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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3. 2021

십분심사일분어(十分心思一分語)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열다섯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

스바코프문트는 바다와 사막이 맞닿아 있는 세계 유일의 해안 사막이 있는 도시이다. 우리가 사막을 가로질러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됐을 때 이곳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이라는 말이 갱신되듯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계속 이어졌다. 감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 일몰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느낄 정도의 붉은 노을이었다. 우리는 노을이 지기 전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찾은 곳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차에서 내렸다. 나는 붉게 숨죽인 노을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다, 홀려 들어갔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를 갈 때처럼 그랬다. 이때 걷는다는 건 두둥실 떠다니는 거였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입모양이 없는 한숨뿐이었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쓸까? 벅찬 마음을 도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시를 쓰는 게 아닐까?' 그렇게 압축하고 압축해서 은유하지 않으면 그 감탄의 크기를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이 노을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할 수 없었다.

'감탄하면서 한숨 쉬기',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많이 한 특이행동이었다. 거의 '웃으면서 울기' 같은 거였는데 한국에 돌아와 그런 마음을 대변해주는 단어를 찾았다. '십분심사일분어'다. 십분심사일분어(十分心思一分語)의 뜻은 이렇다. 마음에 품은 뜻은 많으나 말로는 그 십 분의 일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가슴이 벅차나 다 말 못 하는 정경을 가리킬 때 곧잘 사용한다고 한다. 스바코프문트는 십분심사일분어 그 자체였다. 나는 스바코프문트 노을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듯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내 품에 그걸 다 담지 못해서, 그 아름다움이 한시적이어서, 혹은 내게 시간이 부족해서 한숨이 나온다는 걸 이때 알았다.


나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체 없이 좋아하던 동행들의 감탄도 생각난다.

"와~ 이 공기, 이 바람 어떡하냐. 주머니에 싸서 가져갈까."

마치 좋아서 스트레스받는 것 같았다.

낮이 밤으로 넘어가는 정경, 적당한 바람 세기, 한국의 가을 같은 공기, 미세먼지 낄틈 없는 하늘...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마음을 푹 놓이게 만드는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어디 앉아도 좋을 바다 한가운데 레스토랑에 자리를 틀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메뉴판에서 오릭스/스프링복 스테이크와 해산물 모둠을 시켰다. 음식이 나왔다. 해산물은 평타였으나 오릭스/스프링복 스테이크는 그 고기 특유의 향이 났다. 내게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맛이었다. 그때 "혜원아, 왜 이렇게 못 먹어, 더 먹어"하면서 동행들이 내 그릇에까지 고기를 덜어주며 챙겨주는데 그 마음 덕에 조금 더 음식을 입에 넣었다. 자꾸만 챙겨주는 동행들 보면서, 한국 돌아가서 회사에 가면 다른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내가 받고 싶은 마음을 다른 사람한테 먼저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해산물 모둠, 오릭스 스테이크, 스프링복 스테이크


해가 지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왔다. 마트 앞에 차를 대고 남아공/나미비아용 콘센트 어댑터, 먹을거리 등을 샀다. 주차장에는 차를 안전하게 보호해줬다고 돈을 요구하는 어린 동냥아치들이 있었다. 그 애들이 조금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관광객이 함부로 도와주면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는 주의사항을 듣고는 못 본 체하고 예약한 숙소로 이동했다. 출발 전 내가 일을 분담한다고 하국 오빠에게 예약을 맡긴 숙소였다. 그런데 그 숙소는 불이 꺼져있었다. 우리는 누구 탓하는 것도 없이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새로 찾은 곳은 귀여운 고양이,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있는 호스텔이었는데 손님이 많지 않아 주인은 제일 큰 방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여정이 어땠나. 렌터카를 겨우 빌려 공항에서 네 명이 시차를 두고 만난 다음 그날 밤 내내 달려 세시림 캠핑장에 꾸역꾸역 들어갔다. 새벽같이 일어나 사막에 올라갔다가 불 빌려 요리를 했다. 스바코프문트에 왔는데 선 예약한 숙소는 닫혀 있어 새 숙소에 왔다. 무엇하나 쉬이 내주지 않은 에피소드들로 나미비아 일정을 꽉꽉 채웠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스바코프문트에 왔고 그곳 숙소에서 맥주 좀 마시고 편안히 쉬려 했던 저녁, 빈트후크에서 렌터카를 빌려줬던 큰손에게 전화가 왔다. 일정을 흔드는 꽤 심각한 일이었다.



[돌발상황 #11] 예약한 스바코프문트 숙소가 닫혀 있었다. 현지에서 새 숙소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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