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인연이 아님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

by 작은나무

키다리 아저씨를 만났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아마도 오랜 고전인 키다리 아저씨를 모티브로 만들어졌겠지.


나에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실제 키다리삼촌처럼 키가 사다리만큼 크진 않지만

그 마음은 이 세상 누구보다 크고 넓은 사람.


언제나 그를 만나면 나는 늘 무언가를 받고 돌아온다.

삶을 살아갈 힘을 얻고,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복잡하지 않아지고, 따뜻함을 느끼고, 평화로워지면서 다시금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선물.


그는 늘 선물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크리스마스 날의 산타클로스처럼, 이 보이지 않는 선물들을 한 보따리씩 매달고 다니면서 만나는 이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헤친다.


부족할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만나는 이 그 누구에게나.


내가 받은 것에 감사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

그는 언제나 나에게 또 다른 선물보따리를 들고 온다.

언제나 매번, 변함없는 한결함으로.

한 치의 오차 없는 수학 풀이 공식처럼.


그런 그가 언제나 내 곁을 서성이면서

내가 힘들 때마다 늘 내 옆을 그렇게 서성이면서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안다.


언제나 매번

나는 못 본 척, 모르는 척,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곁을 서성이는 그를 나는 매번 언제나 지나쳤지만.

마치 다른 건 다 보여도 그의 손길만 안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알까?

나도 너무나 그 손을 잡고 싶었다는 것을.

부디 내 손을 잡아주기를 엄청 바랬다는 것을.


그가 손 내밀지 못하고 내 곁을 서성였던 것과 같이

나 역시 잡지 못하고 잡아주기만을 바랬던 것과 똑같이 그렇게 한 치의 오차 없이 우린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애써 보이지 않는 척 더 가까이 다가와 손 내밀어 주기를 바랐던 두 마음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그렇게 우린 각자의 마음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거다.


한참 동안 ‘왜 내밀어 준 손을 나는 잡지 못했을까 ‘

엄청 후회하고 자책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나에겐 너무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손을 잡지 못했던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유가.


그렇게 인연은 흘러간다.

그는 나보다 더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갔다.

나보다 더 절실하고 더 간절하게 그를 바랐던 이에게.


내가 버려지고 버려지고 버려진 최악의 순간까지

끝까지 내 곁을 서성이던 키다리 아저씨.

평생에 잊지 못할 커다란 마음의 선물.


그에게 받았던 그 선물 마음에 한가득 안고

그 마음 품고 살아가면 된다.


언제나 그는

지금 이 순간이라도, 아주 먼 나중이라도

내가 선뜻 다가가 도와달라고 손 잡으면,

그는 모든 걸 버리고 내 손을 잡아줄 것을 알기에.

언제나 몇 번이라도 내 손을 잡아줄 것을 잘 알기에.


감사한 그 마음 한가득 안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내게 주어진 삶을 만들어가면 된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손 잡지 못했어도 이렇게 씩씩하게 살고 있다고

나를 사랑하며 내 삶을 사랑하며

그 사랑 나누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내겐 그럴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으니까.


내겐 나를 구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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