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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4. 2021

누군가 우릴 도와주는 것 같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스물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에토샤 국립공원

하국 오빠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났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우리가 지나왔던 길에서 라이트 하나가 보였다. 그 라이트는 가까워지자 두 개로 보였고 더 가까워지자 트럭으로 밝혀졌다. 트럭이 우리 옆에 섰다. 나는 또 "위험한 사람들이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이미 동행들이 다 내려 말을 걸고 있었다. 혼자 차에 남는 것도 무서워 나도 내렸다.



그 나미비아 사람들은 다행히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너무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을 마치고 귀가 중이었는데 우리를 발견하고는 자초지종을 들어주었다. 에토샤 국립공원 게이트는 일출일 때 열고 일몰일 때 닫는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았다면 스바코프문트에서 해질 무렵에 출발하면 안 됐던 거였다. 그들은 근처 숙소 관리자에게 전화해 우리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우분투 팀 공식 통역가 예지가 전화를 이어받아 숙소 문의를 했다. 새로 지은 방갈로 더블룸 2개가 있고 캠핑 사이트도 있다고 전해왔다. 우리는 텐트가 없어서 방갈로를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가격이 좀 고민되었다. 그래서 예지가 다시 나미비아 현지인들에게 전화기를 넘겼는데, 이들이 가격 할인까지 알아봐 주었다. 결국 우리는 방갈로 2개를 1600N$(한화 약 15만 원) 선으로 알고 숙소에 가보기로 했다. 이때 이 현지인들은 가는 길을 누차 알려주고 자신들의 트럭을 뒤따라오라고 했다. 그들 덕에 길이 생겼고 어둠 한가운데 있지 않아도 됐다.

우리는 "땡큐! 땡큐!!"를 외치며 차에 탑승했다.

'친절한 나미비아 사람들, 정말 감사합니다.'



차에 타자 독실한 크리스천인 하국 오빠는 "간증 거리가 넘쳐난다"라고 말했다. 역시나 가족 전체가 크리스천인 예지는 "이건 진짜 동행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동안 기독교인이 삶을 운영할 때 종교적 세계관이 어떻게 작용되는지 알 기회가 없었다. '저 사람은 종교가 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지난 유럽 여행에서 행운이라고 여기고 다녔던 것들을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신이 도와준다고 믿고 있었다. 해결 방법이 없을 때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과거의 나에게는 "역시 난 여행운이 좋아"를 외칠만한 일이었는데, 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자니 '누군가 우릴 도와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몰 스몰 올라왔다.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났다고 인정하자마자 불빛이 나타난 거지?

단순히 행운이 아니고 진짜 누가 도와주는 걸까? 기도는 우연을 건드려서 행운을 만드나?

이 두 사람이 여행 전에 했던 기도 덕에 나도 그들과 동행이라 신의 도움을 받는 걸까?


바다라면 망망대해 같은 곳, 우리가 불을 켜지 않으면 시커먼 어둠이 이불처럼 싸인 곳, 360도 둘러봐도 우리만 존재하는 이곳, 사막 한가운데서, 모든 걸 관장하는 신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한 건지 가뭇한 궁금증이 생겼다.



2km 정도를 지났을까. Etosha village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잠자는 시간에 도착해 캠핑족들의 잠을 다 깨운 모양인지 많은 환영(?) 인파가 나와 우리 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 유니폼을 입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Etosha village 로비로 갔다. 처음엔 이렇게 비싼 방갈로에서 잘 계획은 없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우리는 짧디 짧은 회의로 방갈로에서 하룻밤 묵기로 결정했다. 행운스러운 건 본래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방을 안내받았다는 거다.



남녀 나뉘어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예산은 오버됐지만 아프리카 와서 제일 좋은 숙소에 묵으니 기분이 좋았다. 예지랑 나는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영상을 찍으면서 놀았다. 러브하우스 BGM을 입으로 노래 부르면서 찍었는데, 짜고 찍지 않아도 중학교 때 놀던 그 합으로 재밌는 영상이 탄생했다. 곧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했다. 4시간 후면 벌떡 일어나 떠나야 할 숙소가 너무 좋았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별 사진 촬영을 시도했다. 혼자여서 무서웠는데 별 사진 욕심이 나서 그랬다. 그날은 그런 마음이었다. '오늘 이 숙소를 얻는 것만 해도 동행들 도움으로 왔는데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내가 우리가 본 별 사진을 찍어서 사진을 선물하고 싶다.'

하지만 별 사진을 처음 찍어 본 거라 그리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와이파이가 약해 '별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한 지식인들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날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별은 은빛으로만 빛나는 게 아니라 더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별은 은빛, 금빛, 푸른빛 모두 다른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별의 표면온도로 암기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이론으로 알고 있었지만 진실로 받아들인 느낌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씩 별을 볼 때는 알지 못했던 점이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 신해철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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