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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2. 2021

사막 한가운데서 다시 사막을 꿈꾼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열하나 @나미비아 세시림, 나미브사막(데드블레이)

퍼렇게 온통 다 멍이 든 억지스런 온갖 기대와
뒤틀려진 희망들을 품고 살던 내 20대 그때엔
혼돈과 질주로만 가득한 터질듯한 내 머릿속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내 곁엔 아무도

나는 차라리 은빛 사막에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
홀로 아무런 갈증도 없이
시원한 그늘, 화려한 성찬, 신기루를 쫓으며
어디 객기도 한 번쯤 부려보며 살았어야 했는데
아까워

안 돼!라고 하지 못한 건
허기진 내 욕심을 채울 착한 척하려 한
나의 비겁한 속셈일 뿐이야
장밋빛 미랜 저만치서 처절하도록 향기로운 냄새로
날 오라 하네 이리 오라 하네



가수 이승환의 「붉은 낙타」 노래 가사다. 이 노래를 들으며 사막을 꿈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사막 위를 질주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었다. 내 20대 혼돈과 질주로 가득한데, 무궁무진해지고 싶은데, 장밋빛 미래로 가려면 좀 더 객기 부리며 살아야 하는데 '아까워!'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꿈꾸던 사막에 가는 날이었다. 전날 늦게 도착했으나 사막 일출 시간에 맞추느라 3시간 만에 벌떡 일어났다. 파워 꿀잠,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가셨다. 우리는 씻지도 못하고 일찍 길을 나섰다. '어제의 일몰은 보지 못했으나 오늘의 일출은 꼭 보고 말리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붉은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치 새해 일출을 보러 가는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나가면서 어젯밤 어두워 보지 못했던 공간과 풍경을 체감했다. '이런 길을 지나왔었구나…….'


나미비아는 국토의 80%가 사막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나미브 사막이라 한다. 나미브 사막은 붉은 사막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모래가 붉은 것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고로 나미브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붉은 사막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미브 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사륜 셔틀차량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가이드 셔틀차량을 이용하면 듄45, 빅대디, 소수스블레이, 데드블레이 등을 코스로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탄 가이드 셔틀차량은 데드블레이에서만 내려 주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차량을 탔는지, 날씨가 궃어서 다른 관광지들을 그냥 통과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왜 다 조사해놓고 가지를 못하니…….'


우리가 유일하게 본 데드블레이에서 하차했다. 거대한 모래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 바람을 맞는 것 같았다. '황사 미세먼지를 직접 느끼려 온 게 아닌데. 해가 뜨면 나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 하며 데드블레이로 향했다.



데드블레이는 예전에 오아시스여서 생명이 살았지만 사막화 과정에서 물도 생명도 말라버린 곳이라 한다. 그곳 생명들은 건조한 땅 때문에 숨을 다하고도 썩지 않았다. 해서 사람들은 이곳에 들러 '시간이 멈춘 순간'을 경험하고 간다. 마른 나무에 생명이 있진 않지만 살아있을 때 그 키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마치 나무판 미라 같았다.


기대하던 곳에 왔는데 나는 한국에서 조사하고 갔을 때만큼의 경치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희끄무레하지? 해가 뉘어 붉어진 일출 광경을 봐야 하는데 왜 이렇게 흐리지?' 하는 생각이 컸다. 


게다가 사구를 오르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정상에서 사막 전체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오르는 게 쉽지 않았다. 오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우기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 생각했건만 발이 속수무책으로 빠졌다. 세 보 전진하면 두 보 미끄러지고 겨우 한 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단거리로 가로질러 가면 더 빨리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정상에 오르는 걸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오르는 걸 보며 처음부터 능선을 따라 올라갔어야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 모래가 양 옆으로 공평하게 밀리며 체력 소모를 줄였을 것이다. 사구의 정상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기대한 경치도 보지 못하고, 사구 정상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이 있어 얼른 원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치면서 금빛 사막의 모습이 나타났다. 모래의 결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거다! 



그 찰나를 즐기고 사막을 빠져나왔다.


평소 내가 로망이라 여겼던 사막은 낙타를 보는 것, 목이 타는 와중에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 사구 정상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는 것, 시간을 들여 사막 그 황량함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이 해보고 싶은 것들을 꿈꾼 것이다. 

그러나 여행 중에 사막을 둘러보고 밟아본 건 이 반나절이 끝이었다. 뷰 포인트를 다 돌지도 못했을뿐더러 가장 좋은 날씨에 보지도 못했다. 마지막에 해가 비치며 빛난 모래가 잠시 위로를 주었을 뿐이다. 이 먼 곳까지 왔으니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었지만 여행은 100%는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안 되겠다. 사막에 한 번 더 가야겠다. 사막 한가운데서 다시 사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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