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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3. 2021

스카이다이빙, '이 눈을 보고 안심하렴!'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열여덟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

나를 촬영해주던 여자 카메라맨이 헬리콥터 바깥에 매달려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가이드와 함께 헬리콥터 출입문에서 종아리를 내려놨다. 다리가 덜렁덜렁, (지석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 그때부터 온 몸이 공기가 되어 있었다. 카메라맨이 손을 떼자마자 나도 갑자기 날았다. 분명 공기였는데 이젠 자유 낙하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밀려드는 공기 때문에 입이 한 움큼 커져서 숨을 쉬는 것도 정신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낙하한 여자 카메라맨이 내 앞에 나타나 나와 눈을 마주쳐 주었다. 그분은 아이라인을 진하게 화장했었는데, 그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마치 '이 눈을 보고 안심하렴!' 하고 내게 기운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 눈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공포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섬뜩하기도 했는데 내가 상공에서 가장 확실하게 쳐다볼, 마음을 놓일 대상이 그 사람 눈빛뿐이어서 왠지 든든하기도 했다. 다른 것은 다 흔들리는데 같이 낙하하고 있는 그 사람 눈빛만이 고정됐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오래 기억남을 눈빛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위안을 준다는 건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해주는 게 아닐까.
내가 불안하고 위험을 느낄 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응원할게!" 하는 공허한 울림보다는
그 상황에 함께 있는 것,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게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를 안심시켜 놓고 여자 카메라맨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담당 다이버가 낙하산을 폈기 때문이다. TV에서 볼 때는 낙하산을 펴면 승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낙하하는 속도가 줄어든 거였다. 낙하산을 펴도 계속 나는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때부터는 패러글라이딩 모드였다. 내 담당 다이버와 어색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 아빠가 생각나서 액션캠을 보며 떠들었다. "아빠, 미안! 오늘 안전하게 여행하라고 했는데 사실 나 스카이다이빙 중이야."


땅이 점점 커지자 순식간에 착륙했다. 좀 멋지게 착지할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렇게나 철퍼덕 앉아버렸다.



지석이와 만나 "우리도 했다!" 하면서 흥분을 했다. 지석이는 진짜로 붕 떠있는 것 같았다. 몸은 땅에 내려왔지만 영혼은 상공에 두고 온 것처럼 'high high'한 상태였다. 내리자마자 또 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무척 상기돼 있었지만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할 때보다는 싱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보다는 덜 행복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스바코프문트는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데 상공에서 바다를 볼 수 없었다. 뷰가 아쉬웠다. 둘째, 내 담당 다이버에게서 담배 냄새가 너무 많이 났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이라 그렇겠지 싶다가도 그가 숨을 쉴 때마다 고역이었다. 셋째, 너무 빨리 끝났다. 패러글라이딩은 하늘을 둥그렇게 날면서 행복감을 만끽할 시간이 있었지만 스카이다이빙은 직선으로 땅에 내리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기다린 시간이 길었는데 무진 빨리 끝나 아쉬웠다.


그런데 지석이가, 내가 패러글라이딩을 처음 했을 때 그 행복을 온 얼굴로 표현하고 있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예지랑 하국 오빠가 말해주지 않는 그 기분을, '이제는 우리도 안다!'는 표정으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드디어 두 사람이 대화에 우리를 껴주었다.



긴장이 풀리니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는 영상 편집본을 받기 위해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햄버거를 먹으며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예지는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들과 기장이 '기름이 다 떨어져 간다'는 대화했다고, 그게 들려서 더 무서웠다고 했다. 하국 오빠는 양 팔로 방향을 잡으려 하니 가이드가 제지했다는 말을 했다. 지석이는 계속 "한 번 더!"를 외쳤다. 이렇게 떠들며 체감상 2시간은 기다렸다.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 사무실로 들어가 보았다. 가서 보니 영상 편집자가 따로 있지 않고 스카이다이빙을 진행한 가이드가 편집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늦어졌던 것이다. 몇 번을 채근하다 드디어 영상을 받았다. 미리 만들어 둔 시퀀스에 관광객들 얼굴만 교체해서 만드는 영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지 담당 카메라맨의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액션캠 두 개 중 하나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해서 업체 측에서 예지의 스카이다이빙 영상은 편집도 해주지 않았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영상이 없으면 뭐람!' 뛴 것 자체는 의미 있지만 영상이 없다고 하니 허무했다. 다시 한번 더 뛰어서 그때의 그 기분으로 재촬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지가 많이 속상해했다. 그런데 업체 관계자들의 태도가 우릴 더 언짢게 만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는 신경 써서 해주다가, 사과를 할 때는 입에 담배를 물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미안하다. 돈의 일부는 돌려주겠다.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하나 죽었어도 '너네 생명 담보 서약서에 사인했잖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것 같았다. 스카이다이빙은 했지만 영상도 없고, 그들의 성의 없는 태도에 화가 났다. 한 손으론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하는 모습도 기분을 상하게 했다.


사무실을 나오고 조금 허탈했다. 예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영상은 온전히 받았지만 좋은 기색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도 속상했다. 함께 즐겁지 않으면 개개인도 온전히 즐겁지 않은 것 같다. 서로 챙겨서 여행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내가 즐거워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은 돌발상황이 너무나 많다는 걸 또 느꼈다. 이때부터 돌발상황이 몇 개였는지 세워보고 싶어 졌다.


5시가 다 돼서야 하루 온종일 바친 스카이다이빙 일정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가 렌터카를 찾았다. 해 질 무렵,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돌발상황 #13] 예지의 스카이다이빙 영상이 반쪽만 녹화됐다. 오래 기다렸지만 영상 편집본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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