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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3. 2021

큰손 화나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열여섯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

다소 일찍 숙소에 들어왔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로비에서 다음 날 할 액티비티를 상의하고 스카이다이빙 예약도 했다. 우리는 취침 전에 다음 일정을 회의할 겸 맥주를 하나씩 들고 탁자에 모였다. 그러다 렌터카를 빌리면서 해결하지 못한 '나미비아-잠비아 국경 넘기'에 대해 얘기했다. 영어회화가 자유로운 예지가 있으니, 렌터카 주인인 큰손한테 연락해 렌터카로 국경 넘는 것에 협상을 해보기로 했다.


'Hi, how are you? I want to discuss the place we return the car. Can I call you, now?'

큰손한테 이렇게 문자를 보냈고 곧 전화가 왔다.


원래 협상안은 이랬다.

'2016.06.10 파견 온 기사에게 룬두에서 추가금(1700 나미비아 달러)을 내고 차량을 반납하겠다, 잠비아로 국경을 넘을 때는 인터케이프 버스를 이용하겠다'


우리가 제안한 수정안은 '잠비아 리빙스턴까지 국경 이동한 후, 파견 온 기사에게 차량을 반납하는 게 가능한가? 만약 허락해 준다면 추가금을 더 많이 내겠다'


그러자 큰손이 우리가 제안한 것은 물론 안되고 룬두도 아닌, 빈트후크에서 차량을 반납하라고 했다. 완전 혹 떼려다 혹 붙인 경우였다. 우리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여행을 하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큰손은 왔던 길을 되돌아오라는 말로 혹을 붙였다.

우리는 덜컥 놀래서 이렇게 호소했다.

"빈트후크까지 갈 시간이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양해를 부탁한다."

그런데 큰손은 정말 강경하게 반대했다.


전화를 하면서 상황이 심각해지자 우리끼리 여러 대안을 내봤다. 그중 하나는 우리 모두 빈트후크에 돌아가는 거였다. 그러면 스바코프문트나 에토샤 국립공원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남자 동행과 여자 동행이 갈라져, 남자 동행들은 빈트후크로 돌아가서 차량 반납하고 여자 동행들은 한국으로 가기 위해 잠비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우리는 제안을 수정하지 않고 원래 계약대로 룬두에서 차량을 반납하고 국경은 인터케이프 버스로 이동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큰손이 우리의 계획을 물으면서 "너네 어디냐?"라고 물었다. 우리는 세시림을 거쳐 지금 스바코프문트고 내일은 에토샤 국립공원에 간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리가 거쳐간 길의 도로 사정이 느껴졌는지 '차가 상하는데 세시림을 갔냐'라고 채근했다.


나미비아의 도로 사정은 '빈트후크-세시림' 구간이 좋지 않고, '세시림-스바코프문트' 구간은 더 좋지 않다가 나중에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렌터카를 빌려주고는 이동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이동한 곳은 모두 유명한 관광지를 관통하는 길이었다. 어디를 가는지는 우리의 자유가 아닌가. 큰손이 계속 강경하게 말하고 화를 내니 통화하던 예지가 점점 스트레스받는 게 느껴졌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예지가 화난 모습을 이날 처음 봤다. 렌터카를 빌릴 때 커뮤니케이션을 한 지석이도 자기가 실수한 게 없는지 되뇌면서 얼굴이 빨개져갔다. 여행 다닐 때 특정 장소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하던 나는, 이 날만큼은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었다. 여행 계획이 모두 어그러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큰손은 흥분했고 여전히 강경했다. 예지는 그녀를 화나지 않게 누그러뜨리려 거의 한 시간 동안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우리끼리 회의를 하면서 차량 반납 장소/일시를 재정리했다. 렌터카를 빌리던 날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큰손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지가 큰손의 감정을 다 받아내느라 엄청 고생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원안대로 룬두에서 파견 온 기사에게 추가금을 내고 차량을 반납하기로 했다. 나는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는 틈에 나미비아-잠비아 구간 인터케이프 버스표 네 장을 예약했다.


'진짜 쉽게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


자기 전에 맥주 한 잔 하자고 탁자에 모였는데 다들 얼굴이 벌게질 만큼 당황해했다. 나는 지켜만 보는데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원래대로 하기로 했지만 기분이 뒤집어진 것 같았다. 회전을 360도로 해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머리는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스바코프문트의 일정을 줄이지 않아도 됐고 다음 날 스카이다이빙도 할 수 있게 됐다.


실제 큰손과 나눈 대화 내용


그 와중에,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예지의 성장에 나는 무척 감탄했다. 영어 회화를 너무 잘했다. '어렸을 때는 영어를 쓰기만 하고 이렇게 말할지는 몰랐을 텐데, 대학 시절에 엄청난 성장을 했겠구나' 싶었다. 그것도 화내면서 영어 하니까 너무 멋있었다. 우리가 오래 봤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다르게 성장한 게 느껴진 날이었다.



[돌발상황 #12] 큰손이 화났다. 렌터카 반납 문제로 우리 일정을 모두 참견했다. 예지가 큰손의 화를 잠재웠고 렌터카로 국경 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룬두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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