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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n 29. 2021

[오디오] 특이한 사람끼리 모이면 하나도 안 특이하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넷 @홍콩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 케이프타운

▶ 읽기가 부담스러울 땐 들어보세요. Play 하면 해당 글의 나긋한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홍콩의 습기와 열기를 가지고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탑승 전 남아공 항공사 승무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대기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계속 "으흐흐흫" 이렇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가랑잎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어버리는 소녀들 같았다. 그들만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여행을 가느라 신난 만큼 그들도 집에 가느라 신났던 게 아닐까? 내가 가는 곳은 신나는 곳임이 분명했다.


이내 홍콩에서 남아공으로,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밤에서 낮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이런 글을 적었다.



"저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에요"

'어차피, 어쩔 수'라는 말을

적게 하는 어른이 되기로 했으므로

이제 꿈꾸는 사람처럼 얘기를 해봐야지!


맘껏 힘껏 감탄할 시간

사진/영상 찍고

메모하고 글 쓰고

점잖떨지 않고, 아이처럼.

본 적 없는 땅을 밟고

하늘 우러러보고

탁 트인 곳에 가서 공기 마시고.


아, 이런 시간이 너무나 그리웠어.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28시간 만에 목적지인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설렌다고 말했지만 불안해서 두근두근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기우였다. 장시간 비행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인도양을 건너는 내내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래 준비한 것들을 펼칠 때가 정말 왔으니까!


헌데 공항에서 지석이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남아공에 도착하면 게이트에서 팻말을 들고 기다리기로 했었는데 어긋난 것이다. 하국 오빠도, 나도 로밍을 하지 않아 지석이와 연락도 불가능했다. 그러다 우리가 예약을 취소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중 나온 픽업 기사가 '남지석' 이름을 들고 나온 것을 확인했다. 지석이가 보낸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는 이름이 나와 아는 체를 했다. 우리는 이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픽업 기사에게 말해 기존 숙소가 아닌 변경된 숙소로도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선발대로 출발해 남아공에 먼저 도착해 있던 지석이를 만났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했는데 너무 장시간 비행을 한 탓인지 샤워만으로 피로가 가셨다. 비행기에서 피곤했던 건 잠을 못 자서 아니라 씻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여세를 몰아 케이프타운 구경을 나갔다. 먼저 워터프런트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바빴어서 여유롭게 맞는 식사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행복했다.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식사를 하고는 주말까지 사용할 렌터카를 빌리러 갔다. 하지만 렌터카 업체가 영업을 종료해 관광버스(골드 애로우)를 타기로 계획을 바꿨다. 여행이 시작됐다는 즐거움, 맑은 날씨, 이국적인 풍경, 좋은 공기에 신이 났다. 



치안이 좋지 않다는 케이프타운, 이른 저녁 숙소로 돌아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왜 아프리카여야 했는지, 어떤 말을 듣고 왔는지'를 얘기했다. 오고 싶은 이유는 다 달랐는데 한국에서 비슷비슷한 말을 듣고 왔다는 걸 알고는 실소가 터졌다. 그걸 듣는 데 뭔가 통쾌했다. 아프리카에 간다고 했을 때 특이하고 유별난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특이하고 유별난 사람끼리 모이니까 실은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뭘 하든 새로운 일을 하며 주저될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나가면 힘이 되는구나……. 또 하나 알아간다.


특이한 사람끼리 모이면 하나도 안 특이하다.


그렇게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하루가 다 갔다.


그리고 여행이 아주아주 끝난 후 한 방송을 통해 <이탈한 자가 문득>이라는 시를 알게 되었다.

- JTBC <김제동의 톡톡유> 이효리, 유리, 폴 킴 방영분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그리고 이 방송에 담긴 자막도 같이 기억하고 싶다. 


나의 일탈도 누군가는 이미 속해있는 궤도이며
세상에는 다양한 궤도가 있을 뿐
일탈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돌발상황 #04] 출국장에 선발대 지석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간신히 본 픽업 기사는 지석이가 보낸 사람이 아니다. 어쨌든 돈을 지불하고 지석이를 만났다.


[돌발상황 #05] 렌터카를 빌려 여행하려던 계획이 어긋났다. 금요일 이른 오후에 영업을 종료한 렌터카 업체. 고로 주말에도 렌터카로 여행할 수 없다.




▶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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