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이하 Y님)가 “늘 응원하고 있었다”며 연락을 해왔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SNS로 이미 알고 있었던, 당신의 결혼 소식도 내게 직접 알렸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혜원님은 내 마음속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애정 어린 말도 덧붙였다. 고마웠다. 우리 사이의 즐거운 호흡을 알기에 그 소식을 전달받는 것이 당연하고 반가웠다. 이제는 다른 직장에 다니는 우리지만, 오가는 곳은 여전히 비슷해서 삼성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먼저 도착한 식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Y님이 내 뒤에서 어깨를 톡톡 쳤다.
나는 그녀의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잠깐만 있어봐요. Y님한테 사진 좀 보내고요”
바로 옆에 있는 Y님에게 식당 사진을 보내며 문자를 했다.
‘저 왔어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웨이팅 안 해도 될 것 같아요ㅋㅋ’
Y님과 나는, 전 직장에서도 이런 농담으로 일의 긴장감을 풀곤 했다.
우리는 예전처럼 웃겨 죽으며 식당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둘다 옛 추억부터 꺼냈다. 분위기도, 사람도 좋았던 옛 회사의 초창기 풍경, 외부 행사에서 모두가 으쌰으쌰 했던 순간, 같은 동네에 살아 함께했던 퇴근길의 일화들이, 음식보다 빨리 나왔다. 그리고 그때도 야근이면 데리러 왔던 Y님의 남자친구와 이제는 결혼하기로 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 이름을 미리 써둔, 청첩장 봉투도 전해줬다. 나도 알고 있는 그분과 부부가 되기로 했다니…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나도 근황을 전했다.
올해 꽃들이 너무 예뻤다는 감상으로, 번아웃에서 벗어났음을 고백했다.
허물이 된 과거는 털어놓기가 수월했다.
그러자 한창 결혼을 준비 중인 Y님이 내게 조언을 구했다. 내용은 이랬다.
‘오래된 친구가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지금 우울해하는 것 같다. 그 친구가 외로워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남자를 만나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자니 어떤 온도로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행한 친구에게 나의 행복한 소식을 전하는 일. 그녀가 고민하는 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랬다. 그리고 이런 사려 깊음 때문에 Y님이 퇴사할 때 내가 그렇게 질척거렸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연이 닿아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음… 아마 그 친구는 본인의 우울함과 상관없이 Y님이 계속 밝은 모습으로 있어주는 게 좋을 거예요. 본인만 생각하면 힘들어도 Y님 덕에 그날 한 번 웃는 거죠. ‘나’를 우울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앞에서 똥꼬발랄 해지는 Y님의 모습을 보고, 안심할 거예요.
그 친구와 청첩장 모임을 할 때는, 친구가 자기 상황을 잊도록 재밌게 놀아봐요, 평소처럼. 그리고 진짜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어요. 당이 올라가면 행복해지잖아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요. 복잡한 사람에겐 단순하게 대해도 괜찮아요.”
이 말을 전하면서 내가 친구에게 받았던 위로를 떠올렸다.
번아웃으로 마음고생을 하던 시절, 나는 모든 만남을 꺼렸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가 똑같이 기분이 다운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 친구에게 “너의 기분을 망칠까 봐 내가 좋아지면 보자”고도 말해봤지만 나의 친구는, 나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처럼 대해줬다. 내 기분에 동요하지 않고 본인은 늘 명랑했다.
초반엔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며
내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전하던 때도 분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옆에 있어줬다.
충고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이것도 해보자, 저것도 해보자”는 말도 없었다.
계속 옆에 있어줬다.
그러다 가끔 내가 뭘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내면 응원해 줬다.
필요시 본인의 지인을 소개해 그 일을 시도하게 했다.
내가 그리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긍정을, 먼저 해줬다.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옛날 사진을 꺼내 좋았던 시절을 상기하게 했다. 그때 너무 좋았다고 했다.
네 생각이 났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사소한 선물이 잦아졌다.
귀여운 동영상을 보내줬다.
그리고 본인은 본인대로 잘 지냈다. 다행이었다.
친구 기분을 망칠까봐 내가 바들거리지 않아도 됐다. 안심했다.
내가 하는 노력에 여전히 큰 성과가 없어도, 한심해하지 않았다. 옆은 견고했다.
나 혼자 비정상 같아도 내 주변은 다 정상이니, 나 하나만 잘 지내면 되는 거였다.
아무것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래서 알았다.
우울한 사람에겐 상대가 기분에 전이되지 않고
발랄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위로라는 것을.
슬픈 사람에겐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큰 위로자임을.
평소라면 만남을 줄였어야 했는데
친구가 내 옆에 상주하느라 들켜버렸다,
가족들만 아는 나의 기운 빠진 모습을.
그리고 알게 됐다.
‘주변 사람이 나 때문에 기분이 다운될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도 되는구나’
시간이 지나자 나의 불안이 잠잠해지며 기복이 줄어들었다. 내가 걱정한 것들이 삶에서 하나씩 제거됐다. 친구가 그린 나의 긍정적인 상(像)에 도달해 있었다.
또 하나 안 것은
이미 친한 친구와
더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달 후 Y님은 불행한 친구에게 본인의 행복한 소식을 전하고, 결혼을 했다.
Y님의 명랑한 배려를 받은 친구는 누구였을까?
축사할 때 추억을 말하며 훌쩍거리던 그분일까?
아니면 버진로드 끝에서 꽃가루를 뿌려주던 분?
어떤 분인지 몰라도 결혼식장 안에 있었을 그 친구는 Y님의 결혼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을 것이다. 결혼식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면 그건 ‘나는 불행하고 친구는 행복해서’가 아니라 ‘나랑 늘 함께하던 친구와 예전만큼은 시간을 공유할 수 없어서’였을 거라, 짐작해 본다.
그날 Y님은 설핏 눈물을 비쳤지만 유쾌한 결혼식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느껴질 정도로, 행복한 신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랑과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보였다. 신랑신부는 하객들 마음속 불행은 모르는 듯이 귀엽고 밝은 모습으로 행진했다. 그 모습에 Y님의 친구 분도 하루가 행복했기를, 마음이 화사해졌기를 바라본다.
결혼식이 끝나자 바깥에는 웨딩드레스보다 하얀, 순백의 눈이 포근하게 쌓이고 있었다.
귀갓길은 험해졌지만 마음은 환해졌다. 모든 어둠이 하얗게 덮였다.
언뜻 보기에 우울한 친구에게는 같은 온도로 대해야 할 것 같지만 진짜 우울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본인의 기분에 영향받지 않기를 원해요. 본인도 우울함에 갇히길 원하지 않고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이들에겐 평소처럼 더 유쾌하게 대해도 되는 거예요. 아주 재밌는 사람 대하듯요. 할아버지 할머니께 마냥 웃음을 주는 손주들처럼, 현실을 잊게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제 친구에게 명랑한 배려를 받은 후 책에서 이런 문장들을 발견했거든요.
환자라는 용어 대신 다른 명칭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암 병동이 아니라, 희망 병동처럼 프레임을 긍정적으로 바꿀 다른 명칭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 강민호,『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턴어라운드, 2019년, P.185
암에 걸린 사람을 만난다고 치자. (중략)
“그저 안아주면서 형식적으로 의례적인 말로 느껴지지 않는 인상적인 칭찬을 해주는 사람. 암과 관련 없는 선물을 주는 사람. 내가 지닌 나쁜 버릇을 고치려 들지 않고 그냥 나를 기쁘게 해 주려는 사람. 오늘이 어느 아름다운 날이고 늘 그렇듯 재미있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
이것이 배려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 데이비드 브룩스,『사람을 안다는 것』, 이경석 옮김, 2024년, 웅진지식하우스, P.214
아픈 사람을 아픈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희망을 앞둔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
오늘의 재밌는 일을 찾도록 돕는 사람,
그냥 옆에 있어주고 기쁘게 해 주려는 사람이,
진짜 배려하는 모습을 갖췄다는 것을요.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명랑하게 지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너무 고결하진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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