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구가 아니다

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3

by 윤목

‘뜨거웠던 열정만큼 신뢰는 타버리기 마련이다’


체력도, 정신도 바닥냈다. 그렇게 20대의 모든 것을 마케팅에, 매니지먼트, 영상에 바쳤다. 모든 이가 나의 그러했던 열정을 알아주리라 믿으며 하루에 세 시간, 네 시간 잠자며 일했다. 일찍 시작한 만큼 먼 훗날 보상받지 않을까,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혹은 어리석더라도 그때 그런 힘듦 덕에 만족할 만한 커리어를 쌓았다고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고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그 끝은 반드시 창대하고 푸른빛 가득한 삶이 날 맞이하리라 감히 단정 지었다.


함께 일하는 이가 열정적인 이라면 당연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는 생각이 잘못이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잘못이라 생각할 시간이 딱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래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한 번의 의심이 타인에 대한 두드림을 잦게 만들어 줬을 테니.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좋은 이들보다는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좋은 인상이네”


이용하려 드는 이들이 건넨 첫마디는 늘 같았다. 나는 아직도 저 좋은 인상이 내 인상이 좋다는 건지, 입맛대로 하기 좋게 생겼다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제법 성질도 있고 날카롭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었지 않았나 싶었다. 늘 호감엔 호감으로 답하는 성격인지라 그런 말을 해주는 이에겐 쉽게 친해졌고 INFJ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하나 챙겨주고자 하였다. 지금은 어리니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본인 나이쯤 되면 더 잘할 거라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감사하다며 하나 둘 더 챙기기까지 했다. 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과 함께 나의 커리어를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소년과 같은 벅찬 가슴으로 매일매일을 살았다.


그런 마음을 세상은 실컷 짓밟았다. 더 나은 일을 위해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하며 합을 맞추는 과정의 끝은 결국 인연의 맺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 그들의 실제 모습은 달랐고 언제나 나는 회의감이 들면서도 참아냈다. 그렇게 호구의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 때문에… 좀 더 나아지면 괜찮겠지.. 싶었던 나의 배려 아닌 멍청함은 늘 이런 결과를 불렀다.


“지금은 이것밖에 안되는데… 주식 배분 하구… 제2의 쿠팡이나 배민처럼 되면 좋지 않겠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달콤한 수식어들. 결국은 ‘열정 페이로 나의 젊음을 갈아줄 사람으로 너를 택했다’라는 호구임을 명시하는 내용. 얼마 전 나는 처음으로 거절했다.


“아뇨, 저 이 정도는 받아야 해요”


“많이 변했네”


돌아오는 답변은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는 못 부려 먹는구나 혹은 불러줬는데 거절을 하냐는 뉘앙스로 말이다. 두 번의 거절의 끝에 나의 조건에 맞추기로 했다. 허탈했고 한탄스러웠다. 마스크 안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헛웃음은 쓰디쓰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 웃음은 내가 호구가 아니어도 되는구나 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같이 시작한 과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pd님 죄송해요 저희 부서 사라져요’


나에게 제안했던 이가 직접 연락 온 것도 아니었고 아랫사람이 나에게 통보를 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분노도 슬픔도 아닌 잔잔한 감정이 찾아들었다. 어차피 이럴 거 다 예상했다는 듯이. 결국 나는 인연의 맺음 조차 직접 할 필요가 없는 그런 예의의 한 티끌에도 못 미치는 그 정도의 호구였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젊음의 열과 성을 다해 바친 20대의 마지막 인연을 끊어냈다. 잘 나갈 때 꼬이는 인연은 잘 모르듯, 열정이 넘칠 때 꼬이는 인연은 잘 알 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한다.


드디어 30여 년간 나를 갈아 만든 호구 생활을 탈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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