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싶었다> #46
오랜만에 산을 찾았다. 산에 가기 싫다는 녀석을 집에만 있으면 뭐하냐며 실컷 꼬드겼다. 아차산을 갈지 청계산을 갈지 고르라고 선택지를 넘겨봤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산을 골라줄지 기대했다. 둘 다 가고 싶었으니 누군가가 대신 주사위를 굴려주길 바랬던 것일 까. 귀엽게도 이 친구는 산의 높이를 따져가며 결국 보다 낮은 아차산을 선택했다. 오기 싫어하던 친구의 마음은 알겠으나 내심 헛웃음이 났다. 정말 녀석 스러운 선택 기준이어서.
그렇게 우린 아차산으로 향했다. 대학 때부터 친한 녀석과 산을 오랜만에 오르려 했더니. 할 말을 준비해왔는지 초입부터 입을 벌렸다. ‘예전엔 설악산 대청봉도 금방 올라갔었는데 어찌 올라갔나 몰라’ 응원단 시절엔 둘 다 대청봉도 마라톤도 곧잘 뛰곤 했었는데. 그러게 우리가 나이를 먹은 건지 아니면 운동을 많이 안 했는지. 그 조그만 산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우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운동 안 한 거로 하면 좀 나태해 보이니까. 오늘은 우리가 나이가 좀 든 걸로 하자.’ 나이와 세월이란 건 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좋은 핑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르며 중간중간 이정표가 보일 때마다 나지막이 물어보는 녀석의 한마디 ‘얼마나 남았어?’ 순간 어린 시절 아빠와 산을 오르던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왜였을까. 늘 내가 ‘얼마나 남았어?’라고 물으면 아빠는 한결같이 ‘저 앞이야 다 왔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무조건 믿고 한발 한발 힘냈었는데. 오늘은 친구에게 아빠가 했던 말을 건넸다.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산에서 내려오던 길.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래도 오니까 기분 좀 낫지?’ 었다. 그만 물어보라는 친구에 투정에도 계속 말했다. 그도 그럴게 저 말은 내가 친구에게 묻는 말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여 산에 오고자 했던 나에게. 내가 나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말. 기분이 좀 나았으면 하는 스스로의 주문 같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