말을 입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말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평소 거친 말을 쓰다 보면 긴장이 풀렸을 때도 숨길 새 없이 스스륵 나오는. 그마저도 단속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머리에 열이 올라 밤잠 못 이룰 때, 더러운 감정을 욕으로 해소해 봄으로써 알고 있다.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에 휩싸였는지,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취약한 사람들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건네는 내가 됐다. 욕해도 괜찮다고. 나쁜 감정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얼마든지 해보자고. 이미 힘듦으로 충분한 사람에게 죄책감까지 얹혀지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힘들어보지 않았다면 ‘욕설하는 사람 = 상스러운 사람’이라 여기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래도 말은 좀 예쁘게 하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알아서 정말 다행이다.




노숙자: 크게 절망한 사람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멕시코 산미구엘아옌데

나는 스타트업을 다니며 창업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연예인들을 실제 보고 ‘얼굴이 주먹만 하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처럼, 창업자들 곁에서는 ‘책이나 뉴스에 나오는 멋진 사람들과 내가 함께 일한다’는 사실에 자주 감격했다. 창업가들의 대담함과 세심함, 뜻을 세움과 행함, 자기를 확신함과 비전을 세움, 말 잘함과 설득시킴, 사람을 모음과 아우름, 자기 분야의 전문성과 인간적인 모습 등 많은 것을 존경했다. 아마 나에게는 없는 부분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의 출근길에 봤던 것이 지하철역 노숙자들이었다. ‘이들은 왜 하필 이 복잡한 강남역에서 노숙자가 된 것일까? 어떤 삶을 살다가, 어느 지점에서 무너진 걸까?’를 늘 궁금해하며 일터를 오갔다. 그러다 우연히 노숙자를 인터뷰한 쇼츠를 보게 됐다. 그는 제조업을 하던 사장이었는데, 그 사업이 망하고 가족들도 피해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는 말을 했다. 특히 과거에 했던 일을 설명할 때는 사장처럼 눈에 빛을 냈다. 노숙자들은 한때 창업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그토록 우러러보던.


대학교 졸업 후 구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시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셨다. 소위 ‘백수’라 칭해지는 소속 없는 사람들을 한심해하지 않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먼저 공감해 주신 것이다. 그에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나도 강남역 노숙자를 볼 때마다 그들이 당면한 고통을 떠올렸다. 일하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할 공간마저 없는 이들. 나 역시도 부모님이 구해주신 집이 아니었다면 노숙자와 똑같은 신세였을 거란 사실에, 그들과 일체감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노숙자를 한 번도 창업가와 연결 지어본 적은 없다. 대담하게 꿈을 키웠기에 크게 절망한 사람이란, 새로운 시각이 열렸다. 절망했다고 해서 모두가 노숙자가 되는 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리고 이들을 지켜만 본지 세 계절이 지났을 무렵, 퇴근길에 그 절망을 부축하는 청년을 봤다. 그는 들어줬을까? 이들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이 껴 있어 남몰래 힘들었다.

‘나랑은 달라’하고 척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한다고 해서 싫던 것이 좋아지고

내 삶의 모든 기준이 흐트러졌다는 건 아니지만

이토록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해함으로

나의 울퉁불퉁한 부분도

이해받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그렇기에 살면서 한 번도 꺾여보지 않은 사람,

너무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서

강직해져 버린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때론 두렵다.

그들의 물러섬 없는 사고에 막막함을 느낀다.

티 없이 맑음은 이리도 고결해지기가 쉬운 것이다.


기회를 선점하고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에게는 있음’에 감사한 일일 뿐이다.

잔뜩 움츠러들거나 선입견에 맞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향상심이 있는 것,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함부로 고결해지지 않는 선택은

마음 속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이들을 더 나은 곳으로 초대하기 때문이다.


삶은 부서지고 메워지고 내려갔다 올라간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될까!

왠지 그것이 기대된다.





[작가의 말]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울산

‘고결하다’의 뜻은 이래요.

성품이나 인격이 매우 훌륭하고 깨끗한 상태.


언젠가 가족에게서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너는 너무 고결해!”

좋은 뜻은 아니었어요.

고매한 인품을 갖는 것은 훌륭하지만

타인에게도 마음으로 엄격했던 것이죠.

그건 꼭 티가 났고요.


그래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맞아요, 이 글은 반성문입니다.


너무 고결하진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요.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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