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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4. 2021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났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열아홉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에토샤 국립공원

해질 무렵,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다소 늦은 출발이긴 했지만 스바코프문트에서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가는 구간은 포장도로가 많아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터였다. 스바코프문트 주변은 바다를 이용한 물류이동 때문인지 도로포장이 잘 돼 있고 화물차량도 굉장히 많았다. 오래간만에 도로에서 속도를 내게 됐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석양을 보여줬던 스바코프문트는 떠날 때도 뒷모습이 붉었다. 그 아름다움에 예지랑 나는 쉬지 않고 창밖 풍경을 촬영했다. 그런데 창문에 얼룩이 많아 기록의 가치가 반감되는 것 같았다. 출발 전 지석이가 물티슈로 창문을 설렁설렁 닦은 게 문제였다. 예지랑 나는 창문을 다시 닦고 가자고 지석이에게 졸랐고 결국 차를 세워 창을 깨끗이 닦았다. 창문이 더러워서 차 세운 것도 웃기고,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 못한 지석이를 놀리는 것도 재밌었다. 마치 음식을 예쁘게 차려 먹어야 하는 사람과 허기만 채우면 되는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뜻해진 창문으로 다시 출발했다.



다른 사람과 내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여행을 할 때마다 테마처럼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그 현장에 가서 이 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던 노래를, 나는 곧잘 듣는다. 스카이다이빙을 한 직후였으므로 나는 FT아일랜드 버전의 「새들처럼」을 차에서 크게 틀었다. '스카이다이빙하고 나서 들어야지!'하고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음악이다.


열린 공간 속을 가르며 달려가는 자동차와
석양에 비추인 사람들
[RAP]
Uh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분주한 발걸음으로 붐비는 도심 속 이 거리
숲 속에 나무들처럼 빽빽한 빌딩들 사이
화려한 네온사인
오늘은 이 도시 위를 날고 싶어 Come on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나도 따라가고 싶어
[RAP]
저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 오늘은
만지고 싶어 저기 구름을
Uh, yes, I wanna touch the cloud
하늘 보단 낮으니까
내 손가락 끝이 구름 끝에 닿을 수 있다면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네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나도 따라가고 싶어
[RAP]
오늘은 답답한 일상에서 떠나 보고 싶어
Let's get out out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Now
저 하늘 위엔 날 위해 뭔가 있을 것만 같애
저 하늘의 새들처럼 하늘을 날자 Fly high

Fly 날개를 펼쳐봐 하늘만 바라봐
용기 낼 수 있다면 넌 날 수 있어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나도 따라가고 싶어


노래 가사는 '답답한 도시를 떠날 수 없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용기 내서 이미 하늘도 날았고 크게 일탈 중인 참이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허우적대는 일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이상과 일치시키는 시간을 갖고 있는 터였다.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추다 보니 금세 해가 졌다. 다시 밤 운전이다. 나미비아에서는 첫날부터 밤 운전을 했더니 이제 밤에 이동하는 게 크게 무섭진 않았다. 이번에는 멀리서 보이는 불빛도 많아 저 어디쯤 도시가 있을 거라는 예측도 가능했다. 도심에 가까워지자 주유를 좀 해 가기로 했다.


여기서 만난 주유소 직원이 기억에 남는다.

"Where are you from?"

"Korea!"

"North Korea?"

"South Korea!!"


난 당연히 그가 'South Korea'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해외에 나올 수 있는 건 당연히 남한 사람 아닌가, 그게 상식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아프리카에서 북한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때 북한이 아프리카와 교역량이 많다는 걸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 주유소 직원은 내가 카메라로 찍고 있는 걸 발견한 후 처음엔 부끄러워하다가 애교를 떨었다. 손키스도 날리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춤도 춰줬다. 예지랑 나는 계속 귀엽다고 외쳤다. 그가 마지막에 외친 말!

"You must pay me!"

"(^^)"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분이었다. 한껏 웃다 다시 길을 이어갔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불빛이 사라진 길이 나왔다. 그 까만 길을 또 달렸다. 그러다 갑자기 막다른 길을 만났다.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막힌 것이다. 세시림 캠핑장 때처럼 또 문이 닫혀 있었다. 행동대장 하국 오빠와 첫 번째 펭귄 타입인 지석이가 차에서 내려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러 갔다. 그런데 난 또 덜컥 겁이 났다. '에토샤 국립공원 근처인데 멋모르고 내렸다가 동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막막한 어두움과 야생 동물에 대한 두려움에 나라면 차에서 내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또 나서서 해주고 있었다. 남자들이 차에 들어왔는데 이번엔 팁을 받고 문을 열어줄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입구도, 사람도, 숙소도 없다. 전진할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이 길 한가운데 멈추어 있었다. 결국 하국 오빠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났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돌발상황 #14]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 아예 막혔다. 경비원도 없다. 스바코프문트에서 되돌아가기에도 매우 긴 시간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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