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에 대한 막막함

<적고 싶었다>#59

by 윤목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진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어딘가에 나의 이야기를 생각을 풀어놓을 수 있다는 설렘은 늘 새벽에 모니터 앞에 앉게 만드는 듯하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감정들이 표현되기도 하고 삼켜지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늘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찾고 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속된 말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표현을 하면서도... 어딘가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적고 고이 접어둘 혼자만 보아도 될 법한 일기장 같은 글들을 적어 두고 싶어 해왔고 누군가들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일 거라 스스로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덤덤하고도 고백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던 나에게 시련은 초창기부터 다가왔다. "나는 도무지 너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어" 글을 쓰기 시작 한지 반년 정도 되었을까. 믿고 따르던 선배가 한마디를 툭 뱉었다. 누군가가 공감을 해주길 바라고 쓴 글들은 아니었지만 내심 속상해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느끼는 게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웃어넘겼다. 그 날 저녁부터였다 자꾸만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라는 단어들이 뇌리에서 끊임없는 공전을 해 대기 시작한 것은. 나의 소소한 일기들이 적힌 글들을 수 번 수십 번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좋은 글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했다. 의심의 알고리즘의 끝에는 내 글에 대한 증오만 남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만 가득한 저의 글 노트들이 창피해지기 시작했고. 적어 두었던 글들마저 올려놓은 모든 곳들에서 지워냈다. '무덤덤'이라는 단어는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지우는 데에 사용했다. 그렇게 2년간의 삶을 지워냈다. 그랬다. 결국 나는 내 글에 내 이야기에 공감을 받고 싶었던 것이 확실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글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쓰기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 되려 책을 사들여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모은 책은 수백 권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이 되어서야 글을 다시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읽는 동안 잠시 감추어 두었던 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트라우마에 대한 오만이었다. 다시금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어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 머릿속이 시커메졌다. 수많은 단어들이 떠돌아다녔다. 더 좋은 표현 더 예쁜 표현들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냥 풀어내도 될 이야기에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붙이려 들었다. 불나방 떼처럼 온갖 단어들이 모니터로 날아들었다. 결국 제목만 적어두고 글을 시작하는 한 줄도 적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참 미련하게도 그래도 글을 적고 싶다는 생각은 꾸준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와 소리 없는 눈싸움을 시작하고 이내 지곤 했다. 그 지겨운 눈싸움을 한두 달 반복했고. 그제야 한 문장이 적어지고 한 문단이 적어졌다. 가족과 친구에게 터놓는 걸 꺼려하는 나의 감정들을 결국은 글로나마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일 년이 조금 넘는 오늘 59번째의 글을 적게 되었다.


이제 갓 엄마와 떨어져 나온 신생아처럼 글을 적는 것은 아직도 막막하다. '좋은 글'은 '좋은 삶' 만큼이나 정의하기 어렵다. 막막하지만 그저 적어가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라 믿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