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왔습니다

<적고 싶었다> #59

by 윤목

“우리 눈 피하기 놀이할래?”


20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나는 동기들과 따스한 정종을 마시고는 곧잘 이런 제안을 했었다. 그때의 나는 뭐가 그리 흥이 넘쳤었는지 하늘에 떨어지는 눈을 피해보겠다며 술에 몸을 맡긴 채 눈을 피하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기꺼이 도로에 꺼내 놓았었다. 같은 청춘이어서였을까. 늘 나의 제안에 친구 한 둘은 맞장구를 치며 도로 위의 광대를 자처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하나로 그토록 즐거웠던 청춘의 시절이었다.


‘투둑 투두둑’


베란다의 창문을 쉴 새 없이 두들기는 소리가 침대에서 나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오나 싶어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세상이 하얀 느낌이 들어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두들기던 소리는 땅에 닿음과 동시에 녹아내리던 눈의 소리였다. 빗소리를 예상하고 활짝 연 창문 너머로 그토록 기다리던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 드는 반가움만큼 이번 겨울의 첫 함박눈은 반가웠다. 쌀쌀한 겨울의 공기를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눈을 나는 이번 겨울 내내 기다렸다. 내가 애정 하는 누군가는 눈이 온 후의 질퍽해지는 땅이 싫다고 했다. 그 의견에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하얀 눈이 내리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시간을 잠시 붙잡고 싶었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가는 그 모습이 마음의 안정을 주는 느낌이라서.


천진난만했던 어릴 때는 눈을 맞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 20대 초반에 눈만 오면 신이나 했었겠지.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한다. 꿈보단 현실에 살아가는 시기에 의자에 앉아 눈 내리는 밖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포근한 눈’이라는 단어의 힘일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힘들 때 혹은 생각이 많을 때 내리는 눈을 보고 생각의 시간이 찾아올 때 즈음이면 수많던 생각과 고민이 눈 녹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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