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입장 정리가 끝난 최후의 말 ‘그냥’

by 알아주다

조동례 시인의 <그냥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이 시에서 '그냥'은 한 사람을 향해

계산이 사라진, 단순해진 마음을 뜻해요.

제가 선보일 글은 포인트는 다르지만

<그냥이라는 말>의 시어를 몇 개 빌려와서 써봤어요.

시작합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오스트리아 그로스글로크너 하이알파인 로드


그냥이라는 말

예전엔 참 성의가 부족한 표현 같았다

카톡의 ‘ㅇㅇ’ 같이

무신경한 대답이라 여겼다

모음이 사라진 답장은

일말의 격식도 차리지 않으니까


그러나 요즘엔

입장 정리가 다 된

최후의 말 같다


자기 자신을 몰라서

생각이 성가셔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자기를 알게 돼서

승복하게 된 말도 어쩌면

‘그냥’인 것이다


그냥

꾸불꾸불한 과정을

직선으로 만드는 말

그냥

“뭘 그렇게 생각해?”하고

고민을 싱겁게 하는 말

그냥

영차영차 힘들이지 않아도

결과까지 쉬이 가는 그 말을

자신 있게 던져본다


“그냥 하자, 그냥!”




[작가의 말]

저는 신앙이 있지만 ‘순종’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때론 그 단어가 가진 맹목적임이 과정을 생략한 것 같아서요.


물살이 거센 강을 건넌다면

수영을 못하니까 돌다리를 다 두들겨 보고 가고 싶고

액티비티를 한다면 가이드에게 안전한지 한 번 더 물어볼 거예요.

자격증 시험을 친다면 종이 칠 때까지 OMR 카드 마킹을 확인할 거고요.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려야 한다면

전날 오전 예약발송을 하고도 오십 번 백 번 더 확인할 거예요.

미래형으로 말했지만 실은 제가 살아온 방식이에요.


초월적인 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의심해야

추후 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리고 또 뭐였더라…

아무튼 그냥은 안 돼요, 안 돼!



그런데 이런 문장을 만난 거예요.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즉시 순종했다”


‘순종’이라는 말이 하도 싫어서

‘즉시’라는 말에 주목해 봤어요.


‘모세는 어떻게 즉시 순종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움직이기 전에, 명령을 듣기 아주아주 전에

신 앞에 자신을 독대하는 시간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축적된 시간이 있었기에

추후엔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죠.

나의 태도, 나의 입장 정리가 끝난 겁니다.

그 시간을 가늠하기에 순종이라는 단어를 이해합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오스트리아 그로스글로크너 하이알파인 로드


저는 생각이 꽤 많아요.

누가 무엇을 말하든 제 필터를 거쳐야 하죠.

쫄보 같아 보일까 봐 얘기 못 했지만 긴장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데이션(gradation) 없이 바로 움직이면

변화가 티 나니까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이 제 몸을 무겁게 하고 실행을 지연시키더라고요.


이제 저를 알았으니 백기를 들겠어요.

저보다 더 많이 고민한 리더가 오더를 내리면 그냥 할 거고요.

믿을 만한 사람이 무언가 추천하면

내가 몰랐던 것이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초침도 분침도 모두 가지치기를 해서 시간을 아끼고 싶어요.

그래서 직선으로 할 수 있는 건 그냥 즉시 할 거예요.


제가 방금 직선이라고 했나요?

직관으로 정정할게요.

Just Do It!

그냥 해보겠습니다.


그냥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저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의

그 시간을 존중합니다.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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