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싶었다> #63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미안했다. 이 말 꼭 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십삼년 지기의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내가 말하지 않았던 나의 사정을 짐작하고 늘 안부를 물어왔었다. ‘무슨 일 있어도 나쁜 생각은 갖지 마라 친구야’ 라며 나를 근 삼 년간 나에게 답장 오지 않을 메시지를 보내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멀어지게 되었던 것은 일방적인 나의 잘못이었다. 위로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늘 다가오던 그의 발자국만큼 나는 재차 달아났고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술래가 되어 나를 찾았다.
“미안. 그냥 동창들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별일 없이 살아있으면 되었다. 이제 만나도 되는 거냐. 오늘 시간 되면 한번 보자. 너무 부담되면 오늘 말고 다음에 봐도 되고.”
나의 한숨과 동시에 담담한 속마음에 대한 고백을 털어놓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만나자고 했다. 그 날이 아니면 나는 또다시 이 친구를 멀리할 것 같았다. 예상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었다. ‘미안했다’라는 말을 하나 남기고 또다시 기피하고 도망치기 시작하리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렇게 삼 년간 만나고 싶지 않아 일인용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나는 단 십 분 만에 녀석의 제안에 응했다. 이상하게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렌다기보다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맞이해야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설 때 느껴지던 쿵쾅댐이었다.
“왔니”
저녁 7시. 추운 겨울의 해가 빠르게 얼굴을 감춘 그 시간. 해처럼 나도 얼굴을 감추고 숨고 싶었지만 결국 그 녀석과 얼굴을 맞이하고 섰다. 잔뜩 굳은 표정의 나와 오랜만의 반가움이 얼굴에 가득했던 녀석의 삼 년 만의 만남은 그렇게 데면데면했다.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우리 사이에는 무한히 이어질법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 이 느낌이 나는 너무 싫었다.’ 예상했던 감정이 찾아오면 지레 후회가 물밀듯 차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기 위해선 ‘술’이 간절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잔, 두잔, 세잔... 그리고 한병.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우리의 침묵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딱히 두텁지도 않았던 벽이었는데 그 벽을 허무는 데까지 삼 년이 걸렸다. 나 혼자 친 벽을 깨기 위해 친구는 얼마나 두들기고 또 두들겼던가. 그냥 혼자 마음을 닫았던 과거가 미안해지던 찰나에 두 시간의 술자리가 끝나버렸고 “자주 보자”라는 한마디로 다시금 서로를 마주 보는 시간을 늘려 가기로 했다.
싫은 것도 없애버리고 싶었던 것도 다시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