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정리가 끝난 최후의 말 ‘그냥’
조동례 시인의 <그냥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이 시에서 '그냥'은 한 사람을 향해
계산이 사라진, 단순해진 마음을 뜻해요.
제가 선보일 글은 포인트는 다르지만
<그냥이라는 말>의 시어를 몇 개 빌려와서 써봤어요.
시작합니다!
그냥이라는 말
예전엔 참 성의가 부족한 표현 같았다
카톡의 ‘ㅇㅇ’ 같이
무신경한 대답이라 여겼다
모음이 사라진 답장은
일말의 격식도 차리지 않으니까
그러나 요즘엔
입장 정리가 다 된
최후의 말 같다
자기 자신을 몰라서
생각이 성가셔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자기를 알게 돼서
승복하게 된 말도 어쩌면
‘그냥’인 것이다
그냥
꾸불꾸불한 과정을
직선으로 만드는 말
그냥
“뭘 그렇게 생각해?”하고
고민을 싱겁게 하는 말
그냥
영차영차 힘들이지 않아도
결과까지 쉬이 가는 그 말을
자신 있게 던져본다
“그냥 하자, 그냥!”
저는 신앙이 있지만 ‘순종’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때론 그 단어가 가진 맹목적임이 과정을 생략한 것 같아서요.
물살이 거센 강을 건넌다면
수영을 못하니까 돌다리를 다 두들겨 보고 가고 싶고
액티비티를 한다면 가이드에게 안전한지 한 번 더 물어볼 거예요.
자격증 시험을 친다면 종이 칠 때까지 OMR 카드 마킹을 확인할 거고요.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려야 한다면
전날 오전 예약발송을 하고도 오십 번 백 번 더 확인할 거예요.
미래형으로 말했지만 실은 제가 살아온 방식이에요.
초월적인 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의심해야
추후 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리고 또 뭐였더라…
아무튼 그냥은 안 돼요, 안 돼!
그런데 이런 문장을 만난 거예요.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즉시 순종했다”
‘순종’이라는 말이 하도 싫어서
‘즉시’라는 말에 주목해 봤어요.
‘모세는 어떻게 즉시 순종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움직이기 전에, 명령을 듣기 아주아주 전에
신 앞에 자신을 독대하는 시간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축적된 시간이 있었기에
추후엔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죠.
나의 태도, 나의 입장 정리가 끝난 겁니다.
그 시간을 가늠하기에 순종이라는 단어를 이해합니다.
저는 생각이 꽤 많아요.
누가 무엇을 말하든 제 필터를 거쳐야 하죠.
쫄보 같아 보일까 봐 얘기 못 했지만 긴장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데이션(gradation) 없이 바로 움직이면
변화가 티 나니까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이 제 몸을 무겁게 하고 실행을 지연시키더라고요.
이제 저를 알았으니 백기를 들겠어요.
저보다 더 많이 고민한 리더가 오더를 내리면 그냥 할 거고요.
믿을 만한 사람이 무언가 추천하면
내가 몰랐던 것이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초침도 분침도 모두 가지치기를 해서 시간을 아끼고 싶어요.
그래서 직선으로 할 수 있는 건 그냥 즉시 할 거예요.
제가 방금 직선이라고 했나요?
직관으로 정정할게요.
Just Do It!
그냥 해보겠습니다.
그냥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저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의
그 시간을 존중합니다.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 arazuda의 글, 유튜브로 들어보세요!
브런치로 오디오/팟캐스트도 만들고 있어요.
AI가 아닌 목소리로 여러분과 수다 떨듯 친해지고 말 거예요.
제가 하는 시도를 응원하고 박수 쳐 주신다면
오늘도 계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