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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n 05. 2021

[오디오] 불안은 설렘의 얼굴로 온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둘 @한국

▶ 읽기가 부담스러울 땐 들어보세요. Play 하면 해당 글의 나긋한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해외여행이 오랜만이었을까. 출국 일주일 전부터 심장이 떨렸다. '심장이 나댔다'는 표현이 더 맞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회사에서 휴가 전 할 일이 많아 담담한 척 일했지만 누가 아프리카에 대해서 물어보기만 해도 심장이 요동쳤다. 


지나치게 두근두근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 비행기 타는 방법이 헷갈렸다. 해외여행이 세 번째지만 공항에서 동행자들을 따라만 다닌 게 문제였다. 비행기 타는 방법을 적어 갔다.


2. 홍콩에서 환승할 때 13시간짜리 남아공행 비행기를 놓칠까 봐 걱정했다. 홍콩에 도착하면 다음 비행기에 환승할 때까지 7시간 대기시간이 있었다. 이때 환승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나는 걱정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홍콩에 도착하는 시간이 금요일 오후인데 그럼 홍콩도 불금이 있겠지? 만약 차가 막혀 공항까지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홍콩은 초행길이니 더 헤맬 수도 있을 터였다.


3. 내가 대장이 된 게 부담스러웠다. 하국 오빠가 나를 처음 보자마자 황 대장이라고 불렀고, 어물쩡 내가 대장이 되었다. 대장이라고 하면 뭔가 리드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내 정체는 길치였다, 길치!! 완장은 찼지만 허술한 걸 들킬 것만 같았다.


4. 비행기를 타는 데 두려움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탔던 비행기에서 엉덩이가 뜨는 경험을 했다. 태풍 구름 사이를 통과할 때여서 비행기가 갑자기 아래로 꺼진 탓이었다. 그때 이후로 처음 타는 비행기여서 다소 긴장했다. 이제는 좋은 경험으로 과거의 나쁜 기억을 덮을 차례였다. 


불안은 설렘의 얼굴로 오나보다.


설렘을 가장했지만 이 네 가지가 여행 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출국 전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별로 없고 챙겨야 할 짐은 많았다. 이렇게 정신이 없으니 괜히 친언니한테 찡얼거리게 되었다. 언니는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르겠지만 난 항상 여행 갈 때마다 언니가 없을 때 스스로 잘해보자는 다짐을 한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언니한테 의지하는 거며, 언니는 "왜 내가 이러고 있지?" 하면서도 날 챙겨줄까? 우리는 왜 이런 세월을 보냈을까. 이날도 내가 어수선해하니 언니가 짐을 같이 체크해 주었다. 언니는 나의 안정제다. 


겨우 짐을 싸고 출국일이 같은 하국 오빠에게 연락을 해봤다. 홍콩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준비물은 잘 챙겼는지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국 오빠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여행 가기 바로 전 이 다섯 가지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문자가 와 있었다. 하국 오빠는 이미 준비가 끝났고 곧 출발할 거라고 했다.

'아고, 다행이다'


최고 무거운 배낭과 최고 설레는 마음을 갖고 나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해 있는 하국 오빠를 공항에서 만났다. 식사를 하며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새벽예배를 가느라 전날 일찍 자서 연락이 안 된거였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공항으로 온 거라고 설명은 덧붙였다. 무교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여행을 가는데 전날을 그렇게 보내다니. 뭔가 더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여행 가는 당일에 교회라니, 공항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만났고 곧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 얼마만의 해외여행인가. 

여전히 떨렸지만 그래도 공항에 도착하니 설레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조사한 것들을 믿자! 드디어 출발이다.


내가 뭔가를 시작할 때마다 외치는 이것.

좋습니다, 갑시다!!




[돌발상황 #02] 리무진 버스를 탈 때 썼던 체크카드를 인천공항에서 잃어버렸다. 출발도 전에. 챙길 짐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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