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천연색, 꽃의 생기 있음을 닮고 싶어서
제 오랜 친구의 생일이 입춘(立春)이에요.
그래서 늘 입춘을 의식하며 살아요.
아직도 꽁꽁 언 2월이지만 봄의 입구입니다.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은 따뜻하니까요.
그럼 이제 꽃 피는 계절을 상상해 봐도 될까요?
가끔씩 꽃다발 선물을 받는다.
집에 들여온 그 꽃다발은 화병에 담겨 식탁에 놓는다.
꽃은 밤에는 꽃잎을 오므려 두었다가 낮이 거듭될수록 활짝 폈다.
그 생기 있음이 화사한 웃음 같았다.
화병을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와, 예쁘다”
“이거 진짜 예쁘게 핀다”
“들어오자마자 좋은 향기가 확 나”
그 혼잣말들은 가족들이 자주 쓰지 않는 것들이어서
일일이 수확해두고 싶을 만큼 듣기 좋은 말들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하는 자연스러운 감탄사,
나는 그 말이 우리 집 거실을 채우는 걸 들으며
꽃을 소비하는 마음을 천천히 이해했다.
원래부터 꽃을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예쁘긴 하지만 금방 시들기에 무용한 것,
화양연화(花様年華)를 붙들 수 없기에
손에 잡히지 않는 생물이라고 여겼다.
갑자기 고등학교 1학년, 국사 시간 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선시대 실학파 다산 정약용이란 인물을 배우며 나는 ‘내가 꼭 정약용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약용은 성리학의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실질적인 삶의 개선을 추구했는데, 그 점이 나의 지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처럼 실용주의로 가득 찼던, 어린 나는 ‘꽃을 선물하는 마음, 꽃 사는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선물은 무조건 실용적인 것이 최고라 여겼으므로 꽃은 잘 받지도 못했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식 날엔 부모님께 신신당부를 했다, 꽃다발은 제발 사 오지 말라고. 그럼 가족들은 손이 민망할 것을 대비해 비누로 만든 꽃다발을 사 왔고, 그것만은 빛나는 졸업장과 함께 한아름 안았다. 시들어 적당한 때에 낙화(落花)하는 방법을 모르는 비누 꽃은 졸업식이 끝나고 대학교 입학식이 다가와도, 먼지만 털면 생생했다. 애정이 깃든 것이라면 뭐든 헤어지기 싫어하는 내겐 조화가 안성맞춤이었다. 꽤 오랫동안 우리 집 현관에 걸려 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꽃이 좋아졌다고 느낀 건 혼자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할 때였다. 그곳에 살기 전까지는 내가 꽃과 나무에 절실한 인간인지 몰랐다.
내 인생의 대부분은 아파트에서 지냈고 내가 살던 아파트들은 88 서울올림픽 즈음에 올라간 건축물이었다. 단지 내 나무는 아파트 5층이 넘는 키를 자랑했고,이는 ‘울창’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기에 충분했다.
꽃들은 계절마다 화단과 거리에 넘치도록 많았다.
개나리와 진달래, 민들레와 무궁화, 벚꽃과 목련,
철쭉과 산수유, 쑥부쟁이와 국화, 아카시아…
이름 모를 꽃까지.
늘 꽃밭에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비교적 지은 지 얼마 안 된, 신축 오피스텔에 살게 됐는데 주변에 공원을 조성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꽃과 나무가 매우 적었다. 출퇴근할 때는 아스팔트와 벽돌, 시멘트와 유리 건물들을 지나 바로 지하철로 향했고, 지하철에서 나오면 바로 빌딩에 들어갔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했던가
내가 굉장히 자연친화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을 신축 오피스텔과 빌딩에 둘러싸여 보고 알았다. 특히 코로나 시절에는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 갇혀 천천히 생기를 잃어갔다. 당시 공적인 사람들만 만나고 사적인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스케줄을 산 것도, 활력을 잃게 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퇴사를 하고 10년 넘는 자취 생활을 끝내고 다시 가족들 품에 안겼다. 엄마 곁에 살다 보니 밥을 잘 챙겨 먹게 됐고, 운동을 하며 건강해지다 보니 에너지가 쌓였다. 거실에서 들리는 TV 드라마 소음도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그때부터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잘 풀리기 시작했다. 방향을 잃어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요원했던 일도, 금세 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직장에 간 것도 그중 하나였다.
아침에 향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새삼 기쁜 일이었다. 힘차게 현관문을 밀고 집 밖을 나가면, 나는 별것 아닌 일에도 힘을 냈다. 오랜만에 동네 밖 세상에 나간 것처럼,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빛나게 다가왔다.
내가 취직을 한 계절은 겨울이었는데 수습이 끝날 때 즈음 봄이 되었다. 봄은 내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한데 덕분에 매일매일 생일을 맞은 것 같았다. 시작하기에 알맞은 새봄이었다.
꽃과 나무가 있었다가 없어서 오피스텔에 살 땐 힘들었지만, 꽃과 나무가 없었다가 온 거리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니 모든 자연을 감각하게 됐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감격스러웠다.
아침 꽃
아침에는 신선한 공기에, 아파트 화단의 꽃들을 보며 출근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강남역으로 향하는데 양재역에 도착할 즈음 푸른 가로수가 펼쳐졌다. 주홍빛 아침 해가 나무에 비치면 봄의 연두잎은 투명해져만 갔다.
강남역에 내리면 그곳 버스정류장에는 튤립들이 심긴 것을 볼 수 있었다. 에버랜드 혹은 서울숲에서 맘 놓고 볼 수 있는 ‘튤립’을 강남 한복판 빌딩숲 가득한 버스정류장에서 볼 수 있다니, 튤립의 다채로운 색깔에 새콤달콤한 사탕을 눈으로 먹는 것 같았다.
머물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만 많은 정류장. 번듯하고 세련돼서 삭막한 곳에 놀이동산꽃, 공원꽃을 심기로 했다니 행정가들의 결정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금방 시드는 꽃의 속성 때문에 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오히려 금방 시드는 꽃을 도심에 심어둔 걸 보고
자꾸만 감동스러워했다. 그리고 날마다 이 순간을 즐기리라, 다짐했다.
버스에서 내려 꽃구경을 한 다음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맞은편으로 건너가야 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철 역사를 이용하면 꼭 지나게 되는 가게. 강남역 지하상가 꽃집에서는 자연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살아있음을 느꼈다.
녹색식물에 생채기를 내면 나는 풀냄새가 낭자했다. 그 꽃집은 마트 야채코너의 서늘한 습기를 머금고서 지하철 역사 내 유일한 생명체인양 꽃향기를 퍼뜨렸다. 그 앞에서는 건조한 사람들 표정에 제법 윤이 났다. 겨울을 밀어낸 여자들의 봄옷처럼 그 가게 앞 풍경은, 늘 화창하고 밝았다.
그래서 난 그 꽃집이 지하철 환승 구간에 자리한 게 그렇게 감사했다. 꽃가게의 이름처럼, 그 앞에선 축복받은(Blessed) 것 같았다. 빌딩 사이에선 자연물을 아주 그리워하는 사람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지상에 다시 올라오면 거대한 가로수들이 사람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나무는 방금 돋아난 봄의 잎을 찰랑거리며 머리를 씻고 있었다. 이 키 큰 나무들은 귀여운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아이들처럼, 가지 사이를 어린잎으로 채워갔다. 나는 매일 나뭇잎이 풍성해지는 걸 확인할 때마다, 이 나무가 오래전부터 날 기다린 것 같았다. 이곳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한 사람을 위해 오래전에 심겨, 내가 오나 안 오나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그만큼 나무의 존재가 위로가 됐다.
그 나무들을 지날 때면 가끔 엄마가 된 친구가 실시간으로 아가 사진을 보내주곤 했는데, 그 아가의 꿋꿋하게 세운 등허리와 솜털 같은 머리카락을 보며 봄에는 많은 것이 자란다는 걸 실감했다.
점심 꽃
점심시간이면 다시 회사 밖으로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함께 밀려 나왔다. 그럼 아침에 옆으로 비추는 은은한 햇살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창한 햇볕이 나무와 꽃을 비추고 있었다. 그 눈부심에 동료들은 함께 감탄을 하다가도, 금세 심드렁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식당으로 가는 내내 연두잎의 나무들이 너무 눈부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지중해의 햇살이라도 받은 양 맘이 그랬다. 지난봄엔 낙심하느라 방 안에 한참을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심 식사 이후엔 자주 카페에 들렀는데 블루보틀에서는 플로리스트의 플라워가 늘 전시돼 있었다. 바리스타의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한 번도 평범한 적 없는 화병과 꽃을 감상했다. 아름다웠다. 일상이 근사해졌다.
저녁 꽃
해가 길어졌는데도 꼭 깜깜해져야 집에 도착했다. 그럼 아파트 가로등 아래서, 꽃들이 종류 별로 피어나 있었다. 그 꽃들은 ‘하루 고생했다’는 땅의 격려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네, 집에 가서 쉬어'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아주는 똥강아지들 같았다.
봄이 다 지나고도 꽃은 계속 폈다.
그래서 자연스레 생겨난 기록.
아파트에 사는 건지, 수목원에 사는 건지
바깥에 나갈 때마다 환영받는 기분이다.
게다가 벚꽃은 져도 땅은 쉬지 않고
여름까지 꽃이 만발할 예정이니
정말 기쁜 소식이다.
바깥에 나갈 때마다 환영받는 기분.
겨울잠을 자던 시절에는 밖을 한 번 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가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매일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감복*했던 것이다.
*감복(感服):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감탄하여 마음으로 따름.
꽃밭에서 지낸 시절, 꽃 없는 시멘트 길,
다시 꽃의 환영을 받은 낮과 밤을 통과해
나도 이제 꽃을 좋아하게 됐다.
꽃이 지기 전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이것으로 충분하다.
“와, 예쁘다”
“이거 진짜 예쁘게 핀다”
“들어오자마자 좋은 향기가 확 나”
올해도 꽃놀이를 거나하게 해야겠다.
국사 시간 실학자 정약용을 배우던 시절, 고등학생 때 저는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꽃다발을 받고 기뻐했을 때 ‘여자들은 꽃을 좋아하나? 나도 저런 숙녀가 될 수 있을까?’를 궁금해했어요.
그런데 완벽하게!
꽃을 받으면 기뻐할 줄 아는 여인이 되었네요.
낭만적인 과정은 아니었지만요.
꽃을 생각하면 마음이 환해져요.
축하한다는 뜻이잖아요.
수고했다는 뜻이잖아요.
예쁘잖아요.
책에서 발견한 꽃과 관련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아가, 꽃 봐라.
속상한 거는 생각도 하지 말고
너는 이쁜 거만 봐라.
- 이은희 『1004번의 파르티타』, <푸른 문을 열면> 문학동네, 2016
* arazuda의 글, 유튜브로 들어보세요!
브런치로 오디오/팟캐스트도 만들고 있어요.
AI가 아닌 제 목소리로 여러분과 수다를 떨고 싶어요.
이 시도를 응원하고 귀 기울여 주신다면
오늘도 계속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