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모여서 타는 불이란 이름처럼

두 번째 대표기도 |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던 시간

by 알아주다

주일에 대표기도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나의 기도, 나의 고백으로 소회를 밝힙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양평


성령님,

모닥불, 모여서 타는 불이란 이름처럼 교회에

저희를 뜨겁게 모이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 주간 무력했거나 바빴거나

외로웠거나 부대끼거나, 기쁘거나 낙심했던 우리가

주님 안에 모여 동일한 안식을 갖습니다.



오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장 2절)



시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들이 걱정과 염려 대신 말씀을 읽게 하시고

기도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도록 단련해 주세요.

일단 시작하면 주님이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정체성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하고 있지만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는 달란트로 거듭날 수 있을 때까지,

다른 일과 병행하는 과정을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낙담에서 매번 건져내,

인내심 있게 길을 걸어가도록 동행해 주세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혜, 부와 용맹... 청년의 때에 추구하기에 일순간 힘이 들어가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허함, 허무함을 느낀 이들은

무언가 메우기 위해 중독을 겪기도 합니다.

성령님, 그들의 마음 안에 오셔서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중독 없이도, 스트레스에서 회복하는 속도를 빠르게 해 주세요.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스승이 제자들 앞에 세워지는 데는 긴 시간과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 학부모와 제자들의 존경과 보은으로 교권이 다시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도 목사님과 사모님, 전도사님, 키즈 선생님, 셀장님에 대한 태도가,

감사와 존중으로 훈련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정결한 입술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히브리서 5장 2절)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다른 이들에게도 관대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대하기 힘든 사람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단정을 지어버리거나 험담을 하며, 내가 더 낫다고 여기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쪽을 택하는 용기를 주세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단정과 험담, 냉담과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많다고 느낍니다.

그럴 때면 세상과 교회에서의 나 자신을

너무 다르게 설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예수님,

우리가 교회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적재적시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놓치지 않길 원합니다.

더불어 영혼을 품어낼 수 있는 영성이 자라길 믿음으로 구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어제 한 자매의 결혼식에서 블랙가스펠의 축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화요일, 콘퍼런스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축복을 전하는 일에는

은혜가 있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에 앞장서는 지체들에게 힘이 되어주시고

그들이 하는 일에 매 순간, 의미를 알게 하여 주세요.



말씀이신 주님,

오늘 목사님의 설교로 마음을 씻고

말씀으로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작가의 말]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거제


1년 만에 다시 제가 대표기도를 할 시간이 왔어요.

예배에 빠지진 않았지만 말씀도, 개인 기도도 많이 하지 않던 때라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감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둘러봤어요.


시작에 엄두를 못 내는 사람, 코로나로 본업 대신 부업이 커진 사람, 몸이 상하게 스트레스를 풀던 회사 팀장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고백한 회사 동료, 교회 행사로 주말이 매우 바빠진 찬양팀, 결혼으로 축복이 가득했던 사람 등을 말이죠. (특히 회사 동료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걸 제게만 밝힌 걸 알고는 '이분이 요청한 점심 식사는 사내 미팅만큼 중요하구나' 하고 마음을 고쳐 잡은 계기가 됐어요. 교회에서 공동체가 제게 보여준 따뜻함을 그분과 식사에서 많이 드러내려고도 했고요.)


또 당시 뉴스에서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이야기가 꽤 많이 보도됐고

교권 회복을 바라는 전국의 선생님들이 주말마다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연다는 소식도 이어졌죠.

제 친구도 초등학교 교사로서 참여해, 늘 국회 앞 거리에 있었고요.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로 묶고

이들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대표기도문을 작성했어요.


대표기도를 마치고는 사려 깊은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기도문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문학처럼 느껴졌다"

"회사 사람들을 챙기는 걸 보고 사회에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첫 번째 대표기도가 '나'에 사로잡혀 쓴 글이라면

두 번째 대표기도는 '남'의 상황과 사정을 생각하며 쓴 글이예요.

1년 사이 넓어진 나의 기도.

홀로 타는 촛불이 아니라 모여서 타는 모닥불처럼

남을 챙길 수 있는 여유를 체감하게 돼서

그 자체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존재를 받아준다는 것.

제 기도에 귀 기울여 들어주셔서 모두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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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아닌 제 목소리로 여러분과 수다를 떨고 싶어요.

이 시도를 응원하고 귀 기울여 주신다면
오늘도 계속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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