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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1. 2021

관광이 아닌 여행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열 @나미비아 빈트후크-세시림

그렇게 달리길 몇 시간, 평탄했던 길 위에서 워터홀이 나왔다. 무턱대고 통과했다간 늪에 빠질 것 같은 큰 물 웅덩이였다. 하국 오빠가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려 상황을 파악했다. 그를 따라 지석이도 밖으로 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겁의 종류는 무지하게 많았는데 그중에서 이런 겁도 있었다.

'이 어두운 곳에서 차 바깥으로 나가면 수사자 같은 야생 동물들이 나와서 우릴 위협하지 않을까'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차 문을 열고 나가 워터홀에 물의 깊이를 가늠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차 안에서 지켜보며 예지한테 말했다.

"우리 둘이 왔으면 절대 못 왔을 여행이다. 감사하다……."

예지도 동감했다.

"진짜 우리 둘이 못 왔어……."

차로 돌아온 두 남자는 사륜구동으로 통과해야 한다며 이래저래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사륜구동에 대한 얘기를 하며 말이다.



나는 문득 여행 전에 하국 오빠가 준비를 빠르게 안 해준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현장에서 해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고 내가 닦달을 한 건 아닐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에게 여유를 주지 못한 건 사실 내가 겁이 많아서였다. 겁이 많으면 괜스레 꼼꼼해지고 찾아보는 게 남들보다 월등히 많아진다. 그걸 다른 사람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내 불안이 커지는 것이다. 다행히 사과를 금방 받았지만 여행지에서 나는 속으로 조금 머쓱해졌다. '황 대장'이라 불리던 나는 출발 때와는 다르게 조금 뒤로 물러서서 동행자들에게 의지하는 여행을 했다.


하국 오빠의 지시와 지석이의 운전 스킬로 차의 운행 방식을 사륜구동으로 바꾸고, 길 옆으로 핸들을 틀어 빠르게 워터홀을 통과했다. 그것도 단 한 번에 말이다. 그 과정에서 순백색의 차는 군차량처럼 진흙 색으로 바뀌고 말았다. 웃음이 터졌다. 우리가 너무 재밌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추어 창을 즐겁게 닦고 다시 출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을 또 한참 달렸다. 그러다 웬 건물이 하나 나왔다. 사람들이 분명 바깥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건물에는 불빛이 하나도 없어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들려 길과 숙소를 문의를 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나는 '안에 있는 현지인들이 나쁜 사람들이어서 우리를 납치하면 어쩌지?' 하고 또 겁이 났다. 여행 전에 아프리카 여행 중 주인공이 납치당하는 내용의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을 보고 와서 더 그랬다.


우리 중 예지와 하국 오빠만 차에 내려 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건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국 오빠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가 저 건물에서 7분 동안 나오지 않으면 너네 먼저 도망가!"라고 했다. 3분…… 5분…… 진짜 7분이 넘도록 두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운전을 했던 지석이는 그제사 본 밤하늘 별을 보고 환상에 젖어있는데 좌불안석인 나는 홀로 불안해했다. 그러길 몇 분…… 하국 오빠가 안에 되게 재밌는 상황이 있다며 액션캠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석이와 나도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보니 이 건물은 편의점이었고 아녀자들이 안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세시림 캠핑장은 어디쯤인지, 그곳에 숙소는 있는지'에 대해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우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위험하기는커녕 순박해 보였다. 웬 아시아인들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한밤중에 재밌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러 군데 연락해봐도 이 저녁에 숙소 잡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생각되자 방을 내줄 테니 자고 가라고 했다. 이곳은 숙소가 아니었으므로 이 제안은, 이참에 자기들이 돈을 벌어보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회의를 했고 '오늘 못 본 사막 일몰을 대신해 내일 아침 사막 일출이라도 보자!'라고 의견을 모으고 가게 안을 나왔다.


자정이 훌쩍 넘어서 목적지 지표를 발견했고 세시림 캠핑장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난관이 생겼다. 캠핑장 문이 닫혀 있었다. 서성거리다 보니 경비실에서 사람 기척이 났다. 경비원이 가까이 오자 우리는 미리 예약한 캠핑 예약 확인서를 보여줬다. 그리고 팁을 주자 문이 열렸다. 팁을 줬을 때 그 늙은 경비원 입가에 번지던 미소가 생각난다. 깨닫는다.

'입장 제한 시간은 있지만 팁을 주면 해결이 되는구나.
규칙은 있지만 아주 완고한 곳은 아니구나'



우리는 그 늦은 시간에 캠핑장 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아 텐트까지 빌렸다. 캠핑장 관리자와 입구에서 만난 경비원이 함께 텐트 치는 것을 도와줬다. 이들은 늦은 시간에 낯선 이방인을 진심으로 도와줬다. 텐트를 같이 설치해주시는 게 감사해서 또 그들에게 팁을 줬다. 새벽 2시가 다되어 몸 누일 곳을 마련했다. 하루가 길다. 이게 나미비아 첫날 일정이었다.



운전을 한 사람은 지석이었지만 우리는 자는 게 미안해서 다들 20시간 가까이 깨있으면서 어둠을 같이 달렸다. 어둔 길에서 별도 보고 워터홀도 헤쳐 나오고 이상한 건물에 들렸다가 말도 안 되는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관광지를 들린 것도 아니면서 나미비아 첫날 고생했던 게 여행 내내 많이 생각났다.


이날부터 우리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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