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4
20대였던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싹을 틔우고 길가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 송이의 꽃으로 피어나듯 삶도 그런 것이라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나친 조급함은 이내 꽃을 오래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일러주고 싶다.
나는 넓은 땅을 딛고 서 있는 수만, 아니 수십억 개의 다리 중 두 개로 이루어진 한 쌍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서있기도 걷기도 하지만 이따금은 달리기도 한다. 보통 달리는 경우는 약속에 늦었을 때 이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이지 않았을까. 내 기억 속 달리기는 무엇인가을 재촉을 위한 도구였다. 약속이 늦어 도착을 재촉하기도 했고 답답함에 대한 망각을 재촉하는데에 쓰였다.
재촉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보다 부정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이 많았다. 달려 땀을 흘리며 누군가에게 주는 첫인상이란 열정적 이라기보다는 되려 정신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을 테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늦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늦지 않도록 느긋하게 나와 달려갈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다면 양해를 구하고 되려 정돈된 모습을 보이라는 것일 뿐. 어디까지나 상대가 한참 당신을 기다린 상황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조급함과 재촉은 늘 한 쌍의 단어처럼 붙어 다닌다.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분명 몇 번이고 확인한 문서에 보내고 나니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면 재촉하던 본인을 원망하고야 만다. 조금만 더 침착하게 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면서. 그러나 이 조급함도 습관이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는 일상은 그만큼 실수도 반복되리라. 결국 반복되는 그 조급함과 재촉의 습관은 내가 하던 일을 망쳐버리고 끝끝내 나의 자존감마저 바닥보다 더 아래로 끌어내려버리고야 만다.
조급함은 실수를 낳고 실수는 실력이 되고 그 실수 투성이인 실력은 내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스스로가 무뎌져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 지금도 무너지는 중 일지도. 그렇기에 경주마처럼 쫓기는 달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꾸준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삶을 지향했으면 한다.
그러니 20대의 나야 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천히 걸으면 결국 더 멀리 그리고 오래갈 수 있으니까.